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구 앵커에 이어 오상진 MBC 아나운서가 사표를 제출했다. 오 아나운서는 사표를 제출한 직후 ‘모든 상황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 생각하며, 개인적인 고민과 판단으로 결정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MBC 안팎에서는 오상진 아나운서의 사표제출을 정치적 이유보다는 실존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노조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경영진과 간부들의 강경한 입장이 이 같은 상황을 초래했지만, 방송인으로서의 전망까지 불투명하게 만드는 문제가 ‘MBC이탈’로 나타났다는 것. 

특히 타 방송사 출신 아나운서들이 MBC에서 맹활약하는 상황이 아나운서 이탈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MBC에는 KBS 아나운서 출신 박지윤이 MBC <일밤-‘매직 콘서트, 이것이 마술이다’>에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다. 역시 KBS 아나운서 출신인 전현무는 지난 설 특집 예능프로그램 <아이돌스타 육상 양궁 선수권 대회> 진행을 맡은 데 이어 최근에는 MBC 예능 프로그램 <블라인드 테스트 180도>에도 발탁됐다.

SBS 아나운서 출신인 정지영도 지난해 가을개편 때부터 매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방송되는 <오늘아침 정지영입니다>(91.9MHz) 진행을 맡는 등 타 방송사 출신들이 MBC TV와 라디오 주요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다.

   
왼쪽부터 박지윤 아나운서, 오상진 아나운서, 전현무 아나운서
 

 

반면 MBC 아나운서들 특히 파업에 참여했던 문지애 손정은 아나운서 등은 TV에서 얼굴이 사라진 지 오래다. KBS SBS 출신 아나운서들이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MBC 간판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는 상황 등이 길어진 파업 후유증과 결합되면서 사표제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MBC 한 중견간부는 “타 언론사 출신들이 MBC의 간판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면서 “경영진들이 파업 참가자들에 대해 가지는 부정적 시선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MBC경쟁력을 고려했을 때 정도가 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이 간부는 “경영진의 전향적인 조치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MBC 안팎에선 당분간 오상진 아나운서와 같은 이탈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 경우 아나운서들의 MBC 집단이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 관계자는 “오상진 아나운서는 인지도와 선호도가 뛰어나 지금 프리랜서로 뛰더라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지만 다른 아나운서들은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파업 참가 아나운서들이 MBC에서 계속 방송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이어질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방송인으로서 가지는 ‘실존적 이유’ 때문에 MBC를 떠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이 같은 이유 때문에 MBC 일각에서는 아나운서들의 연쇄 이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경영진이 파업 참가자들, 특히 아나운서들에 대해서라도 전향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현재 기류로 봐선 단기간에 그런 조치를 기대하긴 힘들다는 것이다.

   
MBC 오상진 아나운서가 지난 2009년 12월 27일 오후 서울 명동 밀리오레앞에서 시민들에게 언론악법저지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MBC 다른 관계자는 “회사에서 인지도 높은 아나운서가 나가는 게 좋은 일은 아니다. 이걸 모르진 않는다”면서 “하지만 이를 감내하겠다는 건, ‘정치적인 이유’로 파업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구성원들에게 보여주겠다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지난 23일 자신의 트위터에 오상진 아나운서의 사표제출과 관련, MBC를 강도 높게 비판했던 성경환 TBS 교통방송 대표는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사장시키면서 새로운 사람을 채용하는 MBC상황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고 후배들이 안타까워서 SNS에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성경환 대표는 “정치적인 이유를 떠나 오상진 아나운서처럼 경쟁력 있는 방송인의 꿈을 접게 만드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면서 “해법은 간단하다. 방송과 상관없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기자, PD, 아나운서 등을 방송현업으로 복귀시켜 MBC의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오상진 아나운서는 당분간 소속사 없이 프리랜서로 활동할 계획을 주변 지인들에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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