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논란이 된 여성가족부의 손주 돌보미 사업이 잠잠해졌다. 첫 보도를 했던 조선일보만 보면 사업이 곧 시행될 것처럼 느껴졌으나, 보도 이후 여론이 악화되자 조윤선 장관이 발을 빼는 모양새다.

지난 19일 조선일보는 <손주 돌보는 할머니에 月40만원 준다>라는 제목의 1면 기사에서 “여성가족부가 손자·손녀를 돌보는 친할머니·외할머니에게 정부 예산으로 월 수당 40만원을 주는 ‘손주 돌보미 사업’을 이르면 올 하반기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부제는 ‘여성부, 이르면 하반기 추진’이었다.

조선일보는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과의 18일 인터뷰를 인용하며 이 사업이 맞벌이 가구의 12개월 이하 손자·손녀를 돌보는 70세 이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중 한명에게 정부 예산으로 매월 40만원의 수당을 줄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기사는 “정부는 올해 손주 돌보미 서비스 대상을 전국적으로 약 1만 7000여 가구로 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 조선일보 3월 19일자 1면 기사.
 
해당 기사는 곧바로 이슈화되며 사업이 곧 시행될 것처럼 타사에 의해 인용 보도됐다. 자연스럽게 비판도 나왔다. 한겨레는 20일 “이 사업은 여성부 내부에서조차 형평성이나 부정수급 문제에 대한 보완 등 충분한 사전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데다,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어 “손주 돌보미 서비스를 1만7000여 가구가 이용하면 40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예산 확보 방안은 뚜렷이 제시된 게 없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는 청와대로부터 질타까지 받았다. 서울경제 26일자 <청와대, 부처 간 엇박자 정책에 옐로카드>제하 기사에 따르면 청와대는 여성가족부가 추가 재원이 필요한 손주 돌보미 사업을 사전조율 없이 발표한 것을 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재원이 추가로 투입돼야 하는 사업을 청와대, 다른 부처와 상의 없이 추진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조윤선 장관은 진화에 나섰다. 조 장관은 21일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광주광역시와 서울 서초구에서 시행하고 있는 손주 돌보미 사업의 시행착오를 살펴보고, 부정수급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수준”이라며 손주 돌보미 사업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조선일보 첫 보도에서 드러난 적극적 사업추진 의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연합뉴스
 
28일 여성가족부 언론브리핑 자리에선 아예 손주 돌보미 사업을 업무보고 계획에 명시하지 않았다. 여성가족부는 사업 자체가 무산됐느냐는 질문에 “전문가 자문, 의견수렴,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계속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추진은 하겠으나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기다려달라는 뜻이다.

이번 논란은 조윤선 장관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갖고 있던 정책을 조선일보 기자에게 흘렸고, 조선일보는 마치 정책이 확정된 것처럼 제목을 뽑으며 비롯됐다. 이번 사안에 밝은 한 기자는 “18일 조윤선 장관이 조선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다가 서울시 서초동에서 진행 중인 도우미서비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조 장관이 여기에 대해 지나가듯 잠깐 얘기했는데 보도가 대대적으로 나간 것”이라며 이번 사건이 “조선일보의 특종 욕심이 부른 정책 혼선”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정책입안까지는 충분히 논의하고 반대 논리를 설득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업을 확정했으면 브리핑을 했을 것이다”라며 “아직 기획재정부와 협의도 안 된 상황이었는데 워낙에 (조선일보가) 헤드를 확정적으로 써서 국민들은 (사업을) 하는 줄 알게 됐다. 정책을 만드는 입장에선 너무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해당 기사를 쓴 김연주 조선일보 기자는 29일 통화에서 “팩트가 틀린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기자 입장에선 여성가족부 장관 발언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기사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손주 돌보미 정책의 추진 상황에 비해 기사가 너무 앞서나가며 독자들에게 오독할 여지를 주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손주 돌보는 할머니에 月40만원 준다>처럼 단정적인 기사제목이 나갈 경우 정상적인 정책 입안 과정을 왜곡할 수도 있다.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장관이 발언했다면 정책 추진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편집과정에서 기사의 비중을 키우려는 욕심에 확정적으로 편집을 할 경우 받아들이는 독자 입장에서는 정책을 시행하기로 한 것으로 비춰지며 결과적으로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게 된다”고 지적한 뒤 “기자는 정책보도를 할 때 아이디어 차원인지 입법단계인지 입안 단계에 맞게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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