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들의 실상을 잘 아시고 직원들도 혹시라도 이 사람들과 접촉하더라도… 위해서 미리 알고 있으면 아마 이 사람들이 조직 확대를 위해 활동하는데 아마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봅니다.” 2012년 4월 10일 KT원주연수원(리더십아카데미)에 진행된 강의에서 나온 말이다. 강연자는 노사협력담당 서아무개씨고, 참석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KT 지사장과 팀장들이었다. ‘이런 사람들’과 ‘이 사람들’은 KT새노조(위원장 이해관) 조합원, KT민주동지회(의장 김석균) 회원,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을 가리킨다.

강의 내용은 지난해 9월 민주통합당 은수미 의원이 공개했고, 이해관 위원장 등은 서씨와 이석채 회장 등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서씨는 여기에 명예훼손 혐의가 더해졌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부당노동행위 여부에 대해 피의자 6명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다만 검찰은 서씨가 허위사실을 적시해 이해관 위원장과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벌금으로 100만 원을 명령했다. 이에 민주통합당 은수미 의원은 “노동법을 모르는 검찰의 봐주기 수사”라고 비판했고, 고소인들은 불복할 뜻을 밝혔다.

   
▲ 지난해 9월 19일 민주통합당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은수미 장하나 한명숙 의원과 KT전국민주동지회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강연이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했다. 은수미 의원 누리집에서 내려받음.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노동조합 조직이나 가입에 있어 불이익을 주는 경우는 물론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KT 부당노동행위 논란과 같은 경우 강연자가 사용자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지, 강연 내용에 노동조합 개입 의도가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18쪽 분량 녹취록에는 KT민주동지회, 새노조 비난이 대부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문제는 18쪽 분량 녹취록에서 시작한다. 서씨는 이 강연에서 KT민주동지회와 새노조의 ‘해사행위’와 ‘불법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선 최근 크고 작은 싸움이 있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SC제일은행 노동조합, 유성기업 노동조합,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등을 거론하며 KT노동조합과 비교했다. 강연 전달 열린 KT노조 대의원대회에서는 ‘회사가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합도 최대한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서씨는 이어 “현재 계신 팀장님들이나 지사장님들이 생각하시기에 내가 소속된 조직에 부서에, 직원들이 만약 찬반투표를 했을 때 어떤 사회적 이슈가 생겼을 때 어느 정도 관리자가 의도하는 대로 다라줄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볼만한 필요가 있습니다”라며 운을 띄운 뒤 한 부산지역 지사장이 노동조합 지부장 선거에 개입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의 관련 발언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부산지역 한 지사장이 굉장히 자만했다. 그곳은 두 곳에서 투표를 해왔다. 지사장은 민동회 후보가 출마했지만 한 곳에서 투표해도 충분하다면서 지역노사팀에 한 곳에서 투표해달라고 부탁했다. 막상 투표함을 뜯어보니 민동회 후보가 45% 정도 득표했다. 이것처럼 관리자들이 직원을 잡아주지 않으면 내면의 불만이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민동회가 그쪽으로 끌고 갈 수 있다.”

지난 2011년 7월 결성된 KT새노조에 대해 서씨는 ‘인간다운 KT’, ‘불법적인 노동 기본권 침해에 맞서 단호하게 투쟁한다’, ‘KT의 사회책임 경영이 이루어지도록 투쟁한다’, ‘보편적 통신공공성이 보장되는 복지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한다’ 등 새노조의 강령을 소개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우리 기업이 잘 되고 조합원들이 잘 되고 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조직”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해관, 조태욱 위원장에 대해 “위장취업을 하고”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서씨는 참석자들에게 “(새노조가) 조합원수를 늘리기 위해서 이제 활동을 지금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다양하게 소속된 팀장님들과 지사장님들이 소속된 지사에 아마 연락을 취할 것이고 활동을 할 것”이라며 “직원들도 혹시라도 이 사람들과 접촉하더라도… 위해서 미리 알고 있으면 아마 이 사람들이 조직 확대를 위해 활동하는데 아마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봅니다”라고 당부했다.

근로감독관 의견 뒤집은 검찰

은수미 의원의 폭로 뒤 두 위원장은 서씨와 이석채 회장 등 6명의 KT 관리자를 검찰에 고소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수사를 담당했던 근로감독관의 수사 결과가 검사의 수사지휘 뒤 축소돼 온 점이다. 이석채 회장과 서씨에 대해 기소하는 것이 옳다던 감독관은 2번의 검사 지휘를 거친 뒤 전원 무혐의로 수사결과를 내놓는다.

   
▲ 수원지검 성남지청 오종렬 검사가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에게 보낸 사건 처분결과 통지서. 근로감독관은 첫 수사의견에서 이 회장에 대해 관련 법 위반, 기소 의견을 냈다. 
 

지난해 12월 20일 근로감독관은 ‘사용자에게도 언론의 자유가 있으나 상황 등을 종합해 이 행위가 노동조합 지배하거나 개입하는 의사가 인정되는 경우에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되고, ‘부당노동행위의 성립에 반드시 근로자의 단결권 침해라는 결과의 발생까지 요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며 이석채 회장과 서아무개씨에 대해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는 것이 옳다는 수사의견을 냈다.

