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직장의 신>이 연일 화제다. 최근 화에서 주인공 미스김(김혜수 분)은 “불필요한 친목과 불필요한 음주와 아부를 도모하면서 몸 버리고 간 버리고 시간 버리는 자살테러 같은 회식을 할 이유가 하등 없다”고 말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속에 담아봤을 말이다.

언론의 평가는 호의적이다. 스포츠한국은 “요샛말로 웃프다(웃기지만 슬프다)를 느끼게 한다. 미스김은 정해진 업무시간에만 일하고, 퇴근 시간을 지킨다. 언제든 필요에 따라 대체 가능한 소모품처럼 여겨지는 비정규직의 반란이다”라고 평가했다. 아시아투데이는 “정규직과 계약직간의 신분차이를 날카롭고 유쾌하게 비판하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평했다.

드라마를 한 번 더 비틀어보면 어떨까. 내 옆에 미스김이 있다고 치자. 미스김의 행동은 비정규직의 반란인가? 그보다는 숙련노동자의 생존법이라 보는 게 더 맞다. 극중 미스김은 언제든 대체가능한 파견 인력 가운데 ‘갑’이다. 그녀는 해고되더라도 언제든 다른 직장에 취직할 수 있다. 그녀는 다른 파견 인력과 연대해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는 대신, ‘3개월’ 인생인 후배에게 불안정노동 환경에서의 생존법을 알려줄 뿐이다.

<직장의 신>의 원작에 해당하는 일본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보면 미스김의 ‘정체’와 드라마의 방향도 대략 선명해진다. 2007년 총 10부작으로 완결된 <파견의 품격>은 첫 장면에서 1999년 파견법 개정으로 비정규직을 고용하게 된 일본사회를 설명하며 “파견이란 인류가 늘어났다”고 선언한다. 첫 화에선 주요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이름 옆에 연봉을 적어놓는다. 각기 다른 연봉은 직장내 위치를 상징한다. 사람을 돈으로 평가하는 일상화된 세태를 반영한다.

드라마 속 주인공 오오마에는 98곳의 파견업체를 다녔다. 그녀는 98번째에서 계약갱신 제의를 받지만 거부한다. 대신 스페인 안달루시아로 떠나 춤을 추며 자유롭게 산다. 파견노동자 오오마에의 ‘품격’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자유로운 삶의 선택권에서 나온다. 그녀는 이 같은 품격을 위해 개 조련·요리·승강기검사·핵연료취급·아로마테라피 치료·스카이다이빙·참치해체 등의 자격증을 땄다.

   
▲ KBS '직장의 신'의 원작인 일본드라마 '파견의 품격'.
 
오오마에와 같은 파견노동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상화된 불안정노동을 없앨 수 있는 아이디어를 주지는 못한다. 파견으로 상징되는 비정규직의 문제는 한국과 일본을 넘어서는 전사회적 문제다. 파견은 ‘경영의 효율’을 주장하며 노동자를 쓰다가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시킨 소위 자본가들의 아이디어다. 하지만 이들의 위선은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다. 동시에 오오마에와 미스김이 상징하는 ‘비정규직의 파라다이스’ 따위는 현실에 없다.

오오마에와 미스김의 직장 내 대인관계는 ‘비정규직은 인격 없는 노동력-상품에 불과하니 스스로 상처받을 일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겹쳐진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근로계약서가 다른 사람들 간에 드러나는 차별은 노동자 내에서도 소외를 낳고 연대를 무력화시킨다.

<파견의 품격>에서 한 정규직 직원은 말했다. “파견을 사람으로 마주보지 않으면 좋은 일을 할 수 없다.” 일부 ‘휴머니스트 정규직’은 “파견과 정사원이 함께 협동하는 직장”을 꿈꾸지만, 정작 자신의 일자리가 흔들린다 싶으면 금방 돌아설 수 밖에 없는 게 잔혹한 현실이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직장의 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서사를 이용한 판타지·코미디 물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지적한 뒤 “당당하게 칼 퇴근을 하는 미스김의 비정상성이 현실을 초월하며 세태의 욕망을 반영한다”고 전했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직장 드라마에선 상사와의 갈등이나 실적에 대한 괴로움은 있어도, 모두 다 호봉을 받는 정규직이었다. 그들은 같은 월급명세서에 같은 노동조합 조합원이었고, 타도의 대상은 특정인에게 수렴했다. 하지만 세상은 참 이상하게도 변해서, 오오마에와 미스김처럼 슈퍼 파견노동자가 등장하는 시대가 왔다. 왜 이들처럼 능력있는 이들이, 파견노동자여야만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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