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방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해군2함대 사령관과 나눈 화상 대화 내용 중 보안상 공개되지 않아야할 사항까지 서면 브리핑으로 언론에 공개돼버렸기 때문이다.

해군2함대 사령관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북측 해안에 수십개의 포문이 열려있어 예의주시하고 있고 NLL 근처에서 북한 함정이 접근하고 있어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오후 4시경 이 같은 내용은 서면 브리핑으로 기자들에게 공개했고 통신사와 인터넷 매체들이 보도했다. 하지만 뒤늦게 보안상 문제가 지적되자 청와대는 구체적인 숫자를 적시한 기사의 매체에 대해 부랴부랴 수정을 요청하는 등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보통 해안포와 함정 동향을 체크하고 있다는 수준으로까지 공개하면 될 일을 우리 정부가 구체적인 숫자로 북측의 무기 배치 전략까지 들여다보고 있다는 ‘기밀사항’까지 브리핑을 해버린 셈이다.

소동을 지켜본 한 일간지 기자는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우리 측 통신사 기사를 이미 북측이 파악했을 것”이라면서 “북한 전략을 파악한 우리 측 기밀 사항이 공개되면서 결국 북측이 장비 배치에 변화를 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에서 아마추어리즘에 빠져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청와대 출입 기자들 사이엔 ‘엉망진창’이라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정부 초기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 배치 등 조직상 ‘세팅’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지만 역대 정부 초기 상황과 비교해서도 아마추어의 모습이 역력해 ‘엉터리’라는 성토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 간 대립으로 국정 공백 상태가 장기화되는 것과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4강 외교 대사의 명단이 언론에 공개되는 과정에서도 스스로 엠바고(보도유예)를 깨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청와대는 29일 인사위원회를 통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유엔 대사 인선안을 확정했는데 한 일간지가 내정 명단을 보도했다. 이에 청와대는 출입기자들에게 특정 시점까지 엠바고를 요청했다. 하지만 정작 명단을 유출한 것은 청와대였다. 청와대는 블로그를 통해 명단을 공개했다. 서면브리핑을 하면 곧바로 블로그에 게시되는 시스템상 미처 엠바고 보도 내용을 걸러내지 못한 것이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1일 대사 인선 결과가 게재된 경위 등을 묻고 참모진들에게 주의를 줬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이번 문제뿐만 아니라 결정되지 않은 사안이 언론에 보도된 사례를 지적하고 주의를 준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일정을 둘러싼 사건 사고도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지난 22일 윤창중 대변인이 26일 예정돼 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천안함 폭침 3주기 추모식 행사’일정을 공개한 일이 도마에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함 추도 행사에 참석할 것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지만 원칙상 대통령의 외부 일정은 엠바고 대상이다. 더구나 허태열 비서실장조차 알지 못하고 수서비서관회의에서도 공유하지 않고 윤창중 대변인과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둘만 상의해 박 대통령의 일정을 공개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대통령경호실도 고충을 겪었다. 대통령 일정이 공개되면 해당 일정의 지역에 대해서는 민폐를 끼칠 정도로 경호를 강화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진 왼쪽부터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김행 청와대 대변인.
 
정작 공개돼야할 대통령 일정은 갑작스레 공개되는 일도 많다. 2일 청와대로 출근한 한 기자는 대통령 일정을 확인했는데 전날까지만 해도 없던 일정이 불쑥 잡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날 오후 박근혜 대통령은 우말라 페루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갖고 북한의 도발위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조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로 했다. 외부일정을 제외하고 보통 대통령의 주요 행사 일정은 전날 오후 4시까지 공지가 되는 것이 관례다.

정부 출범 초기라고 하지만 청와대의 아마추어리즘이 나타나고 있는 배경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독선적인 스타일과 참모진들의 소통 부재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인사 파동 역시 박 대통령과 참모진이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들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A기자는 “관료 인사를 제외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발탁한 인사의 경우 결격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고 청와대에서 적극 수습을 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수습능력도 전혀 없었고 그냥 버티다가 날아간 케이스”이라고 신랄히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독선적이라고 할만큼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스타일로 평가받고 있는데 참모진 중 박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여론이 어떤지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A기자는 “박 대통령은 포퓰리즘하고는 전혀 반대의 정치인이다. 나쁘게 말하면 아집이 있고 독선적인 사람인 데 대통령 옆에 생각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그런데 홍보라인 선수들은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묻지도 못한다. 이 정도 인사 문제가 터지면 허태열 비서실장 정도가 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서 수습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언론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은 것은 박근혜 정부의 고질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B기자는 “주요 포인트에 있는 참모진들이 전화 자체를 받질 않고, 참모진들도 질문 내용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박근혜 정부 초기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인사 참사 문제와 함께 소통이 되지 않은 문제가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C기자는 “이전 정부의 홍보수석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자들의 전화는 받는 것을 방침을 정했는데 전화를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아는대로 설명을 해주는 차이다. 제대로 말해주는 사람은 글쎄 아직 찾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C기자는 인사 문제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 초기 고소영 인사 논란을 겪고 쇠고기 파동을 맞아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며 “인사문제를 덮을만한 메시지가 없어 악순환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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