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아낸 것은 3가지 반동적 명제들이다. 나는 그것을 역효과 명제와 무용명제, 그리고 위험명제로 부른다. 역효과 명제는 정치·사회·경제질서를 향상시키려는 어떤 의도적 행동도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주장이다. 무용명제는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노력이 어떤 변화도 이뤄내지 못한다는 논리고 위험명제는 변화와 개혁에 드는 비용이 너무 커 이전의 소중한 성취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 앨버트 허쉬먼이 자신의 저서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The Rhetoric of Reaction)’에서 거론한 세 가지 ‘반동의 수사학’이다. 보수주의는 이 논리를 통해 개혁지향의 진보담론을 무력화함으로써 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그의 얘기가 새삼 떠오르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눈앞에 두고 벌어지는 퇴행적 경향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지난 총선과 대선을 통해 국민적 합의에 도달했던 복지와 경제민주화에 대한 도전이다. 총선 때부터 ‘박근혜식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집권에 이르렀음에도, 여당인 새누리당은 물론 보수언론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지공약 폐기 주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선거공약은 선거공약에 불과할 뿐이고 모든 공약을 지키려 한다면 나라가 거덜 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는 진보적 아젠다로 집권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민생과 대통합을 들고 나와 대선에서 승리한 것이 불과 두 달도 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선공약을 거꾸로 돌리자는 주장이 새누리당 안팎에서 일고 있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의표를 짚는 보수논리의 한 자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박 당선인이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복지정책의 추진을 100% 이행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그러면서도 복지를 위한 증세정책은 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복지 예산 논란과 관련, “새로운 세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약속드린 대로 정부의 불필요한 씀씀이를 줄이고 비과세 감면조정 그리고 지하경제 양성화 등의 방법으로 재정을 확보해서 그 안에서 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그의 복지정책은 아직 재정적 기반을 확고히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언제든지 복지 포퓰리즘 등의 여론몰이가 확대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65세 이상 모든 노인들에게 월 20만 원을 지급하겠다’던 보편적 복지 공약의 경우가 그렇다. 인수위에 따르면 이 복지안은 ‘노인을 4개 등급으로 분류해 차등지급하는 방법’으로 바뀌게 된다. 박 당선인의 복지공약이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는 사례이자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쟁을 계속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결국 박 당선인의 ‘증세 없는 복지’의 한계를 보여준 셈이다. 그의 복지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다.  

이러한 ‘반동적 명제’의 행태는 이미 박 당선자의 인사스타일에서도 문제로 등장, 논란의 와중에 있다. 인수위가 출범한지 한 달을 넘겼지만 내각과 청와대 인선작업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새정부 출범을 20일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박 당선인의 ‘밀봉인사’로 대변되는 불통의 인사정책이 논쟁의 도마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의 적격논란 여부로 시작된 불통인사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부적격 시비로 비화되는가 하면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자진사퇴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김 총리후보자의 자진사퇴는 그의 능력 이전에 도덕성이 국민의 눈높이와는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두 아들의 병역문제나 부동산 투기의혹 등은 공직자의 가장 기본적인 결격사유에 해당되는 항목이다. 이를 두고 박 당선인은 “인재를 뽑아 써야 하는데 인사청문회 과정이 털기 식으로 간다면 누가 나서겠냐”며 검증 과정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는가 하면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 새누리당이 이를 위한 인사청문회 개편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도됐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의 거취에 대한 새누리당의 태도변화다. 새누리당 쪽에서 돌연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에 대한 국회표결을 주장하고 나섰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인사청문회가 끝난 지 2주일이 됐는데도 최후 결론을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회표결을 들고 나온 것이다. 청문회에서 이미 부적격이라는 견해가 대세를 이룬 상황에서 이와 같은 반전은 박 당선인의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를 거수기로 여기는 과거의 관행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의 퇴행적 행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사실상 국가와 국민이 농락당한 5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동의 시대’는 그 5년으로 충분하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비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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