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양극화에 몸살을 앓고 있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영역도 그렇다. 그 양상은 세대 간, 계층 간으로 다변화 됐고 그 골도 깊어졌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분리된 양측은 상호간 적대감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인터넷의 ‘댓글 민주주의’는 소수의 극단적 사고가 다수의 여론을 대표하는 ‘왝더독’ 현상까지 빚고 있고, 정치권은 이를 적극 이용하거나 끌려다니면서 연명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신간 <증오 상업주의>는 바로 이 문제를 지적한다. “문재인이 당선되면 북한에 정권이 넘어간다”는 우파적 공포, “박근혜가 당선되면 유신체제로 후퇴한다”는 좌파적 공포를 바탕으로 정치적 증오를 생산하고 이것은 극단적 사회분열로 이어진다.

이 같은 양상은 시대가 지나면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통령 당선인의 여론조사를 보자.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각각 42%, 40.3%를 득표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48.9%로 당선이 되었지만 이들은 당선인 시절 80%가 넘는 지지도를 보였다. 반면 박근혜 당선인은 51.5%의 높은 지지율로 당선되었지만 현 지지도는 60%대 초반 수준으로 나타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유례없이 분리된 지지층의 골이 깊어, 문재인 후보 측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거나 거부한다”고 분석했다. 밀봉인사, 4대강 침묵 등 박 당선인 스스로 지지율을 낮췄지만, 이는 극단적으로 갈린 한국사회 여론을 보여주는 지표도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 증오’에 대한 소비가 커지는 데는 언론도 그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저자가 ‘증오 상업주의’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책 초반에 배치한 것도 미국의 보수 언론 폭스뉴스다. 노골적인 우익성향과 ‘말초적 흥미만을 살려 사회적 이슈의 본질을 왜곡하는 방법’으로(최진봉), 성공한 상업방송이 된 이 황색 언론은, 정치적 증오를 상업에 이용하는 메커니즘을 잘 드러낸다.

한국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종합편성채널은 윤창중 등 증오를 파는 함량미달의 정치평론가들을 초청해 막말쇼를 펼치며 정치적 증오를 상업 마케팅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종편의 시청률은 상승했지만 이를 통한 정치적 양극화와 집단적 증오의 확산이라는 상처도 더 커졌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밖에 미국 진보진영에서 펼쳐진 무브온 운동이 어떻게 정치적 증오를 활용해왔으며 왜 미국 민주당이 이를 활용하다 실패했는지, 그럼에도 한국 민주당이 ‘한국형 무브온’을 조성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2장을 통해 설명한다.

3장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초강력 일극주의’, ‘승자 독식주의’, ‘속도주의’, ‘연고주의’, ‘미디어 당파주의’ 등 5개 특성에 맞춰 증오 상업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소통의 구조적 어려움을 조명한다.

정치적 증오는 이미 2012년 대선에서 커다란 영향을 줬다. 선거 과정은 온갖 네거티브로 점철됐고 인터넷은 근거 없는 비난과 욕설이 횡횡했다. 소통과 국민통합을 강조한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는 역으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특히 박근혜 후보 선거캠프 산하 댓글조직이 적발됨으로서 증오 마케팅이 선본 차원의 대응이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상대방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가 오히려 미래의 삶을 바꾸는 정책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강준만의 신간은 깊이 생각해 볼 만 주제다. 강준만은 “독설과 욕설을 앞세운 카타르시스 효과를 노린 담론을 포기”할 것을 주문한다.

   
증오 상업주의 / 강준만 지음 / 인물과 사상사 펴냄
 

그런데, 이 책의 마무리에 등장하는 안철수는 다소 뜬금없다. 저자는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가 정치권에 횡횡하는 증오 상업주의에 대한 반발로부터 출발했지만, 결국은 증오 상업주의에 의해 무너진 인물로 분석한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책의 일관된 주제와 다소 동떨어진 ‘대통령 신비화’ 등 권위주의 문제도 끌어온다.

안철수 전 후보가 “국민의 절반을 절망시키는 정치를 해결하겠다”며 ‘증오 정치의 타파’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사실이나. 그 역시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증오를 활용했다는 혐의를 피하기는 어렵다. 강준만이 책에서 제시한 ‘국회의원 정수 축소’가 대표적이다.

증오로 분열된 한국정치의 양극화에 신물이 난 정치적 중도층을 겨냥한 것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이 역시 한국정치에 대한 증오를 가중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증오 정치와 유사하다. 저자는 그러나 이에 대해 “유권자들이 전문가보다 훨씬 더 슬기롭고 똑똑하다”고 말한다. 이 대목은 책의 일관된 흐름과 다소 벗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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