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불산 누출사고에서 발생한 인명피해를 두고 동아일보와 중앙일보가 ‘노동자 탓’이라는데 초점을 맞췄다. 한겨레·조선일보 등 대다수 언론이 “삼성전자가 사망자 발생까지 사고 사실을 은폐했다”고 비판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지난 27일 오후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불산 배관교체 작업 도중 불산가스가 노출됐다. 삼성은 외부화학물질 중앙공급시설 밸브에 불산이 액체 상태로 누출되는 것을 발견하고 관리운영사인 STI에 신고했다. STI가 수리를 마치는 과정에서 삼성은 직원들에게 누출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대피명령도 하지 않았다.

불산은 기체 상태로 눈과 호흡기에 들어가면 신체 마비나 호흡부전을 유발하고 심하면 급사할 수 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STI소속 노동자 5명은 어지러움을 호소했고, 이 중 박아무개씨가 28일 오전 사망했다. 삼성은 박 씨가 사망하고 나서야 정부기관에 신고했다.

언론은 삼성의 ‘안전불감증’과 사건 은폐의혹을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삼성이 불산이 누출될 때까지 낡은 부품을 방치한 점 △숨진 박 씨가 맹독성 물질을 다루며 방제복을 입지 않은 점 △불산 유출 이후에도 공장이 가동된 점을 지적한 뒤 “삼성전자가 수리 작업을 불산 누출 확인 10시간 만에 착수한 것은 허술한 대처였다”고 비판했다.

   
▲ 29일자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는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제40조를 인용, “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사고로 사람의 건강 또는 환경에 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관할 지방자치단체, 지방환경관서, 국가경찰관서, 소방관서 또는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신고해야 한다”며 삼성의 법위반을 지적했다. 이어 “녹색기업으로 지정돼 지자체 지도 점검에서 벗어난 삼성전자가 엄격한 자체 관리가 없어 사고를 키웠다”고 밝혔다.

국민일보는 “삼성전자는 도청과 경찰, 소방 당국의 사고발생 확인 요청이 들어오고 나서야 사고를 신고했다”며 “주민 대피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자체수습을 시도하다 화를 키웠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세계일보 역시 “이번 사고로 삼성의 안전불감증이 도마에 올랐다”며 “지자체 지도점검에서 벗어난 삼성전자가 안전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고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서울신문은 “사고 지역은 주택가와 1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지난해 9월 구미 불산 유출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작업자가 불산에 노출돼 이상증세를 보이는데도 (삼성은) 7시간 넘도록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전한 뒤 “구미 불산 누출사고 넉 달 만에 일어난 사고는 글로벌 기업으로 평가받던 삼성조차 유해화학물질 관리에 얼마나 둔감한지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 29일자 한겨레 기사.
 

한국일보는 “삼성전자측은 당초 (감지센서)알람도 울리지 않았다고 발표했으나 알람이 울린 것으로 드러나 이를 번복했다”고 전했다. 한국은 이어 “삼성 측은 2차 피해가 없을 것이라 주장했지만 사망자가 나온 이상 피해 규모와 향후 파장을 속단하기 이른 상황”이라고 전했다.

MBN은 29일 보도에서 “삼성전자가 부상자 4명을 고의로 빼돌린 정황도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MBN에 따르면 28일 저녁 7시 20분쯤 동탄 성심병원에서 출발해 한강성심병원으로 향하던 구급차는 수원에서 방향을 다시 동탄으로 돌렸다. 그리고 3시간이나 지난 밤 10시쯤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MBN은 이를 두고 “환자들이 취재진에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고 차를 돌렸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 29일자 MBN뉴스 화면 갈무리.
 

대다수 언론이 삼성의 대응을 놓고 1면이나 주요 사회면에 배치해 비판한 것과 달리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사망사건이 노동자 탓이라는데 초점을 맞췄다. 중앙일보는 14면 기사에서 “숨진 박씨는 클린룸 안과 바깥을 오가며 지시를 하는 작업반장이었으며 사고 순간 방호복을 착용하지 않아 유출된 불산에 노출됐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12면 기사에서 “마스크만 착용하고 방제복을 입지 않은 채 현장 정리를 하던 박씨가 두 시간 뒤 통증을 호소하고 숨졌다”고 전한 뒤 “방제복 등 안전장구를 모두 갖춘 나머지 직원 4명은 경미한 호흡곤란으로 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다”고 전했다. 중앙과 동아의 기사만 읽으면 유독물질을 다루는 공장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처리 과정 중 안전에 둔감했던 한 노동자의 부주의로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중앙은 삼성전자 측 발언을 인용해 “환경오염 문제가 없고 공장도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날 사고는 박씨가 숨진 뒤인 오후 2시 40분 쯤 삼성 측이 경기도청에 신고하며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고 전하며 대다수 언론이 다룬 은폐 논란은 전하지 않았다. 동아는 “삼성측은 사고 사실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다가 박 씨가 숨지자 영등포경찰서에 사망신고를 했다”고 전하며 애써 ‘은폐’란 단어는 쓰지 않았다.

   
▲ 29일자 동아일보, 중앙일보 기사.
 

이 같은 보도는 경향신문이 “삼성전자는 자체 수습을 고집하느라 유관기관에 제때 신고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으며 STI직원들이 안전장구를 제대로 갖추고 작업하도록 감독하지 않았다”고 비판한 것과 대조적이다. 경향은 “사고를 자체 수습하려고 쉬쉬하다가 작업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불산가스에 누출되는 등 삼성의 안전 불감증으로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중앙과 동아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 아들의 특례 입학 논란 당시에도 대다수 언론이 비판 속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보도 태도를 보이며 침묵했다. 때문에 배경을 두고 홍석현 중앙일보 사주와 김재호 동아일보 사주가 삼성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 아니겠냐는 의혹이 일었다. 

이번 불산 누출 사고를 두고 이종란 노무사는 “박 씨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누출 사고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사망자가 없었다면 삼성이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을 어겼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사망사고 원인이 노동자에 있다는 보도 역시 사업주의 책임을 면피시켜주기 위한 것이란 지적이다.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은 “삼성전자는 노동자가 보호 장비를 착용하도록 관리감독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노동자가 설령 개인 판단으로 착용을 안 했다 하더라고 착용을 강제하는 게 맞다”고 지적하며 “중앙과 동아의 보도는 논점을 흐리는 것”이라 비판했다. 이종란 노무사 역시 “보호 장비를 입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자신들의 책임을 없애려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밝혔다.

언론은 지금껏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산업재해와 앞으로 발생할 유해물질 유출 사고를 막기 위해 대안을 취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유정옥 소장은 “기업의 자율 감독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유독물질 사용 사업장의 경우 처리과정에서 정부와 지역사회·사회단체들이 관리감독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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