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지난 3월 30일 ‘인사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사과를 발표했다. 허태열 실장은 김행 대변인이 대독한 사과문에서 “새 정부 인사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인사 검증 체계를 강화해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과문을 읽는 데 걸린 시간은 17초였다. 언론은 일제히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섰다. 

다음은 전국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다.

경향신문 <‘일반고 슬럼화’ 진행 중…숫자로 드러났다>
국민일보 <獨 복지의 힘은 비영리 ‘교회 재단’>
동아일보 <1964년 서독에 뿌린 눈물에서 2013년 대한민국의 길을 찾다>
세계일보 <한화 비자금 150억대 수사>
조선일보 <年內 집 사면 향후 5년 간 양도세 면제>
중앙일보 <김정은 “한‧미가 보복할 빌미 주지 마라”>
한겨레 <“도립병원서 내쫓기면 가난한 환자 어디로 가나요”>
한국일보 <靑 17초 ‘이중 대독 사과’에 비판 쇄도>

‘17초’ 사과, 국민에 대한 예의 아니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3월 4주차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41%로 나타났다. 역대 최저치 수준이다. 특히 60대 이상과 대구·경북 지역에서 하락 폭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 난맥과 공약 파기로 핵심 지지층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국정운영 방식을 바꾸는 대신 주말을 이용해 ‘17초’ 사과문을 발표했다. 단 두 문장이었다.

   
서울신문 5면 기사.
 

이번 17초 사과를 두고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모든 언론은 박근혜 정부를 강한 어조로 질타했다. 국민에게 가장 지지를 받는 시기인 임기 초 새 정부에게 모든 언론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박근혜 정부의 총체적 무능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언론마다 박근혜정부에 대한 비판의 결은 조금씩 달랐지만 문제의식은 동일했다.

경향신문은 1일 사설에서 “인사 실패의 궁극적 책임자는 청와대 비서실장이 아니다. 잇단 잡음의 원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나홀로 인사’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라고 지적한 뒤 “뉴스 주목도가 떨어지는 토요일 오전에 대변인을 시켜 17초짜리 문안을 읽게 하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인가”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국민일보 역시 “청와대의 허술한 인사 검증과 안이한 상황인식으로 박 대통령의 임기 초 지지율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국정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쏟아진 상황”이라고 지적한 뒤 “그러나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을 예정이다. 인사 실패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던 밀실인사에 대한 개선책도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서울신문은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병관 전 국방부 장관 후보자,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은 박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비전, 국정 과제를 담당할 핵심 인사였다. 그럼에도 인선 시점에서는 공식적으로 가동도 안 된 인사위원회의 수장이 사과한 것은 신뢰와 원칙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과도 거리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이번 ‘대독 사과’는 되레 야당에 공격할 빌미를 제공한 것“이라 덧붙였다.

   
 
 

조중동마저 외면한 사과…“국민의 부아만 늘었다”

조선일보는 이번 대독사과를 두고 “기자들에 대한 사전 공지는 (발표) 21분 전인 11시 9분에 이뤄졌다. 하루 전만 해도 사과 또는 유감 표명을 논의한 적 없다고 했으나 하루만에 입장이 달라진 것”이라 전했다. 이 신문은 새누리당이 한 관계자 말을 통해 “왜 달랑 두 문장을 발표해서 더 욕을 먹는지 모르겠다. 사과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이 신문 역시 사설을 통해 “이번 사과에서 박근혜 정부가 인사에서 무엇을 잘못했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으며, 앞으로 어떤 부분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비판한 뒤 이번 사과가 “국민의 부아만 돋우고 마는 걸로 끝났다”고 혹평했다.

   
▲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 또한 사설에서 “사과를 할 바엔 인사 실패의 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하는 편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사과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웠다면 비서실장이 대통령 의중을 담아 사과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비서실장이 얼마나 바쁘기에 두 문장짜리 사과문을 대변인에게 읽도록 한단 말인가”라고 질타했다.

