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더 이상 신문의 몫이 아니다.”

지난 13일 창간 125주년을 맞은 파이낸셜 타임스(FT) 라이오넬 바버 편집국장은 이제 종이신문이 ‘뉴스’를 전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다.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개막과 함께 종이신문의 쇠락은 일찍부터 예견됐다. 그 활로가 문제였다. 종이신문의 디지털 버전? 인터넷에 공짜 뉴스가 범람하는 가운데 종이신문의 디지털 비즈니스는 무모한 시도였다. 디지털 쪽의 광고시장이 급성장했다지만 막대한 인력의 기존 언론사를 먹여 살리는 데는 턱없이 미흡했다. 종이신문의 기사만 인터넷에 올린다 해서 될 일도 아니었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됐다.

창간 125주년을 맞아 파이낸셜 타임스는 종이신문 인력 35명을 줄이기로 했다. 전체 인력의 5% 정도에 해당한다. 대신 디지털 인력은 10명을 새로 충원하다. 이른바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 전략이다. 바버 편집국장이 2005년 취임하면서 내놓은 것이다.

   
 
 



‘디지털 퍼스트’ 전략으로 온라인 유료화…디지털 독자수 종이신문 추월

적지 않은 인력 감축에 대해 바버 편집국장은 “고통스럽지만 불가피한 일”이라고 언명했다. “롤스로이스형 뉴스 조직을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 조직으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신문사의 미래가 ‘디지털’ 쪽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가 2007년 과감하게 온라인(ft.com) 기사의 유료화를 실시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온라인 유료화는 일단 성공적이다. ‘미터(meter)제’의 도입이 효과를 봤다. 미터제는 최초 일정한 기사 건수 까지는 무료로 읽을 수 있도록 하되, 그 이상에 대해서는 ‘독자 등록’, 그런 다음에 ‘유료 구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온라인 구독 유치 방식이다. 뉴욕타임스 등 후발 주자들이 대부분 채택하고 있는 온라인 유료화 모델이다.

이들 유료화 모델은 10여 년 동안 절치부심해왔던 신문사들의 디지털 전략에 새로운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최근 발표된 뉴욕타임스의 실적이 대표적이다. 뉴욕타임스는 계열사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과 보스턴 글로브를 포함해 사상 최초로 구독료 수입(9억 5290만 달러)이 광고료 수입(8억9810만 달러)을 앞질렀다. 구독료 수입은 한 해 전보다 10.4%나 늘었지만, 광고료 수입은 5.9%나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종이신문의 구독자 감소에도 구독료 수입이 크게 증가한 것은 디지털 구독자 수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와 IHT의 디지털 구독자는 2012년 말 64만 명을 기록했다. 3개월 전에 비해 13%나 증가한 것이다.

디지털 유료 구독자 수에서는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앞서고 있다지만, 뉴욕타임스의 구독료 수입이 광고료 수입을 상회한 것은 신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구독료 수입과 광고료 수입의 균형은 종이신문 시대의 중요한 과제이자 목표였다. 광고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불러올 수 있는 ‘독립성의 훼손’, ‘경영상의 리스크’가 컸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종이신문 시대에 이루지 못했던 그 목표를 디지털 시대에 달성한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 역시 디지털 독자 수가 이미 종이신문 독자 수를 앞서고 있다. 2012년 말 기준 디지털 유료 독자는 31만 6천명으로 종이신문의 30만 명을 앞질렀다. 현재 디지털판 등록 유저는 모두 500만 명. 디지털 독자의 확장 가능성은 충분한 셈이다. 존 리딩 사장이 파이낸셜 타임스도 조만간 구독료 수입이 광고 수입을 앞설 것이라고 자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종이신문이 사라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까? 뉴스위크가 80년의 종이인쇄판을 지난해로 마감한 것은 그 신호탄일수 있겠다. 그러나 “아직은 그 때가 아니”라는 것이 라이오넬 바버 파이낸셜 타임스 편집국장의 생각이다.

“화요일에 목요일자 신문을…” 종이신문의 미래전략?

그는 왜 그렇게 생각할까? 일단 종이신문의 광고 수입 비중을 아직은 무시할 수 없다. 종이신문이 ‘디지털세상’에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종이신문의 영향력과 광고 수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또 종이신문은 일종의 패션 액세서리이자, 종이신문을 보고자 하는 독자들 역시 아직은 만만찮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종이신문’에서 ‘디지털’로의 이행은 마치 시소를 부드럽게 타는 것과 같은 섬세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때 까지 종이신문은 살아 있어야 하고, 또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종이신문의 존립 방식이다. 이미 “뉴스는 더 이상 신문의 몫이 아닌” 시대에 종이신문은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깊이 있는 분석과 심층진단 등등이다. 새롭지 않은 해법이다. 꼭 디지털 시대의 생존법으로 요구되는 것만도 아니다.

바버 편집국장은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속보 기능에서 비록 종이신문이 ‘경쟁력’을 잃었다지만, 종이신문 역시 적절한 ‘시의성’과 ‘긴급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심층 분석과 진단에 ‘예측’과 ‘전망’을 더할 것을 주문한다. 독자가 신문을 받아보는 시점에서 ‘새로운 내용’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같은 구상을 ‘18시간 앞서 생각하기’라고 말한다. 가령 화요일 편집회의에서 목요일자 ‘편집기획안’을 검토하는 식이다.

과연 가능할 수 있을까? 그는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글로벌한 취재망 등을 활용하고, 편집진과 기자들이 신중하게 기사거리를 선택한다면 이틀 정도 앞선 시점에서 미리 기사를 기획하고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간지나 월간지를 기획할 때 항상 고민하게 되는 ‘시의성’을 일간지에도 적용해보자는 것이다.

이틀 앞을 내다보고 기사를 기획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매일 매일 해야 한다면…. 그러나 어지간한 분석과 해설로는 이미 인터넷에 나온 기사의 내용과 수준을 넘어서기 어려운 것이 신문 지면의 현실이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조금 앞선 시점에서의 신문 제작은 나름 현실적인 대안일 수도 있겠다. 신문의 문법이 ‘현재완료형’에서 ‘약간 미래형’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다른 신문과 구별되는 연어색(핑크빛) 지면으로 유명하다. 1893년 신문 마케팅 차원에서 도입한 것이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틀 앞선 지면 기획 구상 역시 그렇다. 그것이 파이낸셜 타임스의 가까운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 어쨌거나 사건의 기록자 혹은 역사의 최초의 기록자라는, 신문에 대한 과거 평판은 파이낸셜 타임스에선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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