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취재차량 운전노동자들이 중심인 전국언론노조 방송사 비정규지부 KBS분회(이하 KBS비정규직노조)가 8일 임금인상과 부당징계 철회 등을 내걸고 전국적인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로 인해 해묵은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21세기 들어 제작환경이 변화하며 방송 인력은 증가했지만 정규직 비율은 감소 추세다. 이대로라면 방송사의 비정규직화는 시간문제다. 언론연감에 따르면 신문 산업의 경우 비정규직 기자 비율이 2009년 16.8%에서 2010년 20.5%로 증가했다. 방송이라고 남의 일이 아니다. 우선은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조사가 급선무란 지적이다.

▷KBS, 10년째 기본급 동결에 범법행위까지…“더는 못 참는다”=
KBS 분회 조합원 100여명은 (주) KBS취재차량서비스의 원청사업자라 할 수 있는 박갑진 KBS비즈니스 사장에게 △전 직원 월 150만원 임금 지급 △박은열 취재차량서비스 사장 교체 △중노위의 부당징계 판결 즉시 이행 △부당징계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고 있다.

KBS 차량운전노동자들은 10년째 기본급이 동결됐다. 2008년 당시 76만원이었던 기본급은 2012년 75만 4천원으로 감소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식대를 12만 4천원에서 3만 7천원으로 대폭 삭감하기도 했다. 지난 1월부터 3월까지는 기본급이 최저임금(시간 당 4860원) 이하로 지급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강성남 언론노조위원장은 “KBS는 손자회사(자회사의 자회사)란 형식으로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범법행위를 저질렀다. 수신료를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KBS비정규직노조는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임금인상과 부당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출정식 중간에 진행된 집행부의 삭발식에서 머리를 깎던 조합원이 오열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향복 KBS분회장은 “KBS 안에는 온갖 비정규직이 다 있는데, 정작 KBS 기자들은 (취재를 위해) 비정규직이 어디 있느냐고 묻더라”라며 부당한 현실을 토로했다. 그는 “도급 계약서를 보면 우리가 파업을 하면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조항이 있다. 우리가 매년 임금협상을 할 때마다 이 같은 계약해지 루머가 돌았다”며 고용불안을 호소했다.

이를 두고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비정규 노동자들은 휴일도 없이 시간외 근무를 해야 겨우 생활이 유지될 정도로 열악한 임금과 극심한 노조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에 돌입하는 조합원들을 응원한다”고 밝혔다.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정규직 언론노동자가 기득권을 양보하지 않는 한 사내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KBS에 국한되지 않는다. SBS 차량서비스 노동자들은 오는 10일 노조 출범식을 갖고 불합리한 도급관계에 맞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다.

서금택 비정규지부 MBC분회장은 “도급사는 원청업체(방송사)에 힘을 쓸 수 없고, 도급계약을 유지하려면 MBC가 제시하는 임금액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도급은 방송사를 넘어 사회 전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금택 분회장은 “MBC가 우리를 직접고용 한다면 지금보다 급여를 더 받을 수 있지만 도급업체 인력관리자가 중간에서 임금의 30% 이상을 가져간다”며 “원청사의 정규직화만이 우리의 고용불안과 임금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점점 늘어나는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실태 파악 전무= 그나마 차량서비스 운전노동자는 노조를 결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사정이 나은 편이다. 방송사에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비정규 고용 형태가 집약돼 있다. 상시계약, 한시계약, 임시직, 아르바이트, 바우처(제작비에서 임금을 지급하는 인력), 파견, 도급, 용역, 특수고용, 프리랜서 등 직종도 다양하다. 이들에게 당연히 노조는 없고, 임금 및 단체 협상도 없다.

IMF이후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방송사 업무 종사 총인원은 늘어났지만 그에 비례해 비정규직 비율이 증가했다.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는 2007년 중반 잠깐 논의가 있었으나 2008년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며 각종 언론자유 침해 의제에 묻혔다. 공익을 추구하는 방송사가 사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KBS비정규직노조는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임금인상과 부당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출정식 중간에 진행된 집행부의 삭발식에서 머리를 깎던 조합원이 오열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방송통신위원회의 2011년 방송산업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지상파 3사 종사자는 총 13,403명이지만 비정규직은 포함되지 않았다. 방송사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행정인력이나 편집 보조, 청원경찰, 차량운전자, 환경미화원, 구성작가, AD, FD, 오디오맨 등이 대부분 비정규노동자에 해당하지만, 이들의 정확한 인원은 집계한 적도 없고 집계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MBC노조 관계자는 “MBC(서울)의 경우 정규직은 1600명 정도에 작가·VJ·계약PD 등 비정규직을 합치면 대략 3000명가량이 될 것”이라 전한 뒤 “사내에서 비정규문제를 다룰 때마다 우리 얘기는 안해 부끄러운 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언론노조의 방송산업종사자 노동실태 최신자료도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0년 전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평균임금은 100만 원 이하가 39.8%, 100~150만원은 39.4%였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71.6%는 업무의 지휘감독권을 정규직 관리감독자가 갖고 있다고 답했고, 87.8%는 징계권한 역시 사용사업장 관리자가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방송사가 고용주 형태를 갖고 있지만 고용관계는 간접 고용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취재차량에는 ABCD가 있다. 취재기자·카메라기자·오디오맨·운전노동자를 일컫는 표현이다. 그런데 기자를 제외하곤 모두 비정규직인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취재현장에 있지만 정규직과 달리 상시적 해고와 차별속에 놓여있다. 이들의 인권은 자연스레 사각지대다. 정규직원이 비정규직원을 성추행하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 연말 SBS 김아무개 앵커의 작가에 대한 성추행사례가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정규직원으로부터 인간적 모욕을 당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한 방송사 외주제작사 조연출은 “방송사 보도국에서 FD로 일하던 시절 정규직원으로부터 ‘니까짓게 뭘 아느냐’는 등 모욕적인 말을 종종 들었다”며 “처음엔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차별적인 근로조건에 익숙해져 체념했다”고 말했다.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 조사하는 것이 급선무= 예능과 교양프로그램의 제작포맷 변화는 많은 수의 비정규직 인력을 양산했다. 이 가운데는 프리랜서 신분이 불가피한 직종도 있다. 하지만 정규직이 축소된 자리에도 점점 계약직이 채워지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방송사 노동조합의 파업 영향력 또한 크게 감소시켰다.

