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둘러싼 횡령 의혹, 김용준 총리 지명자의 자진 낙마 등 박근혜 당선인의 인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박근혜 당선인은 정작 이를 언론과 인사청문회 제도의 문제로 돌려 여론의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지난달 30일 “인재를 뽑아서 써야 하는데 인사청문회 과정이 신상털기 식으로 간다면 과연 누가 나서겠는가”라고 말했고, 31일에는 “일해야 할 인재들이 인사청문회에서 만신창이가 될 수 있어 (공직에 나서는 걸) 피할까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박 당선인은 “그 시대의 관행도 있었는데 40여 년 전의 일도 요즘 분위기로 재단하는 것 같다”는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누리당 역시 이에 적극 부응하고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5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새 정부라고 해서 무조건 봐주고 넘어갈 수는 없으나 공직후보자를 낙마시키는 것이 청문회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용준 총리 지명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 아들들의 군 면제 의혹 등 도덕적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고위공직자인 총리직에 부적합하다는 여론이 조성됐다. 한국갤럽이 4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김 총리 지명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39%인 반면, 적절한 인물이란 평가는 18%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의 반응은 고위공직자에 대한 ‘신상털기’가 문제라는 것으로 고위공직자에 대한 기본적인 도덕성을 요구하는 대중적 정서에 역행한다. 특히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미국은 인사청문회에서 정책적 측면만 검증한다”며 미국 인사청문회의 한 부분만을 부각시킨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실제 미국의 인사청문회 시스템이 고위공직자들의 도덕성 문제에 빗겨나 있는 것은 아니다. 원혜영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정말 가혹하게 후보자를 검증한다”며 “불법이민자 유모를 한두 달 썼다는 것으로 장관 후보자가 낙마한다”라고 말했다.
원 의원은 “애초에 검증이 안 된 인물을 지명하다 보니 언론이 검증할 수밖에 없었다”며 “열리지도 않은 청문회를 가지고 문제가 있고 손질해야겠다는 것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언론의 검증을 ‘신상털기’로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은 ‘신상털기’라는 표현은 공적인 인물에 대해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니”라며 “공적인 책무를 맡는 후보자를 검증하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미 공적 체계에서 제대로 된 후보자를 거를 수 있음에도 그 부분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을 시민이나 언론에 덮어씌운 것”이라며 “적반하장 격”이라고 말했다.

김용준 지명자 검증 보도를 했던 한겨레 박현철 기자도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신상털기는 부당한 방법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파악해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며 “우리의 검증 취재는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취재하는 대상 역시 개인적인 사람이 아니라 주요 공직을 맡으려 지명이 된 사람”이라며 “그를 공직에 임명하는 것이 적합한지 아닌지는 적어도 현 시스템 상으로는 언론 아니면 할 수 없어 보인다”고 반박했다.

박 기자는 “이 정도 취재를 신상털기로 규정하고 못한다면, 언론사가 공직 적합도를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가”라며 “신상털기라고 비판하는 것은 감정적인 대응”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생활을 밝히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공직 재직 당시 재산형성과정은 사생활로 볼 수 없다”며 “어떤 검증이 사생활의 영역인지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실제 대부분의 언론이 사생활을 보도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영교 민주통합당 의원 역시 “언론이 과도한 것이 아니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국민의 알 권리와 공직인사 검증을 위해 제대로 된 보도를 했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그 중에 단 몇 가지만 가지고도 문제가 됐던 것”이라며 “실제 김용준 지명자는 청문회 얘기도 안나왔고 검증은 시작도 안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새누리당 내부에서 공직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을 감추고 정책적 측면이 부각되는 형태로 청문회법을 개정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새누리당은 지난달 31일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자기모순’이란 비판이 나온다. 인사청문회 도입 당시 이를 강하게 주장한 것이 새누리당이고 노무현정부 당시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내정자와 윤성식 감사원장 내정자를 새누리당이 낙마시킨 이유가 ‘코드 인사’라는 점도 그렇다. 동아일보는 5일 <내가 하면 신상검증, 남이 하면 신상털기>제하 기사에서 “새누리당이 연일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를 흔드는 데 대해 정치권 안팎에선 ‘생뚱맞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박현철 기자는 “상당히 감정적인 대응”이라며 “앞으로 (검증을)강하게 하지 마라, 누가 살아남느냐는 말은 살아남아서 공직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쾌한 언행”이라고 말했다. 박 기자는 “물론 요즘 검증이 강하다는 느낌은 들지만 지금까지 공직에 임명된 대부분은 문제가 없기 때문에 청문회에서 통과돼 공직을 맡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영교 의원은 “박근혜 당선인이 왜 창피한 줄 모를까란 생각”이라며 “언론이 지적하고 야당이 지적하고 사실이 객관적으로 나오면 빨리 손을 쓰는 것이 정치인, 당선인의 도리인데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서 국민과 함께 할 생각이 없는 건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건가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이한구 원내대표는 박근혜 당선인의 눈과 귀를 가리는 당사자”라며 “여당과 청와대는 보조를 맞추지만 견제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눈을 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 의원은 “헌법재판소장의 경우 정의롭고 국민들의 아픔을 닦아줘야 할 중요한 자리임에도 당의 명을 따르게 하는 사람을 배치하고자 고집 부리는 걸 보면서 정신을 못 차린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강택 위원장은 이에 대해 “그야말로 공사를 혼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의도적으로 신상털기라는 프레임을 짜서 (공직자의 도덕성이라는)문제의 핵심을 바꾸고 혼동 시키려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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