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탐사보도의 원조인 KBS <추적60분>이 30주년 특집 방송에서 언론인들에게 잠잠한 울림을 남겼다.

27일 방송된 <추적 60분>의 시청률은 닐슨코리아 기준 2.7%로 초라하다. 방송 첫해였던 1983년 시청률이 평균 39.6%였던 시절을 떠올리면 현재의 위상은 새삼 적응하기 어렵다.

이명박정부에서 KBS <추척60분> 제작진은 정치적 외풍에도 불구, 2011년 노동과 자본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현장과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다뤘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논란,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폐해 등 사회적 문제 역시 피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12년 한국PD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사프로그램의 전반적 위축과 함께 <추적 60분> 또한 위기를 겪었다. 2012년에도 ‘공장에서 병원까지, 방사선 피폭의 진실’(2012.6.27), ‘소말리아 해적 피랍 500일, 저희를 잊지 마세요’(2012.9.12), ‘계획된 폭력, 용역의 진실’(2012.9.26) 등을 다루었으나 사회적 반향은 예전만 못했다.

때문에 30주년 특집은 ‘한국 사회에 탐사보도의 미래는 없나’라는 실존적 고민에서 출발했다. <추적60분>의 생존을 위해선 ‘탐사보도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의식의 고양이 필요하다. 제작진이 이날 방송에서 전 세계 주요 탐사보도매체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시청자에게 탐사보도의 중요함을 호소한 이유였다.

   
▲ 2월 27일 방송된 <추적60분> 30주년 특집 화면 갈무리.
 

제작진은 필리핀 민영방송사 GMA의 탐사보도프로그램 <임베스티가도르>(추적자) 제작진을 만났다. <임베스티가도르>는 기자·PD들이 방탄조끼를 입고 현장을 누비며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고발하며 범죄자를 체포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

필리핀 탐사보도센터에 따르면 1986년 이래로 필리핀 언론인은 총 150여명이 살해당했다. DWAR라디오방송국의 유명언론인 제리 오르테가도 전직 주지사의 사주에 의해 살해당했다. 언론인을 죽일 수 있는 나라에서 언론인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스스로 권력에 순치돼 비판의지가 없는 한국 언론인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한국 언론인을 부끄럽게 하는 이들은 또 있다. 2011년 이집트 시민혁명 당시 알자지라 카이로지국은 언론인을 감금·폭행하고 방송을 방해하는 무라바크 정부에 맞서 보도를 계속했다. 시민들은 “침묵하지 말고 분노를 표출하자”고 외쳤고, 알자지라는 이를 세상에 알렸다. 알자지라는 끈질긴 탐사보도로 팔레스타인의 지도자 아라파트의 독살을 특종 보도했다.

미국 ABC 탐사보도프로그램 <20/20>은 미국정부가 운영하는 평화봉사단 내의 성폭력과 성폭력사실 은폐시도를 집요하게 추적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20>의 탐사팀장 브라이언 로스는 “외압이 있을 때는 뭔가 큰 취재를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언론인이라면 외부의 압력을 즐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PBS 탐사프로인 <프론트라인>은 금융자본이 경제위기의 책임을 지지 않은 배경에 미국 정치권과의 결탁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발하기도 했다. <프론트라인> 제작진은 “정부나 기업이 언론인의 요구에 대응하는 방식이 세련되어졌다. 질문을 사전에 요구하거나, 비 보도를 전제로 정보를 주거나, 인터뷰 시간에 제한을 두는 식”라며 이 같은 권력의 ‘교묘함’에 언론인이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디.

   
▲ KBS '추적 60분' 천안함 편의 한 장면.
 

영국의 BBC는 프로그램 진행자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지미 새빌의 진실을 보도하며 시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기도 했다. 지미 새빌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달리 여러 여성을 상대로 오랫동안 성추행을 해왔다. BBC 자사가 큰 타격을 입는 것을 감수하고 탐사프로그램 <파노라마>는 지미 새빌을 둘러싼 추문을 낱낱이 확인했다.

BBC는 뉴스의 가치가 있는 것은 모두 보도했다. 이라크 전쟁 당시 위기를 조작한 영국정부를 비판하는 보도에 나섰다 사직한 그렉 다이크 전 BBC 회장은 “공영방송은 엄격한 자기비판에 노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은 자사의 뉴스가 불공정하다는 수많은 비판을 애써 무시하며 정권 홍보방송으로 전락한 KBS의 현 상황에 비춰볼 때 의미가 크다.

미국의 비영리 탐사보도매체인 <프로퍼블리카> 기자들은 “아무도 우리의 보도를 중지시킨 적은 없다. 경제적 압박으로부터도 자유롭다”고 말한다. 폴 스테이거 <프로퍼블리카> 사장은 “NPR등 타 언론과의 협업은 많은 기사거리를 만들어내며 독자에게 더 좋은 보도를 전할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특종·속보·조회수 무한경쟁에 노출돼 서로가 ‘적’이 되어버린 한국 언론이 귀담아 들을 내용이다.

이날 방송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는 제작진이 에콰도르에서 만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였다. 어산지는 “누군가가 감추고자 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탐사보도다. 알리고 싶은 걸 말한다면 그건 광고일 뿐이다. 훌륭한 탐사보도는 힘 있는 집단을 화나게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언론인에게는 야성이 필요하다. 그렉 다이크 전 BBC사장 또한 “언론인의 역할은 압력에 굴하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언론인의 분투가 탐사보도에 대한 시청자들의 지지와 응원을 이끌어내는 유일한 통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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