MBC 차량운전을 맡고 있는 박기평(가명)씨는 요즘 파업 중인 KBS 차량서비스운전자들보다 처지가 나쁘다.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어 방송사를 상대로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그들에 비해 박씨는 가진 무기가 없다. 박씨는 “MBC는 차량대여에 대한 비용만 책정할 뿐 사람인 우리들의 인건비 책정은 하지 않는다”며 상시적인 불안정 노동의 괴로움을 호소했다.

박기평씨는 MBC와 계약관계인 P렌터카의 차량을 운전하고 있다. 렌터카는 법적으로 차만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박씨는 C인력회사와 근로계약을 맺었다. C인력회사 소속으로 MBC에서 P렌터카를 모는 운전자는 약 50여명. 이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도 지급받지 못하며 일감이 없으면 오히려 빚을 지게 되는 현실에 놓여있다.

박 씨가 매월 지출해야 하는 기본내역은 P렌터카 월 회비 10만원, 자동차 보험료 10만원, 자동차 할부금 60여 만 원, 4대 보험 및 퇴직금 30만원으로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여기에 한 달 간 총수익의 18%는 렌터카가 수수료로 떼어간다. 이 금액이 보통 60만원 수준이다. 기름 값도 100만원 안팎이다. 한 달간 400만원을 벌면,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120만 원 정도다.

더욱이 P렌터카는 운전자에게 자차구입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계약관계는 P렌터카 소유의 차를 운전자가 임대하는 식인데, 차량구입에 따른 할부금을 운전자에게 부담하는 것이다. 3년간의 할부기간이 끝나면, 이미 렌터카는 20만km 이상을 달려 폐차수준이 된다. 박씨는 “이대로라면 늙어 죽을 때까지 할부만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방송차량운전자는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새벽에 부산 당일치기를 배차 받은 적이 있는데, 힘들게 지방 촬영 현장에 도착했더니 10분 만에 서울로 출발한 적도 있었다. 박씨는 “나만 죽어라 운전한다. 자기들은 자면 그만”이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졸음운전을 하다 사고라도 나면 수리비는 모두 운전자가 부담해야 했다. 힘든 지방 일정의 경우 배차를 거부하면 “안 가요? 일 없어요 그럼”이란 답이 돌아왔다.

급하게 프로그램 재연이 필요할 경우에는 현장에서 즉석 출연도 해야 했다. 맛 집 촬영지를 가면 맛있게 먹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MBC <PD수첩>에서 재연 출연자로 등장한 운전자도 있었다. 보조출연자로서 받아야할 일당은 당연히 받지 못했다.

이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이 빠진 급여책정이다. 렌터카 운전자가 MBC에서 ‘한 대가리’(하루 일당을 뜻하는 은어)로 버는 돈은 11만 5천원. 이것도 6시간 이상 일해야 받는다. 4시간 이내로 일하면 11만 5천원의 50%만 받는다. 12시간 이상 운전하면 시간은 두 배지만 기본운임의 30%(3만 4천 5백원)만 더 준다. 만약 10시간을 일했다면? 급여는 6시간과 같은 11만 5천원이다. 나머지 4시간은 ‘서비스’가 된다.

박씨는 “우리가 받는 돈에 인건비는 없다. 보험료나 퇴직금도 우리가 전부 낸다. 새달을 시작하면 마이너스에서 출발한다. 회사는 이게 이 바닥의 원칙이니 불만 있으면 나가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보통 보름은 일해야 무조건 나가는 돈을 갚는다. (힘들면) 일 안 하면 그만이지 하겠지만, 할 일이 없다”며 서러움을 삼켰다.

박기평씨는 “MBC가 우리를 사람으로 본다면 최소한 근로자로서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기본급을 인정해 책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옆엔 커피를 한가득 담은 보온병이 놓여있었다. 그는 “졸다가 죽기 싫어 커피를 달고 산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사내 파견노동의 문제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MBC 언론인들을 두고 “바른 방송 만들어 우리에게 도움을 달라고 파업도 지지했었다. 하지만 PD수첩과 불만제로에 아무리 말해도 아무도 취재를 안했다”며 서운함도 드러냈다.

방송사에 차량을 제공하는 렌터카 업체는 20여 곳 이상으로 알려졌다. 방송사 렌터카 운전자들의 총인원은 파악이 어렵고 처우 또한 계약서에 따라 제각각이다. 예컨대 KBS는 MBC와 달리 중앙배차를 통해 하루 운임으로 최대한 일을 많이 하게 운영되고, 식대가 운임에 포함됐다. 최정기 전국언론노조 조직쟁의부장은 “렌터카는 차량과 운전자가 자주 바뀌어 노조 조직이 어렵고 노동시간이 초과돼도 수당이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서금택 언론노조 방송사 비정규지부 MBC분회장은 “IMF 이전까지만 해도 차량운전자는 대부분 정규직이었지만 2000년 대 이후 해고와 명예퇴직이 이어지며 다들 파견직 신분이 됐고 동시에 수시차(렌터카)도 늘었다”고 밝힌 뒤 “수시차 운전자 또한 해고되면 갈 데가 없는 열악한 환경”이라고 전했다.

이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선 실태조사가 급선무다. 최정기 조직쟁의부장은 “현재 파업 중인 KBS분회가 한명숙 민주당 국회의원을 통해 노동부와 KBS측에 전체 방송차량 운영 및 계약 현황을 요구한 상태”라며 “KBS의 기초 데이터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렌터카를 포함한 방송사 전반의 차량노동자 실태를 확인해 개선을 요구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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