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youtu.be/QvEQ8pw84mg

“당신은 기도하기 위해 혼자가 됩니다. 하지만, 당신이 문을 열고 나와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 사랑해야 할 이웃입니다.”

덴마크의 사상가 키에르케고르의 말, 기독교도가 아닌 제가 봐도 공감됩니다. 예수를 믿는다면서 축재하는 게 말이 되나요? 도대체 뭘 ‘소망’하는 건가요? 겸손하게 기도하는 마음은 아름답습니다. 참된 기도는 탐욕스럽지 않습니다. 세상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하겠다는 작은 염원의 기도,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로 알려진 곡입니다.

슬픔에 잠겨 조용히 노래합니다. 홀로 기도하며 마리아의 상처를 아파하는 진실된 인간의 마음입니다. 기도가 진행될 때 감정이 고조될 법 하지만, 결코 크게 소리를 지르지 않습니다. 한 모금의 슬픔을 삼키며 고요히 끝마칩니다. 간절한 기도 끝에 모든 고통과 슬픔을 뛰어넘어 도달한 숭고함입니다. 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베 마리아’입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마리아의 슬픔, 더 이상 어떤 가사가 필요할까요? 1995년 이네사 갈란테의 앨범 <데뷔>에 실린 뒤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이 노래, 듣는 이의 마음을 파고들어 적셔주는 이네사의 표현력이 일품입니다.

   
 
 

로마 출신인 줄리오 카치니(1546~1618)는 18세 때 피렌체 메디치가의 궁정가수로 초빙된 뛰어난 성악가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새로운 창법에 매료됐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 오페라 운동의 중심이었던 ‘카메라타’ 회원으로서 <에우리디체>(1600)를 작곡, 몬테베르디와 함께 최초의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남깁니다. ‘400년 전에 나온 곡’이 현대인의 심금을 울리다니, 참 놀랍지요?

그러나 이 노래는 카치니의 작품이 아니라, 소련의 블라디미르 바빌로프(1925~1973)가 1970년에 만든 곡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는 림스키 코르사코프 음대를 졸업한 뒤 류트와 기타를 연주하며 작곡도 하던 음악가로, 당시 소련에서 싹트기 시작한 고음악 부흥운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그는 자기 작품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작곡가 이름으로 발표하곤 했습니다. 옛 거장들의 업적을 숭배한 나머지,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그랬다는군요. 무명 작곡가의 작품이라 무시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겠지요. 그는 이 작품을 ‘작자 미상’이라고 발표했는데, 얼마 뒤 그가 죽자 동료 한명이 ‘카치니의 곡’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오류가 생겨난 것입니다.

   
바빌로프의 <아베 마리아>가 ‘작자 미상’으로 수록된 멜로디아 음반(1970).
 

종교의 자유가 없던 소련에서 나온 바빌로프의 <아베 마리아>, 슈베르트와 구노의 <아베 마리아>와 달리 E단조로 된 슬프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세 사람의 곡을 ‘3대 <아베 마리아>’라 불러도 좋겠군요. 바빌로프가 이 곡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했어도 이렇게 히트했을까요? 모를 일이지요. 한 명이 모든 것을 다 가져가는 승자독식의 세상, 많은 걸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황당한 세상, 세상 사람들은 어찌됐든 유명한 사람만 따라다니는 경향이 있으니 카치니의 이름을 빌어서 쓴 바빌로프의 전략이 지혜로웠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여전히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합니다. 가난뱅이들이 부자에게 또 몰표를 주었군요. ‘다수(多數)가 범하는 오류’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실제 작곡자가 바빌로프임이 밝혀졌지만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 곡을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라고 부를 것 같습니다. 48살 한창 나이에 가난 속에서 죽어 간 바빌로프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집니다. 세상은 카치니로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오늘 이 곡을 듣는 저는 바빌로프,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겠습니다.
 

<필자 소개>
이채훈은 문화방송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현대사 다큐, <모차르트>, <정트리오> 등 음악 다큐를 다수 연출했고 지금은 ‘진실의 힘 음악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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