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6명이 일순간 일자리를 잃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희망퇴직자가 1905명, 나머지는 무급휴직자와 해고자였다. 노동자들은 싸워야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도 폭력과 야만의 순간을 마주했다. 직장에서 쫓겨난 삶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이를 감당해내지 못했던 23명은 목숨을 버렸다.

지난 20일 방송된 KBS 2TV ‘다큐 3일’은 3년 7개월간의 힘겨운 싸움에서 특별히 ‘희망’을 끄집어냈다. 시련을 이야기하기에는 다들 지쳤다. 제작진은 ‘희망’의 중심으로 와락센터에 주목했다.
와락센터는 5,600여 명 기부자들이 모은 2억 원으로 지난 2011년 10월 시작한 심리치유센터다. 와락센터는 자발적 성금과 재능기부로만 운영되며 난타와 뜨개질 등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공권력과 거대자본이 파괴시킨 공동체를 수많은 시민들의 품앗이로 복원한 셈이다.

쌍용차 해고자 가족들은 실직만큼 힘들었던 게 사회의 시선이었다고 털어놨다. 시위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에게 투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가혹했다. 한 노동자는 “알코올 중독에 정신병자가 많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촬영하는 3일 동안에도 공장에서 자살기도가 있었다. 노동자들의 괴로움은 그대로 아내와 아이에게 전해졌다.

   
 
 

77일간의 장기파업에서 제일 미안했던 것은 아이들이었다. 어느 해고노동자의 아이는 고무줄로 철탑을 만들며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무거워보였다. 그래도 부녀는 과거를 극복해내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가까이 와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이날 방송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인물은 장영희씨였다. 장영희씨는 남편을 보기 위해 철탑으로 가야 한다. 남편은 철탑에서 해고자 전원 복직과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며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상균 전 쌍용차 노조지부장이다.

장영희씨는 “남편은 말 한마디 없이 철탑으로 올라갔다”고 했다. 그 때가 지난해 11월이었다. 침낭 안에 뜨거운 물팩을 넣지 않으면 잘 수 없을 정도의 추위라고 했다. 한 전 지부장은 수감생활을 마치고 얼마 안 돼 철탑에 올랐다. 가족여행이 그의 소박한 꿈이다. 장씨와 한 전 지부장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철탑농성은 오는 24일 100일을 맞는다. KBS 심의실장이 다중심의까지 하며 해당 방영분에 문제제기를 했던 것은 이 ‘철탑’ 때문이다. 철탑은 그만큼 많은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다. 최근 쌍용차 사측은 무급휴직자 455명을 3월 1일자로 복직시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201명의 노동자는 해고상태로 남게 된다. 한 전 지부장이 철탑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이유다.

   
 
 

복직소식을 듣게 된 무급휴직자의 아내는 본인만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미안함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와락 센터 사람들 모두는 과거의 행복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현실을 ‘살아내고’ 있다.
방송 말미에 등장한 한 해고노동자 딸은 나중에 커서 기자가 되겠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모든 일을 다 알리고 싶다. 사회의 약자인 소수의 사람들에게 존경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도록 기사를 쓰고 싶다.” 쌍용차사태를 애써 외면했던 수많은 기자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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