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밤이 찾아오면 김광석을 찾는다. 김광석의 목소리로 찾아오는 고요한 마음에 안도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너무 거칠고 치열해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 때, 이젠 지쳐서 일어날 자신이 없을 때, 김광석을 들으며 새벽을 기다린다.

지난 30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는 조금 특별했다. 1996년 1월 6일 세상을 떠난 故김광석의 17주기를 맞아 준비된 ‘김광석의 친구들’ 특집이었다. 김광석과 절친이었던 박학기, 한동준과 김광석을 흠모하는 조정치, 홍경민이 출연해 김광석을 이야기했다.

<라디오스타>를 연출하는 제영재 PD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추모(콘셉트)가 무겁게 갈 수 있어서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으면서 김광석이 우리에게 늘 주고 있는 선물 같은 면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김광석의 친구들은 일상을 얘기하며 웃고 떠들었다. 장례식장에 온 친구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분위기였다. 한동준은 “불교방송 DJ로 시작해 기독교방송 DJ까지 해봤다”며 이력을 자랑했고, “아내와 연애시절 김광석이 아내를 소개시켜달라고 했다”며 웃어재꼈다.

   
30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 화면 갈무리.
 

홍경민은 “라디오에서 사연을 소개하고 통기타로 노래를 부르는 날이었는데 그날이 1월 6일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오늘은 김광석님 기일이시다. 노래나 하나 불러주시지’라는 문자가 와 노래를 불렀다. 생방송 끝나고 전화를 걸었더니 없는 번호였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조정치는 “어느 날 인터넷에서 김광석의 영상을 봤다. 혼자 기타를 치는데 노래로 1부터 100을 모두 표현했다. 나는 함부로 가수라고 소개하면 안 되겠다 싶어 취미로 노래합니다라고 말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박학기는 “김광석은 곡을 고르는 눈이 뛰어났다. 김광석이 불렀기 때문에 곡이 인정받았다. 작곡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의 노래도 김광석이 부르면 자기 노래가 됐다”며 그의 재능을 회상했다. 그의 말에 윤종신·김국진 등 라스 멤버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광석의 음악은 이제 슬픔보다 추억으로 남았다. 이날 출연진들은 김광석을 저마다 추억했다. “어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사람이었다. 사랑하면 쟁취해야지 왜 바라보기만 하냐고 하더라.” 한동준은 그의 강인한 삶의 의지를 추억했다.

   
30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 화면 갈무리.
 

홍경민은 “20대에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 흘렸다. 나이도 어렸는데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박학기는 “광석이의 꿈은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윤종신은 “내가 태어나서 가본 장례식중 제일 참담하고 암울했다”고 말했다. 한동준은 김광석에게 말했다. “내 노래(<사랑했지만>) 불러줘서 너무 고마워. 언젠가 다시 만나 소주 한잔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이들의 추억담을 들으며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김광석을 떠올렸다. 나에게 김광석은 어떤 존재일까. 김광석은 누구에겐 희망의 좌절일수도, 분노의 상징일수도, 혹은 환희와 열정의 순간일수 있다.

제영재 PD는 “김광석씨가 돌아가셨을 때 대학에 입학했다. 90년대 학번 또는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많은 이들에게 김광석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그의 노래는 셀 수 없이 많은 청춘의 궤적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불멸로 남아 살아갈 용기를 준다.

“일어나/일어나/다시 한 번 해 보는 거야/일어나/일어나/봄의 새싹들처럼.”(김광석 4집, <일어나>의 가사) <라디오스타> 제작진이 자막을 통해 언급한 것처럼, 김광석의 노래는 인생의 길목 길목 우리가 지나가는 문 옆에 있다. 봄의 새싹을 기다리는 2월, 김광석은 우리에게 다시 일어날 때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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