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갖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복잡해 선악을 구별하기 어려워보였던 현실에 감정을 불어넣는다는 점이다. 감정은 열정이든 분노든 일정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 세상을 변화시킨다. 영화 <노리개>는 관객의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얹어놓으며 분노 이상의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있다.

<노리개>는 첫 장면서부터 “이 영화는 가공의 이야기”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영화가 허구라고 생각하며 볼 관객은 아무도 없다. 96분간의 러닝타임 내내 관객은 극중 정지희(민지현 분)를 보며 故장자연을 이입하고, 현성봉 한국신문 회장의 모티브가 된 언론사 사주가 누구인지 떠올릴 수밖에 없다.

2009년 장자연의 죽음으로 세상에 나온 ‘장자연 리스트’는 장씨가 기획사 대표 김씨로부터 고위층 인사들의 술 접대와 성 접대를 강요받은 구체적 정황이 적힌 문건이다. 하지만 그 내용이 온전히 공개된 적은 없다. 당시 경찰이 수사를 은폐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연예인 성상납 문제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일종의 금기였다.

이에 영화는 용산참사를 다룬 <두개의 문>처럼 언론의 역할을 자임한다. 최승호 감독은 “국민들의 시선은 호도되고 사건은 다른 이슈들에 가려져 버렸다”며 “누군가는 그녀들의 어두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아야만 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영화 내내 강조되는 인물은 정지희가 아닌 기자 이장호(마동석 분)다. 영화는 취재파일을 보듯 기자의 시선을 쫓는다.

   
 
 

이장호 기자는 장자연 사건을 보도했던 방송사의 한 기자를 모티브로 삼았다. 극중 이장호 기자는 회사에서 해고당해 인터넷방송국 <맨땅뉴스>를 운영한다. 그는 한국신문 현성봉 회장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틈에서 돌직구를 던진다. “회장님 성상납 받으셨죠?” 그의 당돌함에서 직구는 커녕 고의사구를 던졌던 부끄러운 기자들의 자화상이 보인다. 

기자들은 장자연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데 무력했다. 2011년 장자연 2주기 시점에서 SBS가 장씨의 친필편지를 공개, 구체적인 성상납 실태를 보도하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부터 친필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며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당시 조선일보는 SBS의 보도가 오보였다며 대대적인 비판에 나섰다.

   
 
 

극중 정지희의 모습을 보노라면 진실에 다가가지 못한 기자들은 사실상 공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감독과 소속사 대표는 “줄 건 줘야 받을 게 생긴다”며 노리개로써 몸과 마음 모두를 처참하게 유린한다. ‘갑’으로 상징되는 남성권력은 여성 연예인을 인격 없는 상품으로 사용하며 일말의 죄책감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이 과정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 강변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여성연기자의 60.2%가 사회유력인사나 방송관계자로부터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영화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대중이 사랑하는 저 수많은 여성 연예인들 중 누군가는 정지희와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불쌍하다’는 감정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지만 무기력한 현실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다.

   
 
 
<노리개>는 한국신문 회장과 정지희의 룸살롱 장면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관객들이 설마하면서 알고 싶었던, 혹은 알고 싶지 않았던 그 충격적 장면은 야만의 현장이었다. 영화가 끝나고서 관객은 다시 비열한 거리로 돌아온다. 한 여성연예인에게 가해졌던 모멸과 환멸의 시간은 현재 진행형이다.

“어떤 식으로든 세상은 변한다.” 이장호 기자의 ‘확신’은 외롭기만 할 것인가. 이 영화는 4월 18일 개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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