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마땅히 거장이라고 불러야 할 두 뮤지션의 내한 공연이 연달아 열렸다. 2월 2일 토요일에는 패티 스미스(Patti Smith)의 내한 공연이 열렸고, 이튿날인 2월 3일 일요일에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의 내한 공연이 열렸다. 두 공연이 열린 곳은 모두 유니클로 악스였다. 공연이 열린 공간은 똑같았지만 공연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먼저 패티 스미스의 공연은 그녀가 2009년 여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무대에 섰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4년전에도 이미 60대 초반이었던 그녀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견결한 모습으로 평화를 외치고 반핵과 반전을 외쳤다. “기타가 우리의 무기”라며 혁명가의 선언처럼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선동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 여름의 폭염보다 뜨거웠다. 어쩌면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였고, 이제는 유행이 다 지나간 늙은 가수의 스테레오타이프 같은 이야기였지만 무대 위의 그녀에게선 전혀 가식과 가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기타 줄을 끊으며 혁명을 이야기 할 때는 가슴이 벅차 올라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녀의 무대는 그저 페스티벌의 무대 가운데 하나였을 뿐, 공연이 끝난 뒤 거리로 뛰쳐나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직도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호소하는 뮤지션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토요일 패티 스미스의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의 수는 초라할만큼 적었다. 1970년대 ‘펑크 록의 대모’라고 하는 그녀의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미 전성기를 지난 뮤지션에 대한 냉정한 평가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한결 같았다. 5인조 밴드 편성으로 무대에 오른 패티 스미스는 공연 초반에는 ‘Redondo Beach', 'April fool', 'Fuji-san'같은 곡을 들려주며 차분하게 공연을 이끌어가서 그녀도 이제 나이 들었나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다.

   
 
 

'Distant Fingers', 'Ghost Dance'등을 연주하면서 그녀는 이전과 다름 없는 힘을 보여주었다. 밴드 역시 패티 스미스와 완벽한 호흡으로 묵직한 정통의 록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Beneath the Southern Cross', 'Ain't It Strange', 'Because The Night', 'Pissing In A River', “Gloria'로 이어질 때의 그녀는 67살이라는 나이를 믿을 수 없을만큼 격정적인 모습을 폭발시켰다. 묵직한 중저음으로 우뚝 선 모습과 마이크 스탠드를 수시로 넘어뜨리고 옷을 벗어제끼고 무기에 욕을 퍼붓는 모습은 다시 보아도 실로 감동적이었다. 예고도 없이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관객들의 손을 잡고 노래를 할 때 그녀는 록커 그 자체였다. 그녀에게는 단순히 연출만으로는 형성될 수 없는 진실한 외침의 아우라가 있었다. 그녀는 전투적이었으나 유쾌했고 바위처럼 묵직하면서도 대나무처럼 흔들리는 투명함이 있었다.

그녀는 숭고하면서도 젊었다. 무대 위의 그녀는 단순한 뮤지션이 아니라 그냥 록 그 자체였고 시인이자 퍼포머였으며 한 사람의 혁명가였다. 음악에 사회적 의미를 담아내면서 그녀와 밴드의 연주는 이미 40년 전의 음악이라고 무시할 수 없을만큼 완벽에 가까운 록 사운드를 들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외치면서 음악과 사회적 의미 모두에서 한 치의 아쉬움도 없이 감동하게 만드는 공연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Rock & Roll Nigger'를 부르며 다시 기타 줄을 끊을 때 ”너희는 자유로운 사람들이고 너희가 미래“라고 선언하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은 한 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폭설이 쏟아지던 다음 날,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공연이 이어졌다. 패티 스미스의 공연 때와는 달리 공연장 안에는 관객들이 빼곡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내한 공연은 처음이었고 그들이 내한 공연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91년 출반된 [Loveless] 음반은 슈게이징 사운드와 노이즈 팝 사운드를 창조하며 실로 많은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록 음악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날 공연에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많은 록 밴드의 멤버들과 뮤지션들이 보였다.

예정보다 20분 늦게 시작한 공연은 예상대로 폭발적인 사운드의 향연이었다. 미리 관객들에게 귀마개를 나눠주면서 얼마나 큰 사운드를 들려주려고 하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은 ‘When You Sleep', ’Only Shallow', 'Thorn' 등 자신들의 히트곡들을 연달아 퍼레이드처럼 연주했다. 예상대로 증폭된 사운드는 격렬했다. 두 대의 일렉트릭 기타가 펼쳐놓은 사운드는 압도적이고 강렬했다. 하지만 오로지 기타의 사운드만으로 채워지지 않은 사운드는 현란한 드러밍과 꿈결처럼 흐르는 보컬로 더욱 풍부해졌다. 밴드의 사운드를 이끄는 케빈 쉴즈(Kevin Shields)는 거의 곡마다 기타를 바꾸며 연주했고, 사운드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면 다시 연주를 할 정도로 사운드에 집착하며 연주했다.

거의 멘트조차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사운드를 내는데 열중한 공연은 공연이 아니라 시연 같은 느낌이었다. 짧고 격렬한 곡들이 이어지는 동안 무대 뒤 스크린에는 그들의 전기적이고 강렬한 음악들을 고스란히 원색의 색채와 그래픽으로 치환한 듯한 영상이 펼쳐졌다. LED 파정도만으로 조명을 한정하고 무대를 꽉 채운 영상 아래에서 연주에 집중한 그들은 마지막 곡 ‘You Made Me Realise’에서는 극한의 데시벨로 트레몰로 주법의 사운드 폭격을 15분 이상 퍼부었다. 극강의 사운드 체험을 두고 예술적이라고 호평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사운드를 만끽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이미 그들의 사운드는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사운드가 되었지만 사운드를 키우고 스토리를 만들어가며 마무리하는 상상력을 라이브로 체감하는 경험은 앨범으로 듣기만 할 때와는 분명히 달랐다. 이것이 라이브의 맛이었다. 또 다른 라이브를 기다리게 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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