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을 회장으로 바꾸고, 이사회는 경영진의 수족이 됐다. 지배구조가 퇴보했다.” 이용경 KT 전 사장의 이야기다. 이용경 전 사장은 지난 11일 오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석채 현 KT 회장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KT를 떠난지 8년이 지났고, 민영화 초대 사장을 지낸 그가 이 같은 비판을 꺼내든 이유는 뭘까.

유선시장의 위기 속에서 민영화된 KT는 몸집을 불려왔다. 2002년 9곳이던 계열사는 2005년 17개, 2008년 30개, 2012년 말 현재 51개로 늘었다. “2002년 민영화 이후 준재벌적 계열사 구조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성적은 초라하다. 미디어오늘이 KT의 사업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적자로 확인되는 곳은 15곳이다.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회사를 고려하면 수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

동덕여자대학교 권혜원 교수는 ‘민영화 이후 KT 지배구조 변화와 문제점’을 분석하면서 “KT 경영진은 비관련 다각화를 통해 KT 고유 사업과 비통신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주력 통신 사업 부문에서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했다. 권 교수는 “BC카드와 KT스카이라이프 등 흑자 회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성장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KT의 계열사가 2002년 9개에서 2012년 51개로 늘어났지만 자산 규모는 1.4% 증가에 그쳤다면서 “그동안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비효율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의 근저에는 민영화된 KT의 소유·지배 구조의 변화로 인해 투자자들의 고배당 감량경영에 대한 압력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이석채 KT 회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KT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이용경 전 사장은 “IT가 모든 부분에 녹아 들어가는 융합 시대에 사업 다각화를 나쁘다고만 얘기할 순 없다”면서도 “본연의 KT 사업인 통신분야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걸 잘 하면서 다양화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 전 사장은 “부동산 비중을 줄이면서 동시에 자회사를 늘리고 있는데 (이석채 회장의) 진짜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면서 “경영의 ABC로 볼 때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용경 전 사장이 이석채 체제를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KT가 2009년 KTF와 합병했지만 그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 그는 “유·무선 융합을 위해 KTF를 인수했지만 시너지 효과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수조 원의 돈이 날아간 셈”이라면서 “일 더하기 일은 이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가 주주라면 이런 경영성과에 점수를 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2년 민영화는 KT의 재벌 흉내 내기 출발점이 됐다. 정부는 민영화를 앞두고 투자자들에게 매출액 대비 인건비와 투자비용을 15% 이하로 감축해 최대 이윤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의 약속은 현실이 됐다. 매출액 대비 설비투자액 비중은 1998년 29.5%에서 2011년 16.3%로 줄었고, 같은 기간 매출액에서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6.2%에서 1.5%로 주저앉았다.

인건비 비중도 크게 줄었다. 2001년 매출액 대비 연간급여총액 비율은 19.1%였지만 2011년 9.2%가 됐다. 이석채 회장 취임 뒤 10% 벽이 깨졌다. 이는 민영화 전후 대규모 구조조정 탓이 크다. IMF 이후 민영화를 위해 1만 1059명이 회사를 떠났고, 2003년 5505명 2008년 550명 2009년 5992명이 구조조정됐다. 이 같은 구조조정에 대해 KT는 ‘몰락하는 유선전화 시장’을 근거로 든다.

2000년 KT의 당기순이익은 1조 101억 원이었는데 2011년 순이익은 1조 2890억 원이다. 같은 기간 배당금은 1593억 원에서 4866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배당성향은 2000년 15.8%에서 2009년 94.2%까지 치솟았다. 2010년과 2011년 배당성향은 50.0%, 37.7%였다.

지난해 KT는 사상 최대 매출액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23조 7903억 원이었다. 영업이익은 1조 2138억 원, 순이익은 1조 1115억 원이다. KT는 올해도 순이익의 68%에 이르는 4874억 원을 배당금으로 내놨다. 그러나 KT의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30.6% 감소했고, 순이익 역시 23.5% 떨어졌다.

수익구조를 뜯어보면 상황은 심각하다. 비통신분야인 BC카드, KT스카이라이프, KT렌탈 3개사의 영업이익은 총 2930억 원이다. 여기에 부동산 매각으로 얻은 이익 1119억 원, 전화선 매각 이익 1531억 원, KT렌탈 매각이익 1260억 원 등을 고려하면 KT의 현 상황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비유가 적절하다.

비통신분야 확장과 수익성 악화에도 고배당 정책을 펴는 배경에는 이석채 회장과 이사회가 있다는 것이 이용경 전 사장의 주장이다. KT의 이사는 11명인데 이중 사외이사가 8명이다. 의장을 맡고 있는 김응한 미시간대 경영학 석좌교수는 이석채 회장과 고등학교 동문이고, 송종환 명지대 교수는 고교 1년 후배다. 이춘호 이사(현 EBS 이사장)는 이명박 정부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돼 왔다.

이밖에도 차상균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KT와 제휴관계인 SAP한국연구소의 사외이사다.   송도균 전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해 2G 이동통신망 폐지 가처분 소송에서 KT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이다. 독립적으로 경영진을 감시해야 할 이사회가 이해관계로 얽혀 거수기로 전락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는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 이용경 전 KT 사장(전 창조한국당 국회의원)
 
이에 대해 이용경 전 사장은 “경영진을 감시하는 것이 이사회의 기능인데, 지금 이사회는 경영진의 수족이 돼 버렸다”며 “지배구조가 후퇴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석채 회장은 굉장히 똑똑한 엘리트”라면서도 “이런 리더십은 들어본 적이 없다.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그는 “KT에 이명박 정권의 공신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면서 ‘이석채 체제’를 비판했다.

한편 이용경 전 사장은 통신공공성, 통신비 인하에 대해 KT 재국유화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통신비를 내리자는 국민의 요구가 많은데 통신이 국민들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고려할 때 KT 재국유화, 국영화로 인한 효율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영화 10년을 평가해 이게 (통신공공성에 있어) 장애요인이 된다면 국유화를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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