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못 생기지, 않았습니다.”

KBS 2TV <개그콘서트> ‘희극 여배우들’ 첫 방송에서 개그우먼 박지선(30)의 나지막한 일성(一聲)은 강렬했다. 여성 희극인들은 대게 예쁜 캐릭터와 못생긴 캐릭터 둘로 나뉜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다. 하지만 박지선은 새 영역을 개척했다. ‘호감형 못난이’다. 박지선의 자신감은 시청자에게 사회통념을 깨는 쾌감을 선사했다.

지난 11일 KBS에서 만난 박지선씨는 “내 기사에 달렸던 댓글 중에 ‘박지선은 만날 외모 같고 개그 하는데 자존감이 높아보여서 맘에 든다’는 말이 있었다. 너무 좋아서 캡처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흔히 ‘못 생긴 코미디언’을 이야기할 때 박지선을 떠올리지만, 그녀에게 외모란 허경환의 작은 키와 김준현의 뚱뚱한 몸매처럼 웃기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아이디어로 웃기고 싶은 생각은 늘 있는데 외모가 부각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제는 각자 맡은 분야가 있는 것 같다. 외모 개그는 누구나 한다. 중요한 건 연기를 잘 살리는 것이다.”

2009년, 박지선은 코미디언 중 최초로 여성학자 캐릭터를 성공시키며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여성시대’ 코너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지향한다”며 등장한 뒤 못생긴 외모로 차별받는 일상을 웃음으로 전환시켰다.

박 씨는 “연예인이 되고 나서 외모를 지적하는 댓글이 달릴 때 기분이 상하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예전에는 못생겼다는 말도, 예쁘다는 말도 못 들었는데 지금은 못생겼다는 말과 예쁘다는 말을 같이 듣는다”고 했다. 그녀는 “예쁘다는 말을 듣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스스로에게 당당해지며 듣게 된 말이었다.
 

   
KBS 개그우먼 박지선씨.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처럼 박지선을 당당하게 만든 힘은 긍정적 삶의 태도였다. 68만 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는 박 씨의 트위터에선 긍정의 에너지가 넘친다. 예컨대 “분노연기를 앞두고 감정이 안 잡혔는데 셀카를 몇 장 찍다보니 금세 감정이 올라온다 야호”, “친구에게 ‘나 요즘 최고로 못생겨진 것 같아’라고 했더니 친구가 대답했다. 넌 언제나 나에게 최고였어.”와 같은 트윗을 올리는 식이다.

그녀는 트위터에서도 희극인의 정신을 발휘하고 있다고 했다. “기분이 안 좋아도 글을 쓰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하하하하하하’ 같은 글을 쓰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즐거워진다. 간혹 기분이 다운되더라도 그걸 나타내면 68만 명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나도 내가 참 좋다’라고 올리면 다른 사람들이 긍정의 힘을 얻어갈 수 있다.”

희극여배우이자 ‘여성학자’ 출신인 박지선씨는 지난 8일 ‘세계여성의 날’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105년 전 여성들은 반민주적이고 억압적인 남성 중심 사회에 저항하며 시위에 나섰고, 피로서 여성의 권리를 세워냈다. 박지선을 비롯한 대다수 여성들은 여전히 일상에서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무엇보다 <개그 콘서트> 여배우들 간의 끈끈한 ‘연대’가 우선이라고 했다. 박씨는 “남자들이 스포츠로 뭉칠 때 여자들은 먹거리와 다이어트로 뭉친다. 매운 떡볶이를 먹으면서 다이어트 요가를 얘기하는 식”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정경미씨의 웨딩촬영 때는 여성 희극인이 다 모여 30명이나 됐다고 했다. 서로 고민을 나눌수록 아이디어도 나오고 삶을 지탱하는 힘도 생긴다고 했다.   

“우리는 남자들처럼 탈의를 할 수 없다. 쫄쫄이를 입기도 쉽지 않다. 여자가 입으면 라인이 생긴다. 쫄쫄이를 입으면 여자는 그 안에 이것저것 집어넣어야 한다. 남자와 남자의 스킨십은 가능해도, 여성과 여성이 키스를 하는 장면은 여태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점점 희극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개그의 폭을 넓혀나가고 싶다고 했다.

데뷔 7년차. 꾸준한 인기 속에 욕심도 부려볼만 한 데 그녀의 꿈은 소박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연예인이 됐을 때, 부모님께서 말했다. ‘팬들은 너를 사랑해주다가도 언젠가는 돌아설 거야.’ 나는 이 직업이 기복이 있는 걸 알고 있다. 사람들이 박지선을 떠올렸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코미디언으로 남고 싶다.”

그녀는 이날 인터뷰를 위해 4개월 만에 미용실을 찾았다고 했다. “이발하러 갔더니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고, 연예인이 어떻게 샵을 4개월 만에 오냐고 하더라. 하하하하하.” ‘호감형 못난이’ 박지선의 매력에 빠진 기자는 그녀에게 초콜릿을 선물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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