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센터에는 기자들의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장소가 있다. 언론중재위원회다. 기사 항의가 들어오면 바로 검찰이나 관할 경찰서로 ‘직행’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언론중재위의 조정을 거친다. 사실보도를 했기 때문에 ‘나는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기자들도 중재위 문 앞에선 몸이 굳어지기 마련이다. 만약 언론중재위가 사라진다면 기사 쓰기에는 좀 더 편해질까?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일생을 보내고 정년퇴임한 뒤 언론정보학 교수로 살고 있는 저자는 최근 펴낸 저서에서 다소 과격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언론중재법은 언론보도 내용에 불법행위가 없는데도 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언론자유의 근간을 흔드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후진적 언론법”이라고 주장하며 “언론중재위가 법원보다 강제적인 언론통제기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언론중재위가 한국사회 언론자유를 후퇴시켰다는 근거는 뭘까. 그는 “언론중재위를 통해 정정보도 청구와 손해배상 청구가 남발되며 (중재제도가) 해당 언론사를 압박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근거로 손해배상청구 취하율이 50% 수준이라는 점을 들었다. 쉽게 말해 피해자 측이 언론사 ‘겁박용’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언론중재법은 피해자에게 가장 강력한 피해구제수단(손해배상청구)을 마련해주었지만 언론사에는 최악의 통제수단을 안겨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언론사가 언론피해의 예방이나 구제를 위해 고충처리인을 둘 것인지는 신문사가 자율적으로 정할 문제이지 국가가 나서 고충처리인을 두고 활동사항을 매년 공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언론자유 침해”라며 언론중재위 폐지를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일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허점이 많다. 우선 언론중재위의 중재 취지는 언론사와 피해자 측 간에 민형사 소송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기 이전에 합리적인 논쟁을 통해 양측이 합의를 보게끔 하는 것이다. 예컨대 합의이혼을 하기 전에 ‘이혼숙려기간제도’를 실시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실제로 해당 제도로 인해 이혼 취하율은 높아졌다.

마찬가지도 언론중재위 역시 제3자의 권고를 통해 불필요한 법적 공방을 막자는 것이 기본 목표다. 때문에 저자의 주장처럼 손해배상 청구 취하를 모두 ‘겁박용’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고충처리인을 신문사가 자율적으로 두는 부분도 양날의 검이다. 예컨대 약자 입장에 있는 피해자가 거대언론의 보도에 직접 맞서야 할 경우에는 힘의 논리상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어렵다. 그렇다고 소송비를 각오하고 소송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정부기관인 언론중재위가 나설 경우 이 같은 문제가 일정부분 해결된다.

현재 언론중재위의 권고안은 강제성이 없다. 저자는 이를 두고 “실익이 없는 중재위 제도는 선진국으로 가는데 걸림돌이므로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다고 해서 실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재위를 통해 양 측이 역지사지의 입장을 가질 수 있으며, 실정법에 의존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한국의 언론중재제도 / 임병국 지음 / 룩스문디 펴냄
 

물론 현재 언론중재위의 기능이 완벽할리 없다. 하지만 중재위 폐지를 주장하는 저자의 논쟁적 주장과 달리 근거는 희박해 보인다. 기자들 입장에서도 기사에 문제가 생기면 법정으로 직행하는 것보다 중재위에서 차분히 보도를 검증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오히려 중재위를 비판한다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중재를 위한 전문성 강화 등을 논의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수 있다.

저자는 5년 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MBC PD수첩 제작진의 광우병 반론보도를 두고 “재판 중에 후속 방송을 내보낸 사례는 거의 없으며 있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비판하기보다 제작진의 해명보도가 부당했다는 것이다. 이런 저자가 책의 곳곳에서 언론자유를 위해 언론중재위를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어 설득력은 더욱 떨어진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