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아키하바라 거리에는 주말마다 긴 줄이 늘어선다. 제법 덩치 있는 20~30대 남자들이다. 대부분이 볼품없는 옷을 입고 가게 앞에 서 있다. 이들은 옷값과 밥값을 아껴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한정판 상품을 사기 위해 먼 길을 온다. 아무 말이 없던 그들은 한정판을 '득템'하고선 재빨리 발걸음을 옮긴다.

아키하바라의 '오타쿠' 아저씨들은 '무연사회' 일본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저 출산에 개인주의, 고령화가 더해져 일본에선 혼자 살다 혼자 죽는 '무연사'가 하나의 사회현상이 됐다. 이제 옆집에 사는 누군가의 죽음은 집세를 내지 않거나, 역한 냄새를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오지 않는 한 알 수 없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알 필요가 없게 됐다.

한국은 빠르게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2013년 대한민국 1인가구는 453만 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의 10분의 1 수준이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전격 도입되며 사람들은 경쟁에 치여 생존을 위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가족은 '해체'되어 어머니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 해외로 나가고, 아버지는 '한국에서 돈을 부쳐주는 사람'으로 전락했다.

'솔로족'과 '기러기 아빠'의 등장이 사회의 결과물이듯이, 지난 22일 정규편성 돼 첫 방송이 나간 MBC <나 혼자 산다> 역시 언젠가 시청자가 마주할 예능프로그램 포맷이었다. <나 혼자 산다>는 시작부터 끝까지 '싱글'의 삶을 그린다. 연예인이 주인공이지만 보통의 싱글들이 겪는 현실과 환상을 동시에 보여준다.

   
▲ 22일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의 한 장면. ⓒMBC화면 갈무리
 
“사람은 누구나 혼자다”라는 말로 시작한 첫 방송에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싱글로 유명한 노홍철이 메인 MC로 등장했다. 노홍철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부유하고 깨끗한 집을 보여주며 싱글족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다. 노홍철은 "나는 결혼을 안 하는 거다"라며 혼자 사는 삶에 대해 "전혀 불편함을 못 느낀다"고 자신했다.

그의 말은 상징적이다. 우리는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족은 해체됐다. 가족은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과 아내이기 이전에 개별적인 임금노동자로서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며 살아내야 한다. 혼자 사는 삶은 스스로를 '개발'하는데 유리하며 가족에게 투여되는 돈으로 여가를 즐길 수도 있어 만족감이 높다.

하지만 방송은 '확신에 찬 싱글'만 비춰주진 않는다. '기러기 아빠' 이성재는 '불금'(불타는 금요일)에 반려동물의 털을 빗겨주며 집에 머문다. 어설픈 자세로 청소기를 돌리거나 배달요리를 시켜 침대위에 신문지를 깔고 허겁지겁 먹기도 한다. 또 다른 기러기 아빠인 김태원은 건강을 위해 번데기 다이어트에 집중한다. 그들의 일상이 주는 웃음은 어딘가 외롭다.

<나 혼자 산다>는 언젠가 무연사를 당할지 모르는 싱글족의 태생적 비극을 드러내는 대신, 홀로 사는 남성들의 삶이 줄 수 있는 웃음에 초점을 맞춘다. 김광규는 '노총각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며 홈쇼핑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모습을 비춰준다. 그는 빨래 개기의 달인이 되었다고 자찬하고, 주말엔 게임을 즐기고, 혼자 살면서 자유로워진 괄약근 때문에 어디서나 더럽게 방귀를 낀다.

데프콘은 이불의 보풀을 제거하는 의외의 깔끔함을, 서인국은 쓰레기더미에서 핸드폰을 찾는 의외의 지저분함을 보여준다. 모두가 싱글남의 여러 유형에 해당한다.

   
MBC <나 혼자 산다>의 한 장면. ⓒMBC화면 갈무리.
 
이들은 스마트폰으로 그룹채팅을 하며 외롭지 않다고 서로에게 주문을 건다. 그들은 함께 만나 '연대'를 약속한다. 프리마켓을 열고 물물교환을 하자고 뜻을 모으는가 하면, 서로의 넘치는 성욕에 대해 이야기하며 소통에 노력한다. 노홍철은 솔로 동지들에게 피부미용 비누와 수건을 나눠주기까지 한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자발적 솔로족은 스스로의 삶에 대해 만족해야 한다는 일종의 당위성을 갖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솔로들의 삶은 외롭다. 데프콘은 극중 TV를 보며 치킨을 맛있게 먹었지만, 혼자 먹는 치킨이 맛이 없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솔로남'의 일상은 대게 냄새나는 방에서 등이 굽은 채 컴퓨터를 응시하며 현실을 회피하는 때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나 혼자 산다>는 싱글남들의 '건승'을 바라고 있다. 이는 프로그램 성격이 다큐보다는 힐링에 있기 때문이다. 가진 게 없을수록, 지킬 게 없을수록 삶은 단순하고 부드럽게 흘러가기 마련이며, 더불어 상대방을 생각할 기회도 준다. 도쿄 아키하바라의 그들처럼 한정판 피규어에 만족할지, 아님 '화려한' 솔로가 될지는 자발적 싱글과 비자발적 싱글간의 연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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