방송사 비정규직 증가 문제는 불가피한 것일까. 김민아 노무사는 “비정규직 언론노동자들 찾아와 호소하는 문제의 공통점은 고용불안이다. 2년이 넘어가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니 계약해지 되는 경우가 많다. 프리랜서로 오래 일한 작가들도 정규직과 관계가 틀어지면 바로 계약 해지된다”고 전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노동자들의 실태조사가 우선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방송가에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지만 이렇다 할 조사는 부족한 상황이다. 최정기 언론노조 조직쟁의부장은 “언론노조는 국회 환노위와 문방위, 방통위와 협의해 비정규 노동실태를 조사해나갈 계획”이라 밝혔다.
언론노조는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가 언론인 모두의 문제라고 판단해 올해 중으로 방송사 비정규지원센터를 설치, 사내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일을 호소할 수 있는 곳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CBS와 EBS, 아리랑TV의 경우 비정규직을 무기 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긍정적 사례가 있어 주목된다. 한송희 EBS노조위원장은 “EBS는 2008년부터 세 번에 걸쳐 130여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했다”고 밝혔다. 직종별 표준계약서를 작성해 언론노조와 방송협회가 비정규노동자의 임금 및 단체협상교섭자로 나서는 방안도 모색 가능하다.

“차사고 나도 병가조차 없는 현실
 노조 통해 인간적으로 살고 싶다”

[인터뷰] 언론노조 방송사비정규직지부 SBS분회 배지수 준비위원장

배지수 언론노조 방송사비정규직지부 SBS분회 준비위원장이 노조 결성에 나서게 된 건 아플 때 쉬고 산재신청도 할 수 있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다.

올해 초 눈이 많이 온 어느 날 SBS취재차량 운전노동자인 배씨는 회사로 복귀하는 도중 눈길에 미끄러져 사고를 냈다. 전치 3주가 나왔다. 하지만 배씨를 고용한 코리아오토서비스에선 병가를 주지 않았다. 코리아오토서비스와 도급관계를 맺은 SBS에는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연차를 써야 했고, 그마저도 다 써 휴무인 직원에게 대신 일을 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SBS운전노동자들은 근속년수와 상관없이 휴가가 15일로 묶여있다. 차량 사고가 나서 입원해도 회사는 사람보다 차량파손을 걱정했다. 그는 “연차가 남지 않은 노동자는 몸이 완전히 회복이 안 된 상황에서도 나와야 했다”고 토로하며 “일각을 다투는 취재상황에서 속도를 내다 딱지를 떼이는 경우에도 고스란히 운전자 개인이 월급에서 부담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노동강도를 줄여보고자 맞교대 근무에서 3교대를 제안했을 때는 회사가 2명분 월급을 3명이 나누라고 했다. 시간외근무를 하거나 휴일근무를 해도 따로 수당이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에게 선택의 자유는 없었다.

코리아오토서비스(사장 권영구, 구 유니오토)는 SBS 창사이래로 차량서비스를 전담해온 곳이다. 배 준비위원장은 “회사는 임금내역표를 게시판에 붙이는 식으로 임금을 통보한다. 임금은 법정최저임금 인상 수준만큼 오른다”고 말했다. SBS 운전노동자 임금은 KBS 운전노동자보다 20만 원가량 낮은 수준으로 알려졌다. 명절과 하계휴가비는 몇 년 사이 절반으로 깎였다.

   
방송사비정규직지부 SBS분회 배지수 준비위원장
 
배 준비위원장은 얼마 전 취업규칙을 보여 달라고도 했지만 회사는 열람을 시켜주지 않았다. 법에 따르면 노동자가 요구할 때 회사는 언제든 취업규칙을 보여줘야 한다. 그는 “왜 안 되냐고 했더니 회사 관리자가 하는 말이 ‘회사를 운영하면서 어떻게 법을 다 지키면서 할 수 있느냐’였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영진 때문인지 회사에선 아직까지 산업재해 신청자가 없다. 배 준비위원장은 “회사 분위기 때문에 동료들이 지레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 괜히 산재 신청했다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전했다.

SBS 차량서비스운전자 80여 명 중 현재 노조 가입에 서명한 이는 60여명 수준이다. 그만큼 노동자들은 사람다운 대우를 원하고 있다. 이들에게 처음부터 노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배지수 SBS분회 준비위원장은 “2009년 노조가 와해되자 다들 말은 많아도 누구하나 나서지 못했다”며 “최근에 동시다발적으로 차량사고가 나면서 이번에야말로 처우를 개선해보자며 뜻을 모으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궁극적인 목적은 정규직이지만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우선은 권영구 사장과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SBS는 도급계약을 할 때 법에 맞춰 임금을 지급하지만 중간에서 도급업체가 임금을 주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노조는 10일 출범식을 연다. 그는 “노조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사장이 일방적으로 삭감했던 복지후생 관련비용을 원상복귀하고 임금을 인상하는 것”이라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