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기상캐스터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습니다. SBS 조경아 기상캐스터인데요, 다름 아닌 지난 22일 SBS '날씨와 생활' 도중 가슴이 보였다는 겁니다. 노출이 심했냐고요? 분홍색 블라우스에 흰 치마, 단정한 옷차림이었지만 블라우스 단추를 제대로 채우지 못해 일어난 실수였습니다.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갑을논박 했습니다. 
 
언론들도 '기회다' 싶었는지 관련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주로 연예 및 스포츠매체였는데요, 일간지나 경제지들도 있었습니다. <조경아 방송사고…가슴 쪽 단추 벌어져 툭 '노출사고'>(스포츠서울), <조경아 기상캐스터, 방송 중 속살 노출…"단추가 그만">(이투데이), <조경아 기상캐스터, 방송중 노출사고 결국…>(한국경제TV), <조경아 기상캐스터, 블라우스 단추 사이로 노출 '헉'>(동아일보)….
 
조경아 기상캐스터는 논란이 일자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옆모습까지 꼼꼼히 체크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의도치 않은 실수였지만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한 사과인데, 동시에 언론보도에 대한 '일침'도 날렸습니다. 조경아 기상캐스터는 "언제 일인지도 모르고 대충 써서 도배해 주신 인터넷 매체님들. 덕분에 잠시나마 검색어 순위에 올라봤네요"라고 말했습니다. 22일 일어난 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되니 2~3일 지났는데도 기사화한 언론에 대한 불만을 내보인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포털 검색창에 '기상캐스터 노출'이라는 단어를 쳐봤습니다. 수많은 기사가 떴습니다. TV리포트가 쓴 <조경아 왜 떴나? 기상캐스터 노출 역사>란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기상캐스터들의 노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는 건데요, 그 예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박은지 전 기상캐스터, '지퍼패션'으로 곤욕을 치른 김혜선 KBS 기상캐스터, 오수진 KBS 기상캐스터를 꼽았습니다. TV리포트는 논란의 이유를 "기상캐스터라는 직업이 하나의 엔터테이너화 되며 구설수가 잦아졌다"고 말했습니다. 
 
   
▲ 논란이 된 조경아 SBS 기상캐스터
 
그렇습니다. 몇 년 전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기상캐스터들은 더 이상 '기상캐스터'로 여겨지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그들의 ‘육감적인’ 몸매와 ‘섹시한’ 의상이 부각됐습니다. 기상캐스터 연관검색어에는 '글래머' '방송사고' '스타킹' '초미니'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기상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하는 기상캐스터가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기상캐스터 대부분이 젊고 호감 가는 인상의 여성들이다보니 성적 대상으로 다뤄지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이름이 '이런 일'로 포털사이트로 도배할 때마다 기상캐스터들은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졌습니다. 물어봤습니다. 한 방송사의 기상캐스터 A씨는 "속상하고 언짢아요"라고 했습니다. 이 분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아마 무슨 말만 하면 기사화하는 언론들을 의식한 게 아닌가 합니다.    
 
A씨는 기상캐스터란 직업에 대한 설명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기상캐스터의 역사가 길지 않다보니 우리 직업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대부분 작가가 써준 대본을 읽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기상청으로부터 예보지를 받는데 간단한 정보만 나와 있어요. 비가 온다면 왜 오는지, 강수량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지 등 취재하고 분석을 해야 하는데 날씨와 기상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에요." 한마디로 "기상캐스터는 전문적인 직업"이라는 겁니다.
 
A씨는 해외의 기상캐스터에 대한 부러움도 나타냈는데요, "날씬하지 않고 외모가 빼어나지 않아도 전문직 그 자체로 인정받고 메인 앵커급 대우를 받잖아요." 
 
   
▲ JTBC 뉴스가 공식 트위터를 통해 아이돌그룹 달샤벳 출신 비키를 기상캐스터로 영입한다고 밝혔다.
 
A씨에겐 종합편성채널 JTBC가 한 아이돌그룹의 멤버를 기상캐스터로 영입한 일도 당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A씨는 "분노했죠, 말도 안 되는 거죠. 뉴스의 기본은 신뢰인데 시청률과 재미를 고려한 선택이 아닐까 했어요. 아이돌 그룹 멤버면 기상에 대한 전문 지식은 아무래도 부족하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영입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상캐스터가 그렇게 하찮은 직업처럼 보였나'란 생각이 들기까지 했어요"라고 털어놓았습니다. 꽤 속상했었나 봅니다. 
 
다른 기상캐스터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방송사 기상캐스터 B씨의 첫마디는 “이런 기사가 쓸 때마다 그냥 씁쓸해요, 유쾌하지 않아요”이었습니다. B씨는 “조경아 씨가 목이 파인 옷을 입은 것도 아닌데 그야말로 트래픽 올리려는 매체의 떡밥이 된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언론의 문제를 짚었는데요, 좀 더 들어봤습니다.
 
“디씨인사이드나 일간베스트에서 이런 사진 올리면 기자들이 이걸 보고 기사를 써요. 일부 마니아들이 올린 사진인데 기자들이 굉장한 이슈인 것처럼 쓰면 정말 대세가 돼버려요. 또 매체 입장에서는 자극적인 기사를 쓸수록 클릭수는 물론이고 온라인 광고비도 올라가니깐 나쁘지 않은 거죠. 정말 우리는 떡밥인 거에요." 결국 이런 기사는 사람들의 관음증과 선정적인 언론의 합작품이라는 건데요.  
 
B씨는 “아나운서들은 단체가 있어서 강용석씨 사건처럼 자신들의 명예가 실추되면 발끈하지만 기상캐스터들은 프리랜서다보니 이런 식으로라도 유명세를 타면 수익과 연결돼 있다 보니 요즘 일부 젊은 기상캐스터들은 이런 기사가 나가는 걸 꼭 싫어하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어요”라는 말도 했습니다. 말투에 안타까움이 묻어났습니다.   
 
   
▲ 네이버에 '기상캐스터'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글래머', '방송사고', '스타킹', '초미니' 등이 뜬다. 연관검색어에 뜨는 기상캐스터 이름 역시 주로 이런 일과 관련해 이름을 오르내렸던 이들이다.
 
기상캐스터들이 겪고 있는 ‘변화’(?)에 대해 회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B씨는 “회사가 방송인을 원하는 건지 스타를 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시청률과 인지도에 영향을 주니깐요”라고 말했습니다. 암묵적으로 부추기는 건 아닐까요. 여성 기상캐스터 1호인 이익선 한국기상방송인협회 회장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이 회장은 최근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기상캐스터들이 대부분 젊은 친구들이다 보니 더 예쁜 모습으로 비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현실이에요. 방송사 측 요구나 고용관계에서 비롯된 측면도 적지 않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기상캐스터를 전문직종으로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있습니다. 기상해설사자격증 시험이 올해부터 신설됐습니다. 많은 기상캐스터들이 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아직도 기상캐스터들의 속살이 궁금하십니까. 여전히 그렇다면,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기상캐스터라는 직업의 속살에 대해 궁금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오늘도, 내일도 기상 자료를 분석하며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기상캐스터에 대해서요. 
 
기상캐스터들을 대신해 언론에 대해서도 한 가지 부탁하려고 합니다. 여성 기상캐스터에 대한 기사를 쓸 때 적어도 이들의 이름 뒤에 ‘기상캐스터’라는 직책을 붙였으면 합니다. 이 분들은 그냥 얼굴 예쁘고, 몸매 좋고, 옷 잘 입는 여성들이 아니라 ‘기상캐스터’입니다. 무엇보다 클릭수의 ‘떡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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