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한 처녀가 ‘결혼에 관심이 없다’는 얘기를 하면 이 여자는 정상이 아니거나 ‘문란한 여자’임이 분명하다! 정상적인 모든 여자라면… 자기 가정을 꾸리고 엄마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창조주가 그렇게 만들었다.”

풍요롭고 훈훈해야 할 대명절에 가뜩이나 부모님과 친지들의 각종 ‘결혼 독촉’에 시달린 과년한 미혼 및 비혼자라면 발끈할 구절일지 모른다. 이처럼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사회적 관습 내지 문화규범은 수많은 개인의 선택과 자유의지를 계도(?)하고 억압한다. 이것에 저항하기란, 경험자들이 토로하듯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갈등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어느 때의 선택이 진짜이고 우리의 선택에 사사건건 참견하는 실체는 무엇인가 하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보스턴대 로스쿨 교수 겸 미국의 저명한 법학자이자 인기 칼럼니스트 켄트 그린필드의 책 <마음대로 고르세요>는 우리가 실제로 믿어왔던 것만큼의 자유의지가 별로 없다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고만 배웠지, 책임 이전에 선택의 순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을 꼬집는다.

“당신의 선택은 강요된 것이며 조작되었고 강제로 진행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같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전제가 실은 상당부분 ‘환상’이라면? 저자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뇌 과학부터 경제학, 정치 이론부터 사회학까지 여러 분야의 학문을 두드려 정치, 법, 사회관습, 문화 속에 교묘하게 감춰진 ‘진짜 선택의 순간’을 파헤쳤다.

문제는 우리가 맞닥뜨리는 여러 선택 사항 중 사실 선택으로 간주할 수 없는 것이 많다는 점이다. 예컨대 직장 상사가 자기와 자든지 직장에서 잘리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그건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 상사는 그런 선택을 제시할 자격조차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래 온 것이 사실이다. 또 학생이 교사의 명령(그것이 정당하건 부당하건)에 복종하지 않은 대가로 어쩔 수 없이 매를 ‘선택’하게 됐다.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이 결과를 ‘선택’하게 된다면, 이것이 진정한 선택일까?

저자는 인간의 선택 기준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능(뇌)에서 기인하는 내적 요인과 선택의 순간에 주어진 환경에 좌우되는 외적 요인 두 가지로 요약한다. 그리고 미 법원의 판례, 사법체계와 시장 경제 원리부터 각종 사건사고, 저자 개인의 쇼핑담 등 여러 층위의 사례들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많은 요소들이 우리의 자유의지를 구속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우리가 그동안 믿어왔던 ‘선택’이란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개인 선택의 한계 요소 중 우리가 특히 간과하기 쉬운 것이 문화의 영향력이다. 남녀 성 역할에서 종교 관습에 이르기까지 문화 규범은 생활 구석구석 퍼져 있고 강력한 위력을 떨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선택을 강요하는 이런 외적 환경을 인지하지 못할뿐더러 저항할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가장 완벽한 강요는 마치 선택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호수 위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가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때마침 헤엄쳐 지나가는 물고기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 물 어때?” 새가 물었다. 물고기의 대답. “웬 물?”

우리의 문화환경은 물고기가 사는 물처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주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는 규범을 만들어내고 이를 모두에게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권위’와 ‘집단압력’의 힘이 대다수 인간으로 하여금 ‘명령’(그것의 정당성과 합리성 여부를 떠나)에 따르게 한다. 심지어 자신에게 해가 되는 데도 말 한마디 못하고 그대로 복종하기도 한다. 반대해야 할 때 복종하고, 발언해야 할 때 침묵을 지킨다.

권위의 부당한 명령과 집단압력에 불복종하는 일부도 존재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일상생활에서 권위에 도전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고 위험이 따르며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권위의 오용이 특히 해로운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이런 악영향에 대한 보호책을 미리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학교나 직장, 가정 등 일상생활에서 일시적으로 조금 곤란한 상황을 맞게 되더라도 이게 아니다 싶으면 서슴지 않고 목소리를 높일 강단과 통찰력을 갖춘다면 상황이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는 점이다.

“수필가 주디스 워너는 자녀가 있는 여성이 바깥 일을 계속해야 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제약에 대해 글을 쓴 바 있다. 「왜 이게 문제가 되는지, 왜 이런 주제를 토론에 부치는 게 중요한지 이유는 뻔하다. 우리의 공공 정책은 정작 엄마들을 그런 선택으로 내몬 구속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미디어에서 영원히 재탕하는, 엄마가 스스로 선택했다는 거짓 논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확장하면 우리는 자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하나하나의 인생 여정을 선택하고 있다는 믿음에 안주해선 안 된다. 그 대신 우리 모두를 괴롭히고 당황하게 하는 구속과 제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 책은 모든 선택은 여러 요인과 알게 모르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선택에 대해 모두가 책임을 가지고 함께 대처하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선택의 미묘한 차이를 훨씬 세세하게 감지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흔히 쓰이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라는 관용문구가, 해당 공동체의 부정적 관성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선택이라는 미사여구를 내세우면 권력을 손에 쥔 사람에게 이득이 돌아간다. “사람은 자기가 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면, 힘 있는 자들에겐 득이 되지만 힘없는 자들은 대개 상처를 입는다. 선택은 이미 만들어진 테두리이고, 그 안에서 사회 정의, 시민 자유, 경제적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운동은 거부당한다. 월마트에서 일할지, 노숙을 할지, 정부가 전화도청을 일삼는 나라에서 살지여부는 모두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선 사람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주의해야 할 점은,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환경 탓만 하는 오독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스탠리 밀그램의 유명한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에서 연구원의 부당한 요구에 따라 학습자에게 전기충격을 가한 많은 참가자들이 실험 직후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에 책임을 연구원에게 돌린 것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으로 정당화할 수만은 없다. 그중 한 참가자인 렌설리어는 달랐다. 그는 “전적으로 책임은 저한테 있습니다. 처음으로 학습자가 불평하는 소리를 했을 때 그만뒀어야 했어요.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건…비겁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저자는 “이런 자세야말로 가장 진정한 모습의 개인적인 책임감”이라며 “모두가 본받을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는 ‘분명’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말이다.

다만, 인간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내·외적 요인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한다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정치와 법을 통해 선택의 한계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책은 주장한다.

마음대로 고르세요/켄트 그린필드 지음/정지호 옮김/푸른숲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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