이 신문은 “동아일보 창간 93주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59.8%로 긍정적 평가(28.3%)보다 배 이상 많았다.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했더라면 국민의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무성의한 사과로 ‘불통(不通)리더십’의 진수를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사과는 타이밍과 진정성이 생명이다. 이번 사과는 사전 예고 없이 주말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고위 당정청 워크숍을 앞두고 면피용으로 했다는 의심이 든다. 이번 사과는 내용과 형식에서 전혀 성의를 느낄 수 없었다. 무례한 사과는 안하느니만 못하다”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중앙일보 또한 사설을 통해 “국가 상황은 위중한데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 듣는 것은 공식행사에서 하는 원론적 얘기뿐이다. 대통령은 국민 앞에 서야 한다. 사과도, 대북 경고도, 대국민 안보 설명도 분명하고 당당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70개교 재학생 3분의 1이 수능 최하위권…‘일반고 슬럼화’

서울의 일반고 10곳 중 3곳은 재학생의 3분의 1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최하위 성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은 “일반고교의 ‘슬럼화’가 숫자로, 증언으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라며 이 같이 전했다.

입시업체 하늘교육은 31일 서울 214개 일반고의 2012학년도 수능 성적을 조사한 결과 70곳(32.7%)은 재학생 3분의 1 이상이 언어·수리·외국어 3개 영역에서 평균 7∼9등급을 받았다고 밝혔다. 7∼9등급은 전국의 백분율 석차 최하위 23% 이내로 4년제 대학 진학이 어려운 성적이다.

7등급 이하가 3분의 1 이상인 일반고는 성북구(7곳)가 가장 많고, 중랑·은평(5곳), 양천·동대문·관악(4곳) 순이었다. 반대로 7∼9등급 재학생이 20% 이하인 일반고는 24.8%(53곳)로 강남(13곳), 노원(8곳), 서초·양천(6곳), 송파(5곳) 등에 많았다.

서울의 한 사립고 교사는 “문제가 되는 학생이 한두 명이면 상담이나 보충수업도 할 텐데 워낙 많다 보니 학교가 손을 못 쓴다”면서 “교사들은 수업을 못 하겠다고 손들고, 아이들은 스스로 ‘우리 학교엔 양아치, 쓰레기들이 많다’고 얘기한다”고 전했다. 서울 강북지역의 한 학부모는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자도 좋으니 다른 애들만 방해하지 말라고 말하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자율고와 특목고가 전체 고교의 12%가량이 될 정도로 많아져 상위권 학생들을 쓸어가면서 일반고가 슬럼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무성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도 “특목고에 자사고, 마이스터고까지 생기면서 일반고가 ‘3류학교’ ‘나머지 학생들이 가는 학교’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학교예산 운영에 자율권을 주고 교육과정을 다양화해 일반고의 경쟁력을 기르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제안했다.

중앙일보 김진, “이석기‧김재연 자격심사는 코미디”

   
▲ 중앙일보 30면 '김진의 시시각각' 칼럼.
 
보수적 언론인으로 분류되는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자격심사 청구를 강한 어조로 비판해 주목된다. 양 당은 두 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며 3분의 2 표결로 제명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김진 논설위원은 1일 칼럼을 통해 “통합진보당 경선이 부정선거인 건 사실이다. 문제는 이·김의 책임 부분이다. 수사 결과 462명이나 기소됐지만 정작 이·김은 무혐의로 빠졌다. 정치적으로 봐도 부정선거 책임은 당 지도부에 있지 이·김이 아니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이·김을 제명하겠다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김진 위원은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 경선이 ‘공천의 민주성’을 어겼다고 주장하지만 먼저 민주성을 파괴한 이는 자신들이다. 2008년 3월 이명박 그룹은 한나라당 공천을 난도질했다. 밀실에서 공천을 주물러 박근혜 세력을 대거 탈락시킨 것이다. 이는 정당사상 가장 비민주적인 공천이었다. 그렇다면 이 공천으로 금배지를 달았던 의원들은 자격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민주당은 부정선거 세력과 ‘묻지마 단일화’를 한 셈이다. 이것은 민주적인 공천인가”라고 덧붙였다.

김진 위원은 “새누리당이 이·김을 공격하는 건 그들이 ‘종북 혐의 세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석기 의원 같은 경우 종북 전력이 심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김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헌법기관이다. 종북 혐의자라 해도 그들에 대한 대처는 법률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헌법에는 정당해산심판이란 제도가 있다. 통합진보당이 헌법이 규정한 민주적 기본질서를 어긴다고 판단하면, 새누리당은 정부를 움직여 헌법재판소에 해산을 청구하면 된다. 그게 정정당당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김진 위원은 “정작 자격심사가 필요한 이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지도부다. 소꿉장난 같은 정부조직개편 소동으로 날을 새우더니 이제는 이성과 원칙을 유린하면서 동료 의원 정치생명을 상대로 장난을 치고 있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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