이에 대해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오종렬 검사는 △서씨의 구체적인 업무권한을 파악하고 △녹취가 안 된 부분이 어떤 내용인지 조사하고 △이석채 회장이 강의 내용을 보고받았는지 분명히 하라며 보강조사를 지시했다. 이에 근로감독관은 올해 1월 25일 이석채 회장에 대해 “전체적으로 서류의 결재를 받지 않았고, 달리 부당노동행위를 하는 것을 알고도 조장하거나 방조하였다고 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함”이라고 결론을 내고, 서씨에 대해서만 기소 의견을 냈다.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 관계자는 “근로감독관은 검사가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다”면서 “(근로감독관은) 검사가 지휘한 것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수원지검은 3월 27일자로 최종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수원지검 형사1부 수사관은 “(강의 내용이) 개인적인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보이고, 일부 표현이 비판적이나 전체적인 취지와 강의 내용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근로감독관 의견을 뒤집었다. 검찰은 부당노동행위 피의자 6명에 대해 모두 무혐의로 처분했다. 28일 서씨에 대해서만 백만 원의 벌금 처분을 내렸다.

   
▲ 수원지검 성남지청 오종렬 검사가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에게 보낸 사건 처분결과 통지서. 검찰은 강연자인 서아무개씨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해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00만 원의 벌금을 처분했다.
 
일개 팀원의 사적인 발언으로 결론 낸 검찰

성남지청 공보담당자인 윤웅걸 검사는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형사처벌은 책임주의에 따라야 한다”면서 “법률을 검토한 결과, 이 발언은 교육팀의 팀원에 불과한 사람이 강의 중간에 한 것으로 주체성 측면에서 사용자에 책임을 물을 수 없어 불기소했고 무혐의로 처분했다”고 말했다.

윤 검사는 이어 “직속 팀장에도 (사전에) 강의 내용을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했기 때문에 사용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서 ‘광범위한 사용자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소인 측 주장에 대해 “사용자가 그런 내용으로 강의를 하라고 지시했거나, 사전에 보고를 받았다는 것이 입증이 안 된 상황에서 책임을 묻는 건 야만의 법이지 문명의 법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고소인인 조태욱 위원장은 “본사 차원에서 예산을 투입했을 것이 분명하고, 조직적으로 진행된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했다. 특히 조 위원장은 지사장이 노조 대의원 선거 투·개표소 설치문제에 개입했다는 내용에 대해 “노동조합을 운영하는 것을 지배·개입했지만 검찰이 짜고 친 진술만 듣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고소인들은 “일방적인 폄하발언으로 조직이 위축됐고, 앞으로도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이 처분에 불복하고 항고할 뜻을 밝혔다.

   
▲ KT.
 
은수미 의원은 “고용부가 적극적으로 검찰을 설득하지 않았고, 검찰은 노동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말했다. 은 의원은 “이석채 회장 등 관리자들은 ‘나는 몰랐다. 직원이 한 것이다’라고 하며 빠져 나갔지만 노동법은 민법과 달리 부당노동행위에 사용자 책임을 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석채 회장이 새노조와 민동회 조직을 훼손하는 발언한 인사담당자들에게 시킨 것도 아니고, 보고를 받지 않았더라도 그 자리에 지명을 했고, 이 같은 강의를 지속시키는 관리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명백하게 사용자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은수미 의원은 이 같은 무혐의 처분에 검찰 출신 KT 인사들과 정치적 압력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은 의원은 “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고, 학대해고프로그램(부진인력퇴출프로그램) 양심선언이 이어졌다. 이 정도면 사용자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징벌을 가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검찰은 KT에 대해서는 무혐의로 일관하고 있다”며 “정치적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든다”고 말했다.

KT와 검찰만 무혐의로 생각한다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을 지낸 박수근 교수(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내용으로 봐서는 부당노동행위이고, 강연이 이루어진 장소와 참석자를 따져볼 때 노무관리와 오버랩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따져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의 본질은 근로감독관과 검사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라며 “감독관은 동물적 감각으로 ‘이 정도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지만 일반적으로 검찰은 노동사건을 잘 모르는데다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야 하는 검사는 물증이 없기 때문에 무혐의로 처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연에서 선거 개입이 무용담처럼 등장했지만 이 무용담이 진짜인지 아닌지 가리는 책임이 노동조합에게 있어 실제 입증하기는 어렵고,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검찰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 입장에서 물증이 없고 복잡한 사건에 대해 보강 수사를 지휘하는 것은 직무 유기라고 비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나쁘게 말하면 검찰이 무혐의를 내려고 특별히 책 잡히지 않을 만큼 구실을 만들었다. 검찰은 보통 노동사건을 이렇게 처리한다”고 말했다.

KT 관리자의 이 같은 발언이 지난 2006년부터 이어진 퇴출프로그램과 함께 고려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는 ‘CP프로그램에도 민주동지회가 등장한다.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교수는 “그렇게 보면 달라질 수 있지만 검찰이 그렇게까지 수사할 일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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