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예능에서 홍석천이 눈에 띈다. 남성 출연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가벼운 개그맨의 모습부터 성적 정체성 갈등으로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는 이들을 위한 진지한 멘토의 모습까지 보여주며 여러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모양새다. 성소수자에 대한 대중의 불편함이나 편견이 점차 줄어들면서 예능도 소재의 선택이 다양해진 것으로 보인다.

홍석천은 올해부터 tvN <코미디 빅리그>에 출연, 리마리오와 함께 남남커플로 등장하는 ‘마초맨’ 코너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동성애를 소재로 한 대화를 나누며 “저 궁합은 뭐야?”라는 반응을 낳고 있는 것. tvN 홍보 관계자는 “요즘 시대가 많이 변하고 (홍석천이) 지상파에도 많이 나와서 타이밍 상 좋은 것 같다는 의견이 다수”라며 “홍석천의 출연을 두고 특별한 항의전화는 없다”고 밝혔다.

홍석천은 지난 1월 9일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민머리 특집’에 출연해 범접할 수 없는 캐릭터로 입담을 과시했다. 진행자인 슈퍼쥬니어 규현을 유혹하고 김국진의 몸을 만지며 출연진을 당혹시키는가 하면, 용산구청장을 꿈꾸는 야망 있는 사업가로서의 면모도 보여줘 호평을 받았다.

지난 4일에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차별에 고통받는 성소수자를 대변하는 멘토의 모습을 보여주며 화제를 낳았다. <힐링캠프>는 ‘정말 힐링이 필요한 남자’라며 홍석천을 소개한 뒤 ‘작정하고’ 동성애를 다뤘다. 김제동은 이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공격”이라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을 전했다. 홍석천이 출연하지 않았다면 공허했을 발언이었다.

   
▲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홍석천.
 

홍석천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진솔했다. 같은 동성애자인 앨튼 존이나 리키 마틴, 조디 포스터와는 차원이 다른 사회적 차별을 받으며 ‘한국 유일의 커밍아웃 연예인’이 된 그였지만 커밍아웃(2000) 이후 지난 13년 간의 “외로운 투쟁”을 기어코 이겨낸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의 주변엔 성정체성이 밝혀지며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폭행을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 여럿 있었다. 60대가 되어서야 동성애를 고백한 이도 있었다. 홍석천 역시 “멋진 남자를 보면 심장이 쿵쾅거리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배우가 되려면 네 안의 것을 끄집어내라”는 스승의 말에 23년 전 처음 동성애자라고 고백하며 눈물 흘렸던 순간도 전했다.

성 소수자에 대한 대중의 거리감을 줄이기를 위해 일부러 코믹하게 연기하는 경우도 있다며 속내를 밝혔다. 여자친구도 사귀어봤지만 동성친구 같은 만남이었다고 했다. 10시간 쇼핑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의 일상은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성공할수록 내 정체성을 숨겨야 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어려운 선택을 했던 배경을 전했다. 그는 다만,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커밍아웃 이후 방송 섭외요청은 많았지만 취소 통보도 많이 받았다. 그러던 중 김수현 작가의 도움으로 SBS <완전한 사랑>에 캐스팅됐다. 3년 만의 출연이었다. 그는 드라마에서 동성애자를 연기하며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태어났을 뿐입니다”라며 절규했다. 

이날 방송에서 김제동이 말한 것처럼 “다름의 출발선은 ‘거절할 권리’와 ‘표현할 권리’”다. 다름이 인정될 때 사회는 다양성을 갖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며 진보할 수 있다. 홍석천은 “차별이 존재하는 한 극복을 위해선 10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단 성 소수자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홍석천.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홍석천의 잇따른 예능 출연을 두고 “그는 동성애자이지만 동시에 성공한 사람이다. 요즘 예능이 진솔함이 강조되고 멘토에 대한 열망이 높은 상황에서 홍석천은 수요가 있는 출연자”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점차 개방되며 성소수자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 것 같다”고 전한 뒤 “세상이 어려워 홍석천이 갖고 있는 시련극복 이야기도 공감을 주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교석 평론가는 <코미디빅리그>의 ‘마초맨’ 코너에 대해서는 “아직 홍석천이 원하는 지점에서 관객들의 웃음이 터지지는 않는다”고 전한 뒤 “게이코미디가 (관객에게) 익숙하지는 않겠지만 소재의 다양성 측면에서 발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영인 SBS <힐링캠프> 총괄CP는 “우리에게도 (홍석천 편은) 모험이었지만 사회적 편견이 줄어든 상황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가고 싶었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최영인 CP는 “이경규씨가 실제로 (출연에) 반대했던 사실을 일부러 방송에서 드러내며 중·장년층이 채널을 돌리지 않고 쉽게 성소수자를 바라볼 수 있게끔 했다”고 전했다.

최영인 CP는 이어 “여전히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세대별 간극은 있지만 시청자에게 친숙한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자꾸 (성소수자 관련)방송이 나가다보면 사회적 인식도 지금보다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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