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자산’은 누가 뭐래도 ‘천당 18년, 지옥 18년’으로 상징되는 그(녀)의 인생 자체다. 1961년 아버지 박정희가 쿠데타에 성공한 뒤 1979년 사망할 때까지 18년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삶은 ‘천당’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나라 나이로 23살 때인 1974년 8월15일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잃고,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수행하며 아버지를 도왔다. 이 시기에 청와대와 대통령의 무소불위의 권력과 영향력을 실감했을 것이다.

반대로 아버지가 죽고 1997년 이회창 총재가 이끄는 집권여당에 입당하여 공식무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또 다른 18년’은 상대적으로 ‘지옥’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의 입장에서 볼 때 그랬을 것이라는 뜻이다. 엊그제까지 당과 정부의 고위직에 있으면서 온갖 영화를 다 누린 사람들이 절대권력자인 박정희 대통령이 죽자,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자신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고 배신감과 울분에 치를 떨면서 권력의 무상함도 덤으로 느꼈을지 모른다. 이 기간 동안 박근혜는 영남대와 정수장학회 이사장 등 ‘아버지의 장물’을 관리하는 자리 외에는 일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범한 자연인 뿐만아니라, 정치인으로서도 좀처럼 겪기 어려운 극적이고 극단적인 삶과 체험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울분을 삭이고, 말 수를 줄이고, 좀처럼 자신의 심중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상대와 정치인들을 관찰하고 자신을 컨트롤하는데 익숙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완전히 극단적인 두 세계’의 경험을 승화시킨 결과 그녀는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두 번이나 맡아 성공을 거두고 자신만의 독특한 리더십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고 믿는다. 정부가 실패하면 국민이 불행해지고, 특히 서민들과 약자들이 고통받는다. 반대로 대통령이나 정부가 성공하면 그 혜택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제 40일 정도 지났다. 아직 정부와 각종 기관의 진용마저 완전히 갖추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총체적 성공 여부를 예단하고 예측하는 것은 성급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무총리와 장차관을 포함한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선임 과정과 잇단 낙마를 통해 볼 때 박근혜 대통령의 앞날에 걱정이 앞선다. 우선, 많은 국민들이 마치 비리와 불법으로 얼룩진 사람들만 뽑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박근혜 정부의 대부분의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도덕적 수준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고, 국제적으로 망신스럽다. 청문회를 간신히 통과해 공식으로 장차관에 임명된 후보자들의 도덕적 수준도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고 평균적인 국민들의 수준에도 훨씬 못미친다.

그런데 정작 심각한 것은 그 다음 문제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대응 방식이다.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정치인에게는 성공을 위한 관리도 중요하지만, 패배나 잘못, 혹은 실수를 잘 ‘관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잇단 인사 실패에 이어 ‘실패를 관리’하는데도 실패했다.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장막 뒤에 숨어서는 안된다. 장관이나 참모가 잘못해도 대통령이 책임을 지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번 인사 실패는 장관이나 참모가 직무수행 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한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람 선정을 잘못한 것이다. 검증은 그 다음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 원칙, 약속, 신뢰 등의 단어를 유달리 자주 그리고 강조해 왔다. 이런 단어들은 정직이나 당당함 등과 함께하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비겁하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런 태도가 ‘천당 18년, 지옥 18년’으로 상징되는 그(녀)의 경험과 ‘아버지의 유산’의 산물이거나 부메랑이 아니길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직하고 당당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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