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을 즐겨보는 시청자에게 지난주 기억에 남는 인물을 묻는다면 아마 성룡일 가능성이 높다. 성룡은 지난 2월 28일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했고, 3월 3일에는 SBS <런닝맨>에 출연했다. 갑자기 성룡이 한국 예능에 등장한 이유는 영화 때문이다. 성룡이 직접 감독과 주연을 맡은 <차이니즈 조디악>이 2월 27일 개봉한 것.

성룡의 예능 출연은 영화의 홍보를 위해서다. <차이니즈 조디악> 홍보를 맡은 조이앤컨텐츠그룹은 4일 보도자료를 내고 “성룡이 무릎팍도사와 런닝맨 출연으로 전 국민을 사로잡으며 개봉 첫 주말 흥행 순항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성룡은 20일 방송된 SBS <한밤의 TV연예>에도 출연했고, 23일엔 KBS <연예가중계>도 얼굴을 드러냈다.

성룡처럼 영화 개봉이나 또는 음반 발매, 드라마 시작 시점에 맞춰 연예인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경우는 일상적이다. 2월 21일 개봉한 영화 <분노의 윤리학> 주인공인 조진웅은 MBC <무릎팍도사> 2월 14일자 방송에 출연했다. 한국서 1월 9일 개봉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감독 워쇼스키 남매는 1월 3일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다.

   
▲ SBS '런닝맨'(왼쪽)과 MBC '무릎팍도사'(오른쪽)에 출연한 성룡.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2월 18일 방송에선 오는 3월 7일 개봉 예정인 <사이코메트리> 주연 김강우가 출연했다. 2월 11일 방송에 출연한 최민수는 2월 7일 본인의 앨범을 냈다. 1월 9일 개봉한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의 주인공 김래원은 1월 14일 방송에 등장했다.

SBS <런닝맨>의 경우 2월 10일 방송에서 황정민과 박성웅이 출연했다. 둘은 2월 21일 개봉한 영화 <신세계>의 주인공이다. 1월 13일 방송에서 박신양과 엄지원이 출연했다. 이들은 1월 9일 개봉한 영화 <박수건달> 주인공들이다. 

최영인 SBS <힐링캠프> CP는 이 같은 ‘홍보성’ 출연을 두고 “가수들이 음반이 나오면 방송에 나오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라 설명했다. 최영인 CP는 “배우들 입장에선 항상 (방송에) 노출될 수는 없으니 홍보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이 필요하다”고 전한 뒤 “제작진 입장에서도 홍보스케줄을 고려해 출연시킬 경우 서로 윈윈하기 쉽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MBC 예능PD도 “홍보시기가 아니면 연예인들도 활동하기가 민망하다. 연출입장에선 연예인이 뜬금없이 나올 경우 말이 안 된다”며 “아무리 토크라고 해도 옛날이야기만 할 수는 없다. 노골적인 게 아니라면 활동이 시작되는 타이밍에 맞춰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고 밝혔다.

최 CP의 지적처럼 홍보성 출연은 새로운 일이 아닌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포맷이다. 예능프로그램에 연예인이 출연해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는 것을 두고 윤리적인 잣대로 비판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지난주 성룡의 경우처럼 한 인물이 홍보를 위해 예능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강명석 문화평론가(전 <10아시아> 편집장)는 “과거 <무릎팍도사>가 획기적이었던 것은 의외의 인물이 출연해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능프로가 <무릎팍도사>처럼 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워쇼스키 남매.
 

예컨대 어떤 사건에 대해 반드시 해명하고 싶은 인물이 아니고서는 홍보 외의 목적으로 연예인을 섭외하기는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방송사의 영향력이 예년에 비해 점점 줄어들며 섭외에 어려움을 겪는 예능PD들이 홍보성 출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배경도 있다.

강명석 평론가는 그러나 “하루 간격으로 특정 연예인이 여러 프로에 출연하는 것이 시청자 입장에서 좋아할 만한 조합은 아닌 것 같다”고 비판했다. 강명석 평론가는 “최근 예능토크쇼의 침체를 보면 새로운 기획을 다루지 못하는 한계가 보인다”고 밝힌 뒤 “한동안은 차별화된 사람을 묶어 출연을 시키는 모습도 보였지만 의외의 인물이면서도 이야기가 재밌는 사람을 섭외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제작진 입장에선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예능에서 ‘의외의’ 출연진을 찾기란 쉽지 않다. MBC <라디오스타>의 경우 ‘민머리 특집’, ‘희안한 사람들 특집’처럼 특정 키워드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연예인을 출연시키며 호평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이 방법이 늘 시청률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KBS 2TV <해피투게더>처럼 KBS 월화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의 한채영, 진구, 박하선 등을 출연(2월 21일)시키거나 KBS 수목드라마 <아이리스2> 이범수, 이다해, 장혁 등을 출연(2월 7일)시키는 식으로 자사 드라마 홍보라는 안정적인 스토리구성을 택하는 경우가 눈에 띈다. 하지만 이같은 포맷은 홍보성 출연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참신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아이리스2' 주인공들이 출연한 KBS '해피투게더'의 한 장면.
 

유선주 TV칼럼니스트는 “시청자들이 홍보성 출연을 용인하게 된 계기가 <놀러와> 시절부터인 것 같다. <놀라와>는 홍보 출연일지라도 다른 이야기들을 끌어내며 거부감을 줄였다”고 밝힌 뒤 “하지만 근래의 겹치기 출연이나 홍보성 방송을 보면 이제와 식상하다고 말하기 애매할 정도로 식상하다”고 우려했다. 

유선주 칼럼니스트는 “연예인들이 <개그콘서트>나 <런닝맨>에 나와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고 홍보에 치중할 경우 내용이 지리멸렬하게 진행된다. <개그콘서트>의 경우 잘 나가던 프로가 망가지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 홍보로 긴장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뒤 “제작진에게는 연예인에게 홍보 이외의 것을 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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