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날씨는 완연한 봄이지만 마음은 봄 같지가 않다. 연일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 위협과 북미 간, 남북 간 긴장 상황 때문에도 왠지 마음 놓고 봄을 즐겨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민 반응일까. 그렇다면 이미 수차례 북한의 도발과 직접 공격을 경험했던 연평도 주민들의 심정을 어떨까.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 개에게 물려본 사람은 짖는 개를 두려워한다. 기자가 연평도에서 만났던 주민과 아이들도 여전히 ‘그날’의 공포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저희 반 친구 중의 한 명은 군인들 사격훈련 소리가 조금만 들려도 대피소로 뛰어가자고 그래요. 헬리콥터 소리를 들어도 무서워해요. 다른 친구들도 예전엔 헬리콥터를 보면 손을 흔들면서 ‘저도 태워가요’ 그랬는데 이젠 아무도 그러지 않아요.”

연평성당 앞에서 만난 연평초등학교 6학년 방지혁(가명·12)군은 북한이 포격을 가했을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지혁군은 그날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북한 포격이 쏟아지자 무척 당황하고 놀랐다고 한다. 지혁군은 부모님과 함께 그날 바로 어선을 타고 인천으로 대피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무섭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혁군은 “그냥 포 쏘는 건 괜찮은데 우리집이 맞을까 봐 무서워요”라고 대답했다. 지혁군은 앞으로도 포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우리집’을 걱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집과 가족을 산산이 파괴할 수 있는 전쟁의 공포를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 연평성당 안에 세워져 있는 '기적의 성모상' 뒤편으로 북한 포격 당시 표적이었던 탄약고가 있다.
ⓒ강성원
 

불안한 주민들 대피소 가져갈 가방 싸 놓기도

2010년 11월 23일 오후 북한의 무차별 포격으로 피해를 입었던 연평성당에서도 무너진 사제관은 다시 복구됐지만 당시의 아픔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성당 안에 세워진 성모상은 불과 100m 정도 떨어진 탄약고를 등지고 마을 주민을 향해 있었다. 그날 이후 이 성모상은 북한의 포화 속에서도 주민을 지킨 ‘기적의 성모상’이라고 불린다.

미사를 드리러 성당을 찾은 한 주민은 “상처를 받은 아이들과 주민들을 위해 심리치료와 힐링 프로그램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며 “보건소에서 약 처방 정도만 해줄 뿐이지 주민들을 실질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한 배려가 전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연평도 주민들은 이제 군(軍)과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불안하지만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만약을 대비해 대피소로 가지고 갈 가방을 싸 놓기도 했다. 홍성훈 연평성당 신부는 “주민들의 불안감은 높지만 정부가 국민을 안심시키는 대책은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며 “일부 언론들이 상황을 지나치게 과장해서 위기감을 조장하는 것도 문제”고 지적했다. 홍 신부는 이어 “그제 탈북자가 꽃게잡이 배를 타고 나갈 때도 군에서는 좋은 자리 찾으러 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며 “밤 10시가 넘어서 나갔으면 출항금지 시간인데 그대로 뒀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무차별 포격으로 피해를 입은 주택이 보존돼 있다.
ⓒ강성원
 
기자가 연평도에 도착한 5일에 앞서 지난 3일 밤, 탈북자 이혁철(28)씨가 연평도에서 일하던 어선을 훔쳐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월북했다. 5일 불안해하는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연평면에 방문한 조윤길 옹진군수는 연평 주민과 간담회를 갖고 주민들의 요구가 중앙 정부에 반영될 수 있도록 대통령과 자리를 주선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연평도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박태원(53) 주민대책위원장은 “다수의 노인들과 주민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고 말했고 주민 김영식(62)씨는 “주민들의 불안은 연평도에 거주하는 동안 계속될 것이며 정부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직 주민들이 받았던 고통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최근 더욱 불안을 느끼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해 달라는 부탁이다.

외부 시선이 더 걱정…관광객 감소에 상권 침체

연평도 주민들이 느끼는 또 하나의 위협은 ‘생계 불안’이다. 4월부터 본격적인 꽃게 철이 시작됐지만 남북 간 갈등 상황이 더 고조돼 어업통제가 이뤄질까 봐 걱정이다. 아직은 바다에 꽃게잡이용 어구만 깔아 놓은 상태지만 5월부터는 꽃게 수확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최근 북한이 도발 위협 수위를 높이면서 어선에서 일할 인부들이 부족한 상황이다.

겨울에 일거리가 없어 연평도를 떠났던 노동자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광객의 발길도 끊겼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지 않았을 때 많게는 600명이 넘었던 주말 관광객 수도 요즘은 100명이 넘기 힘들다. 안보 교육을 위한 학생들의 견학 신청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식당과 민박 등 지역 상권은 계속해서 불경기다.

   
▲ 연평도 종합운동장 피폭 장소에는 벽화 사진이 그려져 있다.
ⓒ강성원
 
기자가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할 때도 연평도로 들어가는 사람보다 나오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편의점에서 만난 한 마을주민은 관광객이 많이 준 것 같다는 물음에 “요새 관광객이 어딨느냐”고 반문했다. 그나마 한동안 머물렀던 언론사 취재진도 거의 다 나가고 없었다. 연평리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송영옥(52)씨는 북한의 도발보다 연평도를 바라보는 외지 사람들의 시선이 더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언론에서는 매일같이 전쟁 위기다, 북한이 도발한다 그러는데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연평도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위험한 곳, 가면 안 되는 곳이라고 생각할 거 아니에요. 안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오히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뉴스를 보고 안부 전화를 해요.”

   
▲ 연평중·고등학교 지하에 설치된 대피소.
ⓒ강성원
 
연평도 주민들은 과거의 상처를 가슴에 묻고 지금도 군부대 포격 훈련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곤 하지만 이곳을 떠나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안심하고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게끔 정부의 지원과 관심을 필요로 하고 있다. 서해 상 군사 훈련을 강화하고 대피소만 늘릴 게 아니라 주민들의 행복과 삶의 터전을 지켜줄 혜안이 절실하다. 1959년 사라호 태풍 사고 이후 붙여진 ‘눈물의 연평도’의 재앙은 더는 일어나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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