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과테말라에서는 어린 소녀 등 여성 6명이 ‘여성살해(femicide)’에 희생돼 충격을 안겨 줬다. 과테말라에서 여성살해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난 2000년 이후 5000여 명의 여성이 희생됐다.
여성(female)과 집단살해(genocide)를 뜻하는 단어를 합해 만들어진 여성살해는 단지 한 여성의 육체가 살해됨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구조에 의해 벌어지는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는 용어다.
멕시코와 과테말라 등 중남미 여성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인종주의와 남성우월주의로 인한 일상적 폭력과 착취, 납치와 살해의 위험 속에 놓여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남성들은 레즈비언 여성들을 치료하겠다거나 여성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겠다는 명목 하에 강간과 살해가 자행되고 있다.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는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중국,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활동가들과 함께 전 세계적인 여성살해의 중단과 이를 유발하는 사회 구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 ||
이별을 통보했거나 청혼을 거절했다는 등의 이유로 파트너나 구애했던 남성으로부터 ‘염산테러’를 당하는 여성들도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2월 헤어진 동거녀가 만남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염산테러를 벌인 40대 남성이 구속됐다.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35% 이상의 여성살해가 친밀한 관계에 의한 살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한국여성의전화가 2012년 한 해 동안 국내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120명의 여성들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의 손에 살해당했다. 최소 사흘에 1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 등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으며, 살인미수나 보도되지 않은 사건까지 포함하면 거의 이틀에 1명의 여성이 살해 위협에 처해 있는 셈이다.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보통 사람들은 여성이 폭력을 당할 때 모르는 사람에게 당할 것이라고 오해 하는데 대부분 가까운 사람에게 폭력 피해를 입고 있다”며 “남편이나 애인이 신고할 경우 확실한 처벌이 이뤄져야 하는데 경찰의 피해자 안전 확보 미흡 등 가정폭력방지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처벌이 안 되는 게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또 “친밀한 관계일수록 어떤 경우도 폭력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예방교육이 필요하다”며 “이는 공교육과정 안에서 체계적으로 진행돼야 하고 경찰 검찰 법원 등 사법기관에서는 반드시 이수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오는 18일 저녁 6시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여상살해 중단을 촉구하는' 4.18 지구지역 공동행동' 촛불문화제가 열린다. | ||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대형 살인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런 위험한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CCTV 등을 통한 감시와 경찰력을 강화하는 등 호들갑이 한동안 온 거리를 휩쓸고 나면, 사회는 다시 마치 안심이라도 한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며 “그러나 바로 그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폭력과 죽음의 연쇄고리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는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중국,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활동가들과 함께 전 세계적인 여성살해의 중단과 이를 유발하는 가부장·남성·이성애 중심의 사회 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오는 18일에는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여러 여성·시민사회 단체 및 개인들로 구성된 공동기획단과 공동으로 여상살해 중단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