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층 자녀 사회적 배려자 전형 입학’과 ‘뒷돈 입학’ 의혹을 사고 있는 서울 영훈국제중이 고등학교 수업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한겨레 신문 3월 27일). 설립 목적과 달리 국제중이 입시학원화 되었다는 비판이 빗발친다. 박근혜 정부 역시 각급학교 시험문제가 당해 학년을 넘어서는 선행출제를 철저히 단속하여 선행학습 유발요인을 억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교육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선행학습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는 것일까? 그런데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선행학습을 아무리 적발하고 비판해도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선행학습의 대부분이 학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학원이 이런 선행학습을 하는 이유는 학부모들의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즉, 학교 시험에서 선행 출제를 하기 때문에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가 선행학습이나 선행출제의 압력을 학부모들로부터 받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이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고등학생이 학원에 다닐 수 없었던 1980년대 강남지역에서는 고등학교들이 경쟁적으로 선행학습을 했다. 국영수를 정규수업시간뿐 아니라 보충수업까지 편성하고, 심지어 음악·미술 시간 대신 국영수 수업을 하면서까지 두 배 빠르게 진도를 나갔다. 그래서 2학년이 끝나기 전에 이미 고등학교 전체 과정을 마치고, 남은 1년을 문제풀이 연습으로 일관했다.

이런 파행적인 수업이 이루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 입시라는 레이스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앞에서 출발 시키고 싶은 학부모들의 욕망과 여기에 대해 줏대 없는 태도로 대처한 학교와 교육당국의 무원칙 때문이다. 이미 충분히 연료가 있는 상황에서 재학생 학원 등록이 합법화 되면서 선행학습 무한 경쟁의 불이 붙었다.

학원은 학원대로 선행학습이 짭짤하다. 선행학습은 학원의 책무성을 면탈시켜 준다. 또한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며, ‘선행’이라는 이유로 특별 수강료를 받을 수 있게 한다. 이들은 초등학교 교육과정, 중학교 교육과정은 마치 무시해도 되는 것으로 선전한다. 강남권 중학교에서는 “수능 준비 하고 있으니 시시한 수업 안 받겠다”며 수업시간에 무례하게 구는 학생들이 비일비재하며, 이 때문에 특히 예체능 계열 교사들이 교직에 회의를 느끼며 명예퇴직 하는 경우도 많다.

학부모들은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중학생인 자녀의 학교 성적이 잘 안 나와도 고등학교 3학년 문제집을 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걸로 안심할 수 없다. 고3 문제집을 풀고 있는 중학생이 늘어나면 앞자리에 서고자 한 선행학습의 효과는 그만큼 반감된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고3 문제집을 풀어야 한다. 이렇게 선행학습의 쳇바퀴는 점점 빨리 돌아간다.

   
학교 정규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이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학원행 버스에 타기 위해 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 웬만큼 이름 있는 학원에서는 초등학교 5, 6학년을 앉혀놓고 고등학교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거나, A4 두 쪽이 넘는 영어 에세이를 쓰고, 영어로 된 소설을 읽히는 풍경이 낯 설지 않다. 특히 이른바 고학력 중산층이 거주하는 지역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익혀 가지고 입학한 학생들 때문에 초등학교 저학년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학교는 배우러 가는 곳이 아니라 미리 배워온 것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 뽐내고 확인하기 위해 가는 곳이라는 말이 이른바 돼지엄마들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여기에 비하면 일부 중·고등학교의 선행 출제는 심각하다기 보다는 조잡한 모조품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런데 교육당국은 선행학습을 요구하는 이른바 교육 수요자를 설득할 방안, 학원에서 이루어지는 선행학습을 강력하게 단속할 방편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학교에 대해서만 선행학습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다시 학교가 수요자들의 요구를 맞추지 못한다는 핑계로 작용하여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사교육 의존도만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학교는 지금 정부로부터 받는 상반된 요구에 지쳐있다. 한편에서는 교육 수요자주의에 기반한 시장논리가 귀청을 때리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교육적 원칙을 내세우며 수요자의 요구에 따른 학교에게 경고를 주고 있다. 한 편에서는 사교육보다 공교육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 편에서는 사교육의 주특기를 공교육에 들여오려고 하는 학교를 징계하고 있다. 이러는 가운데 학원들은 거침없이 선행학습의 강력한 바퀴를 돌리며,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만약 교육당국이 정말로 선행학급을 근절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우선 선행학습이 해로운 것이며, 아이들에게 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더군다나 선행학습으로 이윤을 챙기는 행위는 범죄에 가깝다고 천명해야 한다. 이런 단호함 없이 선행학습은 절대 근절되지 않는다.

선행학습이 해로운 이유는 간단하다. 선행학습은 학생들의 정상적인 발달단계에 맞춰 편성된 교육과정을 교란한다. 발달단계가 충분히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연령대 보다 훨씬 상위 수준의 내용을 학습한 아이들은 어른들 보기에는 대견할지 몰라도, 인지적·심리적 혼란을 겪는다. 결국 아이들은 그 나이 또래의 방식으로 그 내용을 소화하게 되며, 이는 잘못된 인지구조로 굳어져서 정작 그것을 익혀야 할 시기에 가서 그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된다.

물론 이른바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더 빨리 소화해내는 학생이 있을 수 있다. 이런 학생을 영재학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영재학생은 매우 드물다. 또 영재교육을 한다고 해서 보통 학생이 영재학생으로 변신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전국 곳곳에서 선행학습에 몰두하는 학원들을 먹여 살리는 수많은 학생들은 교육이 아니라 뇌에 놓는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있는 것이다. 교육당국이 이런 비교육적인 상황을 넋 놓고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흔히 대학입시를 마라톤에 비유한다. 그런데 훌륭한 마라톤 선수가 풀코스에 빨리 입문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오히려 중장거리 선수로 뛰다가 20대 후반에 마라톤으로 전향한 경우가 많다. 이는 마라톤 선수가 되기 위한 훈련과 발달 과정이 그만큼 길고 세밀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들을 착실하게 밟은 뒤 하프 마라톤에 데뷔하고, 하프 마라톤을 2년 이상 달린 다음에 비로소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는 것이 정상적인 코스다.

이 착실하지만 지루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조금이라도 먼저 실전 경험을 익히게 한다면서 무리하게 어린 나이에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시킨다면, 한 두 번은 용케 뛸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오래지 않아 심각한 운동 상해를 입고, 선수생명은 끝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일이 ‘자식을 위해서’라는 미명하에 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교육 당국이 대처하고 엄히 다스릴 지점은 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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