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 후 재임기간 중 재개발 구역 강제철거는 없을 것이라고 누차례 공개적으로 강조했지만, 최근 서울의 한 재개발지역에서 철거용역원을 동원한 폭력를 동반한 강제철거가 이뤄져 주민의 피해가 발생했다.     
강제철거가 이뤄진 곳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 뉴타운 1-3구역으로, 지난 2011년 11월 9일 재개발조합이 철거를 시작한 후부터 세입자 부부는 건물 앞에서 건물 철거를 막으며 522일째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재개발조합측은 지난 11일 오전 5시경 철거용역 10여 명을 동원, 천막 안에 자고 있던 농성자 3명을 강제로 끌어내고 포클레인으로 상가 건물 철거를 강행했다. 철거업체 직원들은 완력을 사용해 농성자들을 제압하고 범죄 증거 인멸을 위해 세입자 이선형(51)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이 과정에서 농성자들은 길바닥에 맨발로 내몰리고 무릎 등 부상도 입었다.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5시 반경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철거용역들은 달아난 후였다. 이씨는 “경찰은 도착하자마자 폭력을 행사한 철거용역을 잡는 대신에 농성장을 다시 지키고 있던 이들에게 아무런 안전대책도 없이 위험하니 나오라고만 했다”며 “강제로 철거가 진행되는 것을 막지도 않고 공사를 중지시켜 달라고 항의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밝혔다. 결국 이씨는 이날 오전 직접 서대문경찰서를 방문해 철거업체 직원들을 폭력 혐의로 고소했다.

   
▲ 11일 강제철거가 진행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 뉴타운 1-3구역 농성장 현장
 
당시 농성장에 함께 있었던 윤경민 북아현 생존대책위원회 운영위원은 “용역들과 철거인부들은 주민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불과 20여 분만에 속전속결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나서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갔다”며 “농성장에서 지구대까지의 거리는 도보로도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은 매우 가까운 거리인데 경찰은 바로 코앞에서 폭력상황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순찰 한 번 제대로 돌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아현 뉴타운 1-3구역 철거농성장은 2011년 11월 9일 처음 철거가 시도된 후 522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조합과 세입자 간 보상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합 측에서는 법적 절차에 따라 영업손실 보상금을 주겠다고 하지만 이씨는 그것만 가지고는 다른 곳에서 영업할 수 있는 권리금과 영업시설 이전 비용 등을 대기엔 턱없이 모자란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철거 당시 이씨의 아내는 왼쪽 다리에 대못이 박히는 등 큰 부상을 당해 입원했지만 치료비조차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조합이 철거업체와 계약을 맺었으면서도 치료비 부담을 철거업체에 떠넘겼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행정당국은 양자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사태를 방치하고 있어, 세입자를 건물에서 몰아내야 하는 철거용역에 의해 폭력이 일어나고 이에 따른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지난 2009년 1월 용산 재개발구역 강제철거 과정에서 빚어졌던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지난 2월 20일 재개발 등 정비사업 과정에서 세입자가 거리에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재개발사업에 조합, 가옥주, 세입자, 공무원 등이 참여하는 사전협의체를 운영해 갈등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이뤄진 재개발조합측의 강제철거 시도로 이 같은 서울시의 약속과 박시장의 선언은 무색해져 버렸다.  이에 대해 이명만 서울시 재정비관리팀 주무관은 “사전협의체 구성은 명도(건물을 비워 넘겨줌) 소송 전에 이뤄져야 하는데 해당 구역은 이미 법적 절차가 끝났다”며 “다만 시장이 이 사안에 관심이 많아서 가급적 협상을 계속해 보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은영 서대문구청 주무관도 “구청에서도 계속 중재를 하고 있지만 팽팽하게 평행선만 달리고 있어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토지수용위원회 결정 금액에 대해 세입자가 이의신청을 하거나 소송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박은지 진보신당 부대표는 “철거 용역업체는 이전에도 구청의 허가도 없이 철거를 진행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돌아간 바 있다”며 “불과 이틀 전에 일어난 불법행위가 다시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렇다 할 조치 없이 현장을 방치한 서대문구청과 경찰의 직무유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