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 첫방송 된 JTBC 예능프로그램 <썰전>은 타사 예능을 비평하는 독특한 콘셉트를 갖고 있다. 첫 방송에선 강호동·유재석·신동엽 가운데 예능대통령을 뽑았고, KBS <달빛프린스>의 시청률 부진 이유를 가감 없이 지적했다. 지난 2월 28일 2회 방송에선 SBS <정글의 법칙> 조작논란을 다뤘다. 3회에선 종합편성채널의 1년을 총정리 하며 자아비판에 나선다.

<썰전>은 정치비평도 한다. 방송인 김구라씨와 강용석 변호사, 이철희 정치평론가가 한 주간의 시사이슈를 정리한다. 예능인만큼 수준이 높은 건 아니다. MB정부 5년을 두고 “너무 길었다”, “너무 짧았다” 수준의 감상평이 나오는 식이다. 하지만 정치에 무관심한 시청자에게 박근혜정부 인사코드 특징이나 북한 핵실험의 배경 등에 대한 설명은 친절한 편이다.

<썰전>은 전직 공영방송PD들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여운혁CP는 MBC, 김수아PD는 KBS 출신이다. <썰전>은 공익성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연예인의 가십이 등장하지 않는 점에서 신선하다. 여자아나운서에 대한 성희롱 발언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강용석씨의 출연은 불편하지만 그 덕인지 방송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 JTBC '썰전' 2회 방송의 한 장면.
 

지난 2월 28일 만난 제작진에게 대뜸 <썰전>이 노이즈마케팅을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여운혁 CP는 망설임 없이 “인정한다”고 답했다. 여CP는 “이제는 채널도 많고 방송이 많다. 우리 프로그램의 소재로선 적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첫 방송 나가고 바로 강호동에게 전화가 왔었다. ‘첫 회라서 너를 팔았다,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썰전>의 소재는 하나하나가 기사거리였다. 지금껏 방송사가 타 방송사 예능을 비평하는 것은 금기처럼 여겨져왔기 때문이다. 오직 수 년전 MBC <무한도전>만이 스스로 비평을 시도하며 KBS <해피투게더> PD에게 코멘트를 부탁했던 적이 있을 뿐이다.

김수아 PD는 타사 예능 비평과 관련, “이예지 PD(달빛프린스)도 너무 잘하지만 그 친구가 (방송을 보고) 기분 나빴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정도 사이즈는 아니다.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선수’들끼리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썰전>이 노이즈마케팅을 의도했더라도, 내용에서는 그간의 예능에서 볼 수 없었던 미디어비평의 성격이 있어 흥미로운 게 사실이다. 패널로 등장하는 허지웅 평론가의 날카로운 분석과 방송가 사정을 꿰뚫고 있는 김구라의 코멘트가 어우러지니 제법 볼 만한 것. 

김수아 PD는 “<슈퍼스타K> 이후 사람들은 가수와 음악을 비평하는 수준이 됐다. 하지만 예능의 경우 어떤 프로그램이 별로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TV에서만 말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우리는 사람들이 다 갖고 있는 수요에서 접근했다”고 제작배경을 설명했다.

여운혁 CP는 “2000년대 월드컵이 지나고부터 예능이 비평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예능은 많은 발전을 했다”고 밝힌 뒤 “<썰전>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예능의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썰전>이 가장 고심했던 것은 ‘섭외’였다. 여운혁CP는 강용석씨 섭외를 두고 “처음엔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만나보니) 예전의 이미지와 달랐다. 자기를 낮출 줄 알았다. 유머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함께 만난 김수아PD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만나보니 똑똑했다”고 덧붙였다.

   
▲ JTBC 김수아PD(왼쪽), 여운혁CP(오른쪽). 인스타그램 효과를 이용한 사진. ⓒ이치열 기자
 

제작진은 소위 ‘진보’ 인사 섭외가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김수아 PD는 “정봉주 전 의원에게도 (출연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방송에 재능이 있는 김용민씨도 섭외하고 싶었다”고 말한 뒤 “진보 인사들은 (종편) 출연 자체를 본인의 정체성을 흔드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옆에 있던 여운혁 CP는 “회사 내부에서는 야당인사 출연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데 정작 밖에서 우리를 거부한다”며 출연거부 인사들을 가리켜 “바보들이다. 지상파에선 안 부르지 않나”라고 말했다.

여 CP는 “예능이든 보도든 논쟁적이어야 한다. 김수현 드라마를 봐도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논쟁이 있다. 뭐든 보고나서 얘기할 거리가 있어야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 한다. 소모적인 토론은 없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된 논쟁을 하려면 진보 인사들이 자유롭게 출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작진은 <썰전>이 그 어떠한 ‘외압’없이 제작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운혁 CP는 “콘텐츠 내용에 대해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MBC에서 일하며 가장 자랑스러웠던 점이 표현의 자유였는데 지금 상황만 보면 JTBC가 MBC보다 더 자유롭다”고 말했다. 여 CP는 “다만 시청률이 안 나와서 리액션이 안 나올 뿐이다. 지금은 표현의 자유보다 시청자에 대한 갈증이 더 크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지난 1년 간 JTBC를 두고 “시행착오가 많이 있었다. 하드웨어면에서 아직은 미비하다. 후배들이 많이 고생하고 있다. 섭외 면에서 많이 힘들다. 시스템 구축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재작년 12월 첫 방송 당시에는 지상파 위세의 10분의 1수준이었지만 지금은 5분의 1 수준으로 느껴진다. 지상파의 실금은 이미 터졌다. 이제는 어느 채널에 있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앞으로의 경쟁을 두고 자신했다.

김수아PD는 “KBS에서 조연출 10년을 하고 왔다. 거기서는 내가 잘 해서 시청률이 잘 나오는 줄 알았지만 종편에 와보니 (지상파) 플랫폼이 기본으로 깔아주는 게 있던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종편 PD는 지상파 PD보다 더욱 치열하게 새로운 아이디어로 경쟁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제작진은 <썰전>을 두고 “젊은 사람들의 트랜드에 맞춰간다는 느낌이 들게 하고 싶다. 종편답지 않다고 느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종편을 두고 나이 든 사람들만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도 볼만한 콘텐츠가 있네’ 라고 생각하는 방송이 되게 하고 싶다. 그래서 타 방송처럼 좋은 얘기 뻔한 얘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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