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반핵운동에 몸담아온 의사 히다 슌타로(96)가 노구를 이끌고 한국을 찾아 원자력발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히다는 “후쿠시마는 한국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방사능을 매일 생산하는 원전을 가능하면 하나씩이라도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에는 20개의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50개 원전 가운데 2곳만 가동하고 있다. 

히다 슌타로는 1917년 히로시마 출생으로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미국의 원자폭탄으로 피폭을 당해 골수 기능 이상과 급성빈혈을 겪었다. 의사였던 그는 6000여명 이상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피폭의 실상을 UN 등 전 세계에 알렸으며 일본 원폭 피폭자 중앙 상담소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지난 17일 그를 ‘2013 보건의료진보포럼’ 강연자로 초청했다.

그는 이날 자리에서 68년 전을 떠올리며 “원폭 피해는 군사기밀이었다. 피폭을 가족에게조차 얘기할 수 없었다. 학자들도 입을 다물어야 했다”며 일본정부를 비판한 뒤 “처음 원폭이 터지고서 방사능이 인체에 어떤 해를 가하는지 의사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병을 고치는 것이 의사의 숙명이라고 생각해 노력했지만 지금도 일본은 피폭과 질병의 관련성에 대해 쉬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히다에 따르면 히로시마 피폭자는 80만명이며, 이 중 현재까지 생존한 이는 20만 명 수준이다.

   
▲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이자 반핵 활동가인 의사 히다 슌타로. ⓒ정철운 기자
 
그는 “히로시마 원폭 이후 폐허의 히로시마에서 살아간 사람들도 죽어갔다. 당시 의사로서 병명을 진단할 수조차 없었다. 값이 싸다고 해서 방사능의 공포를 기반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 가장 큰 피해는 어린이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는 “후쿠시마가 어떻게 될지 관심 있게 지켜봐 달라. 후쿠시마는 한국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방사능 누출 규모로 볼 때 히로시마 원폭보다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는 “몇 년이 지나면 의학적 근거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각종 희귀병을 가진 어린이와 어른들이 후쿠시마에서 반드시 등장할 것이다. 아무 이유없이 설사가 이어지고 코피가 멈추지 않고 구강염이 계속되는 일이 이어질 것이다. 일본은 결국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후쿠시마사고는 필연적으로 한국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예로 체르노빌 원전사고(1986년 4월 26일) 이후 한국에서 갑상선 질환 발병률이 증가했다. 체르노빌 주변 국가 벨로루시는 사고 후 어린이 갑상선암 발생률이 30배 증가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일주일 후, 일본 과학계는 한반도에 방사능 낙진이 있다고 발표했다. 전두환 정부는 “방사성 낙진이 없다”며 안심하라고 말했지만, 빗물 속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자 “빗물을 마시지 말라”(1986년 5월 5일)고 밝혔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2002년 기준으로 20~24살의 경우 전체 암 가운데 갑상선 비중이 30% 이상이다. 1996년보다 8.6%가 늘어난 수치다. 인구 10만 명 당 여성 갑상선암 발생률도 15.7명으로 체르노빌 주변국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수준이다. 지금 20~30대 여성은 20년 전 방사능에 취약했던 영유아들이다. 

히다는 “한국의 갑상선 질환 증가가 체르노빌 사고의 영향이라 생각하고 싶지만 병의 증가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밝힌 뒤 “갑상선 질환에 걸린 아이와 부모를 세밀하게 취재하고 분석해야 연관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그는 이어 “피폭을 주장해도 정말 피폭으로 죽었는지 의학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체르노빌(1986년 원전폭발)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핵발전의 희생자들이 나오고 있다”며 “지금까지 피폭으로고 죽어간 사람들이 셀 수 없다. 방사능은 그 자체로 인간과 공존할 수 없다. 핵을 만드는 사람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히다는 이날 자신을 찾아온 한국의 원폭2세들에게 “히로시마에선 피폭자들이 60년간 단결해온 결과 치료비를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피폭자는 아무런 죄가 없다. 끈기를 갖고 원폭피해자를 위한 법률을 만들어 지원을 하게끔 노력해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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