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한 시민단체 기자회견 자리였다. 어느 분이 신문을 끊자고 했다. 신문이 담배보다 더 해롭다고 했다. 충격적이었다. 언론노동자로서 자괴감이 들었다.” 그 때의 심경 때문이었을까. 언론운동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간 그는 13년이 흐른 지금 언론노조위원장이 됐다.

지난 21일 만난 강성남 위원장에게 언론노조 사무실은 익숙하다. 2000~2001년 서울신문 노조위원장 시절 언론노조 부위원장을 맡았고, 2011~2012년에는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다. 이제 산별노조 위원장까지 맡게 됐다. “언론노조는 지난 5년간 쌓아온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그래서) 내가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출마 이유는 명확했다.

“언론노조 위원장에게 얼마나 중요한 결단의 순간이 많은지 알고 있다. 절대로 나 혼자 앞장서지 않겠다.” 20일 이·취임식에서 나온 다짐이다. 무슨 뜻일까. “일반 노조를 보면 정치적 이슈를 선도적으로 이끌며 위원장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앞으로 언론노조의 2년은 안으로 살을 찌우는 시기다. 지금은 힐링의 시간이 필요하다.” 조합원과 같이 가야만 결단의 순간에서 실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강성남 신임 언론노조 위원장. ⓒ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그에겐 숙제가 많다. 당장 이명박정부의 언론장악으로 발생한 피해복구가 우선이다. “최우선 과제인 해직자 복직과 종편특혜 문제가 남아있다. 방송정상화도 역점을 둬야 한다. 언론노조로는 지금이 가장 취약한 시기다. 지난 5년간 다양한 투쟁과 갈등 속에 고지전을 벌였다면, 앞으로 2년은 진지전이 될 것이다. 언론장악을 위한 추가적인 공격은 철저히 막을 것이다.”

진지전을 위해선 지난 5년간의 언론운동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지난 5년간 가시적으로 공정언론을 위한 제도적 개선을 가져오거나 개악된 법을 저지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성과가 있다면 언론의 공공성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부각시킨 점이다.” 그는 그러나 “이명박 정부 내내 싸웠지만 (마지막엔) 정권교체에 너무 기대지 않았나 싶다. 또 온라인 미디어처럼 우리 영역에 없는 언론을 조직화하는데 소홀했던 것 같다”며 한계를 짚었다.

종합편성채널의 ‘안착’은 또 다른 투쟁의 대상이다. 강 위원장은 “구호로는 종편의 폐지를 얘기하지만, 더 이상 실효성 있는 구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적으로는 종편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종편의 정치보도는 저급한 오락물 수준이었다. 방송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종편도 지상파와 같은 규제를 받아야 하며, 직접 광고영업도 해선 안 된다”고 했다.

내부적으로는 각 지·본부 간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강 위원장은 “(지난 집행부에선) 서울과 지역, 거대방송과 중소방송 간의 갈등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5년동안 언론노조 내부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미디어렙법 파동이었다. 서울MBC와 지역·중소방송이 자사의 입장을 놓고 부딪혔다.

강성남 위원장은 당시를 돌이키며 “충분한 토론을 바탕으로 언론노조가 중심을 잡았다. 모두를 만족시킬 방법은 없었다. 어느 쪽이 더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반발은 각오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MBC노조가 성명을 내고 이강택 위원장의 퇴진을 주장한 것을 두고 “성명을 낼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고 밝힌 뒤 “자사이기주의라고 매도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언론논리가 그만큼 시장논리에 내몰려 있다는 증거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디어렙에 대한 당시 판단이 최선이었다는 게 지금도 변함없는 입장이다. 강 위원장은 “방송은 어떤 제도든지 공공성에 부합되느냐 여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지·본부 간 이해관계가 얽히더라도 우리는 공영방송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느냐, 지역 중소방송을 어떻게 더 지원할 수 있느냐를 중심으로 미디어렙 논의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MBC를 공영렙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 강성남 신임 언론노조 위원장. ⓒ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언론노조에 있어 또 하나 위기는 역설적으로 연대의 힘이 정점에 있었던 2012년 언론사 연쇄 총파업이었다. KBS, MBC, YTN, 연합뉴스가 낙하산사장 퇴진을 위한 파업에 나섰지만 사장을 쫒아내는 데는 모두 실패했다. 파업 실패는 역설적으로 언론사의 비정규직 양산을 방관한 정규직노동자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됐다.

