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18대 대통령선거 기간이었던 12월 5일자 1면에 TV토론에 출연한 대선후보 사진을 실으며 고의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를 가린 정황이 드러났다.

중앙일보는 이날 1면 톱기사로 대선후보 간 첫 TV토론 내용을 보도하며 사진기사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손을 잡은 모습을 실었다. 하지만 함께 출연했던 이정희 후보는 사진에 없었다.

이런 편집은 같은 날 1면 사진에서 이정희 후보를 포함해 세 명의 토론자를 사진으로 내보냈던 한겨레, 한국일보, 서울신문, 동아일보, 국민일보, 경향신문 등 종합일간지와 대조적이었다.

이날 박·문 두 명의 후보만 1면 사진으로 내보낸 종합일간지는 중앙일보를 포함해 조선일보와 세계일보였다. 중앙일보는 당시 1면 기사에서 “이 후보는 토론 중 박 후보의 질문에 대한 답변보다는 ‘(토론참여는) 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등 시종 노골적인 표현으로 박 후보에게 공격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가 이정희 후보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정황은 최근 중앙일보노동조합이 제작한 공정보도위원회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중앙일보 노사 양측은 정기적으로 공보위를 열어 공정성에 논란이 될만한 기사를 놓고 논의하고 있다.

   
▲ 2012년 12월 5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일보 노조 공보위는 12월 18일 정기회의에서 “본지가 굳이 실제 TV토론 출연자가 빠진 모습을 게재해야 했는지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 이정희 후보가 참석한 것으로 돼있는 기사의 사진설명·그래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TV토론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후보가 출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공보위는 “첫 TV토론에서 이정희 후보가 거친 발언으로 토론 분위기를 해쳤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그의 선동 때문에 정책 토론이 설 자리를 잃은 것도 문제다”라고 밝혔지만 “이정희 후보의 공격적 성향과 별개로, 공식 절차에 따라 출연한 군소후보의 모습까지 생각한 것을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공보위 회의에 참석한 김종혁 중앙일보 편집국장은 “정상적인 토론을 하겠다는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참석했다고 공공연하게 밝힌 사람을 굳이 사진으로까지 보도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김종혁 편집국장은 이어 “이정희는 우리나라 TV토론 제도를 악용한 후보자다. 그런 후보자를 기계적인 형평성을 위해 보도하는 게 오히려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조문규 중앙일보 영상부장은 “거의 기계적인 수준의 사진 보도 공정성을 유지했다. 사진 개제 횟수, 표정, 얼굴 각도, 개제 크기까지 수치로 계량화했다”며 “다른 사진 기사에서도 여러 이유로 참석 인물의 모습이 빠질 때가 있다”고 해명했다. 김교준 중앙일보 편집인은 “공정성을 위해 그 어느 언론보다 노력하고 그 성과를 냈다고 자부한다”며 공보위 측 주장을 일축했다.

특정 인물 사진을 실을지 여부는 편집국의 권한이다. 하지만 선관위가 법으로 지정했던 대통령후보 토론회 자리에 참석한 후보자 중 특정인만 누락시킨 것은 편집권을 논하기 이전에 지지율과 상관없이 대선후보에 대한 정보를 사실 그대로 전해줘야 한다는 언론의 의무에 어긋났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중앙의 편집은 박근혜 후보만 누락시킨 채 문재인 후보와 이정희 후보 사진만 내보낼 경우 받게 될 편파논란과 본질적으로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날 회의 자리에서는 12월 17일자 1면에 ‘국정원 직원 컴퓨터에 문재인 비방 댓글 없어’ 기사가 실린 것을 두고도 논의가 오고갔다. 노조 공보위는 “3차 TV토론 직후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은 의도를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었지만 (기사가) 경찰의 입장에 치우쳤다”고 밝힌 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그동안 노력해온 본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외부에서 오해할 소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종혁 편집국장은 “국가기관의 조사 결과에 합리적 의혹을 제기하는 건 언론으로서 꼭 해야 할 일이지만 경찰 조사 결과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두는 접근 또한 경계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정철근 사회2부장은 “확실히 (수사결과를) 검증할 시간 여유가 충분치 않았고 1면 기사에 중간 수사결과라는 점을 명확히 밝히지 못한 면은 있지만 3면 기사에 민주당 입장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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