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온라인 포털사이트는 걸그룹 ‘미스에이’의 수지 화보로 화제였다. 19일 하루 동안 총 35건의 기사가 올라왔다. 그런데 매체는 다르지만 모두 똑같은 기사가 올라왔다. 이날 ‘수지 화보’ 기사는 대량생산되고 빠르게 소비되는 포털사이트의 ‘표류적 뉴스읽기’와 페이지뷰(PV)를 올리려는 매체의 상업주의가 빚어낸 무수한 가십 중 하나였다.

19일 오전 10시 26분 제이콘텐트리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 임지은 차장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이 왔다. 잡지 <쎄씨>가 수지의 화보컷을 추가로 공개했다는 보도자료였다. 총 5장의 사진이 함께 첨부됐다. <쎄씨> 4월호를 홍보하면서 동시에 수지가 출연 예정인 드라마 <구가의 서> 홍보를 겸하는 내용이었다.

보도자료가 나가고 약 6시간 동안 온라인매체는 이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꼈다. 19일 스포츠서울 기사를 보자.

“…이날 공개된 사진에서 수지는 화이트 드레스를 입고 화이트 헤어 액세서리를 더해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윳빛 피부톤을 살린 베이비페이스 메이크업은 수지의 청초한 매력을 더욱 더했으며, 특히 남심을 송두리째 뒤흔들 것만 같은 몽환적인 표정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밖에 절개가 인상적인 화이트 드레스 속의 수지는 숨겨진 바디라인을 드러내며 섹시한 매력을 발산, 소녀에서 숙녀로 변해가고 있는 수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였다.”

   
▲ '쎄씨'에서 제공한 미스에이 수지의 화보 사진. ⓒ쎄씨
 
제이콘텐트리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이 작성한 보도자료에는 다음의 내용이 적혀있다.

“…사진 속 수지는 화이트 드레스를 입고 화이트 헤어 액세서리를 더해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윳빛 피부톤을 살린 베이비페이스 메이크업은 수지의 청초한 매력을 더욱 더했다. 특히 남심을 송두리째 뒤흔들 것만 같은 몽환적인 표정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또 절개가 인상적인 화이트 드레스 속의 수지는 숨겨진 바디라인을 드러내며 섹시한 매력을 발산했다.”

사실상 기사가 보도자료와 똑같은 내용이다. 이어 등장하는 화보촬영 관계자의 코멘트도 똑같았다. 기자들은 “만개한 꽃들 사이에서 유독 활짝 핀 수지의 모습은 차가운 겨울을 지나 더 아름답게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웠다”는 보도자료 문장을 그대로 옮기기도 했다. “나는 아직 3%도 보여주지 않았다” “내 나이에 맞는 것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나가고 싶다”는 수지의 코멘트 역시 보도자료에 그대로 나와 있다.

이 같은 보도자료 베껴 쓰기는 스포츠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의 모든 매체가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꼈다. 해당 보도자료를 ‘Ctrl A(전체 선택)+Ctrl C(복사)+Ctrl V(붙여넣기)’ 하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보도자료를 기사작성 창에 옮겨 사진을 붙이기까지는 1분이면 충분하다. 바이라인이 달리는 기사를 쓰는데 채 1분도 걸리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관건은 ‘제목’이다. 기사내용이 다 똑같은 상황에서 가장 차별화되는 장치는 제목뿐이다. 스스로 가치 있는 뉴스를 찾지 못하고 ‘표류적 뉴스 읽기’를 유발시키는 인터넷 포털의 속성상 수많은 매체들은 자극적이고 단순하고 쉽게 작성할 수 있는 기사가 필요하다. 수지 화보 보도자료를 기사화 한 것 중 눈에 띄었던 제목은 다음과 같다.

   
▲ 수지 화보를 받아쓴 기사 갈무리.
 
<수지, 화보 추가컷 공개 “수지에게 이런 섹시함이?”> (스포츠월드)
<수지 화보 추가 공개, “나는 아직 3%밖에 보여주지 않았다”> (스포츠한국)
<수지 화보, 순백 원피스 입고 ‘슬림 몸매’ 뽐내> (머니투데이)
<수지 화보, 긴 머리 나풀 ‘순백 천사’> (한국경제TV)
<수지, 허리트임 드레스 ‘우윳빛 피부톤’> (스포츠월드)
<수지, 몽환적인 눈빛 ‘이정도는 되야 국민첫사랑’> (스포츠월드)
<수지, ‘순백의 美란 이런 것’> (스포츠경향)
<수지 옆모습, 슬림 라인 공개 ‘눈빛 도발’> (한국경제TV)
<수지, 순백 원피스 청순女 ‘국민 첫사랑’> (한국경제TV)
<수지, 청순과 섹시의 조화 ‘빨려들고 싶은 눈빛’> (스포츠동아)

티브이데일리의 경우 보도자료와 함께 제공된 사진 다섯 장을 한 장씩 활용해 다섯 개의 기사를 생산해냈다.

<수지 화보, S라인 살린 요염포즈> (티브이데일리)
<수지 화보, 옆트임 원피스 ‘뽀얀 속살 노출’> (티브이데일리)
<수지 화보, 새빨간 립스틱 칠하고 도발 포즈> (티브이데일리)
<수지 화보, 우윳빛 피부 ‘청초한 매력 과시’> (티브이데일리)
<수지 화보, 카메라 빤히 바라보는 당돌 눈빛> (티브이데일리)

‘수지 화보’ 기사는 보도자료가 하나의 도매상품이 되어 매체를 통해 유통되고 소비자는 수지의 사진을 소비하며 PV(페이지뷰)를 올려주고 언론사는 이를 통해 온라인광고수익을 올리고 이 과정에서 ‘저널리즘’은 없다는 불편한 온라인미디어시장의 단면을 시사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