이는 사회양극화에 비판하는 리포트와 프로그램을 만든 기자·PD가 정작 사내 비정규직 증가와 경제적 양극화에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던 결과다. 언론노조 역시 현재 비정규직 언론노동자에 대한 실태 조사가 전무한 상황이다. 강성남 위원장은 정규직 언론노동자의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한민국 노동자의 반이 비정규직이다. 방송의 경우 제작인력까지 비정규직화 되고 있다. 언론의 비정규직화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지난 총파업 때 느꼈다. 우리가 (언론노동자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우리 말고도 일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해내지 않으면 언론노조의 정치적 투쟁력도 점점 형편없어질 것이다.”

그는 “올해 방송사 비정규직센터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구체적인 비정규 노동자 조직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며 “정규직 노동자의 반성이 없는 한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곧 모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강성남 위원장은 모든 언론인이 ‘노동자’라는 이름 아래 뭉쳐야 언론의 산업적 위기·신뢰의 위기 모두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이 맥락에서 조선·중앙·동아 기자들이 언론노조에 가입을 요청 할 경우 흔쾌히 받을 생각이라고 했다. 현재 조중동과 종편 소속 기자·PD는 언론노조 소속이 아니다.

강 위원장은 “노동자에게 좋은 노동자, 나쁜 노동자가 있을 수 없다.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연대해야 한다. 조중동 기자들이 노동자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중동 언론노동자를 미워하지 않는다. 조중동은 지면을 사유화하는 사주가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중동 기자들도 노동자로서의 고민, 언론인으로서의 고민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불행한 것은 그 고민을 나눌 상대나 조직이 없다는 것”이라고 언급한 뒤 “언론노조는 그들(조중동 기자)과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이야기 하는 것 자체만으로 그들에게 불이익이 갈 수도 있어 우리도 지켜만 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강성남 신임 언론노조위원장. ⓒ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그가 언론운동을 시작한 것도 기자 이전에 ‘노동자’로서의 자각 때문이었다. “1988년 입사했다. 민주화 이후 신문·방송에서 노조가 만들어질 때였다. 선배들은 편집권 독립과 단일호봉제를 주장했다. 단일호봉의 요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었다. 우리는 노동의 가치가 차등화 되어 있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가·나·다·라 호봉 중 갑의 위치였던 가 호봉이 양보해서 단일호봉을 얻었다. 노조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편집권 쟁취를 위해 한 달 간 파업도 했다. 가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20여 년 전 ‘민주노조 깃발아래’ 선배들이 일궈놓은 언론노조의 영광은 점점 스러져가고 있다. 강 위원장은 선거운동 기간 중 40여 군데의 지·본부를 다녔다. 전에는 200~300명 조합원 규모였지만 지금은 50~80명 수준인 지부를 방문했다. 노조 사무실은 여전히 컸지만 최근에 사람이 앉았던 흔적은 없었다. 노조위원장도 전임을 못하고 있었다. 언론노조운동의 현 주소였다.

그는 새로운 언론노조운동을 위해 ‘상식’의 복원을 강조했다. “언론의 본령은 권력과 자본의 감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본령에 얼마나 충실한가 다시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노동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삼성 제품 홍보기사를 쓰는 게 내 일인가. 억울함을 호소할 데 없는 약자를 대변하는 것이 내 일인가.” 상식은 어느덧 ‘각성’의 대상이 되어버렸지만, 신임 위원장은 쉽게 이상을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그는 “산업적 측면이든 사회적 위상이든 모든 면에서 신문과 방송이 위축되어 가고 있다. 각 사에서 개별적으로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산별인 언론노조에서 언론의 신뢰 위기를 두고 큰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할 것이다. 소규모 지부들의 생존권문제를 위해 임단협 공동교섭을 시도할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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