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국민들 앞에서 첫 시험을 치르는 박근혜 대통령의 자세가 아슬아슬하다. ‘방송정책’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사상초유의 정부조직개편 지연사태라는 어려운 시험문제 앞에서 박 대통령은 ‘문제’를 찬찬히 풀어낼 생각보다는 출제자인 국민에게 화를 참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4일 오전 대국민 담화에서 “이 문제에 대해 결코 물러설 수 없다”고 스스로 퇴로를 막아 버렸다. 결전을 앞두고 적들을 향해 전의를 불태우는 ‘장수’와 같은 모습이다. 얼마 전까지 ‘100% 대한민국’ 국민대통합을 이야기하던 대통령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사회적 정치적 갈등의 최종 해결자로서 아무리 자신의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 현실을 당면하고 있더라도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 대통령이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찾지 않고 화부터 낸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남기는 것은 대통령 자신에게나 국민에게나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국회에서 여야가 협상 중에 있는데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자신의 주장을 앞세워 버리는 모양새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무시하는 처사로 인식되기에 충분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 간 대립으로 국정 공백 상태가 장기화되는 것과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고집스런 태도가 우려되는 이유는 해당 사안에 ‘삼성’의 방송플랫폼 시장 진출을 열어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화에서 나타난 박 대통령의 인식을 구체적으로 요약해보면, IPTV·케이블SO·위성방송 플랫폼사업에 대한 인허가권을 ‘독임제’ 부처가 갖지 못하면, ICT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지도 못하고, 일자리 창출도 못한다는 것이다.

IPTV·케이블SO·위성방송 등 유료방송플랫폼 사업은 철저한 내수사업으로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이다. 오직 사업자간의 시장 쟁탈전만 치열한 상태다. 그래서 이 시장을 새로운 신성장동력의 기반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민망하다.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확장될 시장수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 기존 유료방송플랫폼에 대한 인허가권을 갖는다 해도 정부가 행사할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다는 명분을 계속 내세우며 유료방송플랫폼에 대한 정책권한을 대통령까지 나서 고집하는 것을 보면, 현재 쟁점이 되고있는 유료방송플랫폼들의 채널편성권을 통한 ‘방송장악’이라는 문제말고도 또 다른 배경이 분명 있어 보인다. 

유료방송플랫폼에 대한 인허가권을 미래창조과학부가 갖도록 하겠다는 것은 단순히 기존방송사업자에 대한 ‘통제’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방송플랫폼 또는 ‘정책규제완화’를 통한 새로운 사업자의 출현을 허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포화된 유료방송시장에 신성장동력을 명분으로 등장시킬 새로운 ‘방송플랫폼’ 또는 규제완화와 그 수혜자는 무엇이고 누구일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수혜자는 바로 ‘스마트TV’나 ‘휴대단말기’를 생산하고 있지만, ‘방송사업자’로서 지위가 없기에 ‘방송서비스-단말판매’의 수직계열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삼성 등 가전재벌사들이다. 이들 받는 수혜는 별도의 ‘방송플랫폼’사업권을 부여받거나 그들이 생산판매하는 ‘스마트TV’ 단말기에 실시간 방송서비스를 허용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유료방송플랫폼에 대한 인허가권을 갖게 되면, 새로운 방송사업권을 허가하거나 규제를 완화해주기 수월하게 된다. 새로운 사업권을 도입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기존 방송플랫폼 사업자들의 반발인데, 이들에 대한 인허가권을 독임제장관이 쥐고 있으면, 그들의 저항을 쉽게 잠재울 수 있다. 유료방송 인허가권의 방송정책권이 독임제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로 넘어가면, ‘스마트TV’의 대표주자인 삼성TV가 ‘방송플랫폼’이 될 기회를 얻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두고 담화를 밝혔는지 알 수 없다. 할일 많은 박 대통령이 이런 구체적인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유료방송플랫폼 정책권을 고집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계속 무서운 표정으로 유료방송플랫폼 인허가가권의 미래부 이관을 계속 고집한다면, ‘방송장악’ 논란을 넘어 삼성의 ‘방송진출’특혜가능성 논란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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