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국회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올바른 농업정책 방향을 논하는 긴급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모였지만 중앙 일간지는 이에 관한 단 한 건의 기사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대선에서도 농업 관련 이슈는 말 그대로 묻혔습니다. 한중FTA에 이어 한중일FTA 추진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농업은 경제민주화의 핵심 쟁점입니다. 미디어오늘은 앞으로 3회에 걸친 <농심(農心)이 운다> 기획 시리즈를 통해 농업이 농민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밥상’과 직결되는 문제임을 독자들과 공명(共鳴)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1. 지난 2010년 11월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으로 한우 11만5000여 마리, 젖소 3만5000여 마리, 돼지 331만8000여 마리 등 348만여 마리의 가축이 도살처분 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방역비용과 살처분 보상금 등으로만 3조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2. 2011년 7월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데 이어 미국과의 FTA도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비준안이 통과됐다. 이로 인해 국내 축산 농가들은 정치권으로부터 또다시 버림받았다. 소고기를 비롯한 각종 축산물의 관세가 철폐된다면 국내 축산업은 수출 대국인 미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나날이 치솟는 원유값과 사료값에 축산 농가는 그야말로 도산 직전이다.

“한국과 중국이 FTA 체결 시 10년 동안 국내 농업의 피해액은 24조 원에 달하며 채소·과실류 피해만도 12조 원에 이른다”

지난해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농협경제연구소 보고서 내용이다. 이는 한-미FTA 체결 당시 향후 15년간 전체 농업분야의 피해 추정액 12조2000억 원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FTA 체결로 우리나라 농수축산업이 입게 될 피해는 이처럼 명확한데 정부의 피해대책은 너무도 막연하다. 장기적으로 24조 원의 재정 지원을 한다지만 농어민들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피해 보전 효과는 그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다.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인 한-중FTA 협상은 박근혜 정부가 시작하는 오는 3월 초로 예정된 상태다. 아직 구체적인 협상 방안은 확정되진 않았지만 큰 틀에서는 그간의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여 농민단체들의 대규모 반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선공약 ‘FTA 무역이득공유제’ 재점화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올바른 농업정책 방향에 관한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FTA 협상과 관련해 자동차, 서비스 등 분야의 무역이득을 피해산업을 위해 공유하자는 ‘FTA 무역이득공유제’가 핵심 쟁점으로 다시 떠올랐다.

   
한-중FTA 협상이 오는 3월 초로 예정된 가운데, 국내 농업 피해액만 10년 동안 24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이 지난해 6월 발의한 'FTA 무역이득공유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 한-미FTA 반대 집회 사진.
©허완 기자
 

FTA 체결로 관세가 낮아져 수출 증가 등의 이득을 얻게 되는 기업의 순이익 일부를 농어업 등 피해 분야에 지원해야 한다는 이 같은 제안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도 적극 공약한 바가 있다.

지난해 6월 FTA 무역이득공유제와 관련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홍문표 새누리당 의원은 “FTA가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FTA로 손해 보는 국민이 나와서는 안 된다”며 “이익을 보는 산업에서 손해를 보는 산업에 대해 동반성장, 상생정신, 상호부조의 차원에서 이익의 일정 부분을 농수축산업을 위해 부담금 형태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1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FTA 발효 이후 자동차, 공산품 등 18~20가지 품목에서는 흑자를 보고 있지만 농어업축산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게 각종 통계에서 나타났다”며 “이익 보는 쪽에서 손해 보는 농어축에 사회적 기업정신과 동반성장의 시대적 과제를 감안해서 기금을 마련해 도와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긴급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했던 박상희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실장은 “FTA 무역이득공유제는 결론적으로 경제민주화이자 동반성장을 하자는 것”이라며 “농림수산식품 예산 증가율이 국가 전체 예산 증가율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득을 보는 산업이 피해 보는 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구해야 공정한 FTA를 국민적 호응 속에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8년 대비 2012년 국가 전체 예산 지출 중 농림수산식품 분야 지출은 6.2%에서 5.6%로 축소되고 있으며, 2013년 국가예산증가율은 전년대비 5.1% 늘어났는데 농수산식품분야 예산 증가율은 1.4%에 그쳤다.

FTA 무역이득공유제가 과잉입법이 아니냐는 정부와 재계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 박 정책실장은 “무역이득공유제는 기업활동 영위에 따른 이득으로 걷는 법인세와는 다른 개념”이라며 “기업에서 내는 법인세가 전혀 우리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있고 양극화로 말미암은 사회적 갈등비용이 300조에 이르는데 동반성장을 위한 기금 조성이 과잉입법이라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비판했다.

“농어촌 특목세로 입법화하면 위헌 시비 없이 가능”

홍문표 의원과 함께 입법 발의에 참여한 김춘진 민주통합당 의원도 “FTA 체결로 얻는 이익을 다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고 초과 이익을 보는 부분 중 일정 비율 내놓게 하는 것은 당연한 국가 경영의 의지”라며 “농어촌 특수목적세로 입법화한다면 위헌 시비 없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어 “관세인하 효과의 10분의 1만 특목세로 부과해도 자동차 등 수출 업계에는 이득”이라며 “설사 이득이 안 나더라도 수출가격이 싸지는 것에 대한 일정 부분을 부담하는 것이므로 초과이득공유제가 아니라 관세인하공유제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홍문표 의원은 “단순하게 기업 이익에 대한 과세 차원의 지원이 아니라 정부도 상당 부분 기금을 출연해서 손해 보는 쪽을 돕자는 취지”라며 “과잉입법의 문제는 있으나 사회적 동의를 먼저 구하고 법률적으로도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홍 의원이 발의한 FTA 무역이득공유제 관련법은 국회 농식품위를 통과해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FTA 무역이득공유제로 환수된 이익금은 FTA기금과 축산발전기금으로 각각 조성돼 농어업과 축산 농가를 위한 지원사업비로 활용될 수 있다.

박상희 정책실장은 FTA 무역이득공유제를 통한 기금은 세 가지 형태로 농민과 농업분야에 분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직접적으로는 직불금 인상 등 농가의 실질적인 피해보상을 위해 쓰일 수 있고 산지조직화와 같은 거래교섭력을 높이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예산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투자다. 농업 R&D 예산을 확충하고 후계농업인력 양성에 보다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농축산물 가격이 쌀 때 샀다가 채소값 파동 등 비쌀 때 내놓는 비축제 예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김춘진 의원의 활용방안도 실효성이 있어 보인다.

관건은 새누리당 농촌 출신 의원들의 입법 의지다. 홍문표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당연히 해결해야 할 숙제”라며 전향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정부 당국과 재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다가올 한중FTA 협상을 앞두고 또 한 번의 갈등이 예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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