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하게 살아야 다시 1등도 한다.” 김재철 MBC사장은 2013년 신년사에서 시청률 1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MBC는 2012년 방송3사 중 시청률 3등이었다.

추락의 중심에는 예능이 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3일 SBS ‘런닝맨’이 19.4%, KBS ‘1박2일’이 19.3%의 시청률을 기록할 때 동시간대 방송된 MBC ‘매직콘서트’는 6%에 그쳤다. MBC예능의 현주소다. 지난해 MBC예능본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MBC는 2010년부터 ‘놀러와’, ‘세바퀴’, ‘황금어장’ 등 인기 예능프로그램의 오래된 포맷을 두고 개편 논의가 있어왔다. 하지만 시청률 1등을 강조하는 경영진 앞에서 새로운 모험은 위험부담이 컸고, ‘무한도전’을 제외한 프로그램의 PD들은 틀을 크게 바꿀 수 없었다.

그러던 중 2012년 1월 MBC노동조합이 김재철 사장 퇴진을 위한 파업에 돌입했다. 예능PD들은 일손을 놓았다. 자연스레 봄 개편을 놓쳤다. 후속 프로그램 논의가 없는 상황에서 기존 예능마저 결방되거나 겨우 방송만 이어가는 상황이 6개월간 지속됐다. 170일 파업이 끝난 뒤에도 어려움은 계속됐다. 예능은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평가하며 포맷의 변화를 주는 일종의 ‘기름칠’이 필요한데 파업으로 제작 과정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MBC예능의 시청률은 어느 정도 추락했을까. 미디어오늘이 닐슨코리아에 의뢰해 MBC 주요 예능프로그램의 최근 3년(2010년~2012년)간 연평균 시청률(전국 기준, 파업으로 인한 스페셜방영분 포함)을 분석한 결과 추락세는 뚜렷했다. ‘놀러와’는 해마다 13.7→11.3→6.2%로, ‘황금어장’은 14.8→13.7→9.6%로 떨어졌다. ‘우리 결혼했어요’도 10.9→9.1→7.2%, ‘세바퀴’ 또한 18.2→15.7→11.6%로 하향세를 겪었다.

‘일밤’의 경우 2010년 6.2%였다가 ‘나는 가수다’의 인기로 2011년 9.9%로 뛰어올랐지만 2012년 5.3%로 시청률이 반 토막 났다. ‘무한도전’은 14.5→16.8%로 상승세였으나 파업에 따른 스페셜방송 여파로 2012년 평균 11.1%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일밤’과 ‘무한도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예능프로그램이 시청률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차에 파업이 겹치며 위기를 극복할 타이밍을 놓친 셈이다.
 

   
©권범철 만평작가
 

총파업 9주차였던 3월 말에는 예능부장들마저 “더 이상 자리를 유지하는 것에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며 보직을 사퇴하고 시청률이 끝없이 추락하며 총체적 위기를 겪었다. 3월 18일 당시 외주 제작사를 통해 방송된 ‘일밤’은 1.7%의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놀러와’는 3월 28일 방송에서 4.1%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케이블에서 방송되다 지상파로 넘어온 ‘무한걸스’는 3월 24일 방송에서 시청률 2.2%를 나타냈다.

사실상 앞을 내다보고 편성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경영진은 ‘정상화 그림’을 만들라고 지시했고, 현장에선 급하게 외주제작사 프로그램을 주요 시간대에 편성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MBC에선 각종 예능프로그램이 난무했다.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소리 없이 사라졌다.

‘쥬얼리하우스’는 첫 방송에서 2%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4회 만에 종영했다. 시트콤 ‘엄마가 뭐길래’의 경우 시청률이 안 나오자 27회 만에 조기 종영했다. 또 다른 시트콤 ‘천 번째 남자’는 8회 만에 끝났다. ‘무작정 패밀리’는 9회 만에 종영했고, ‘무한걸스’는 7회 만에 종영했다. ‘승부의 신’은 15회, ‘남심여심’은 12회 차에 종영했다. 고향버라이어티였던 ‘꿈엔들’은 4회 차에 종영됐다. 대대적 홍보에 나섰던 ‘주병진쇼’마저 24회에서 막을 내렸다. 그 결과 2012년 MBC방송연예대상에선 다양한 후보작품을 찾을 수 없었다.  

MBC 예능의 ‘부활’을 위해선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민식 MBC노동조합 편성제작부문 부위원장(<논스톱>, <내조의 여왕> 등 연출)은 “예능은 김재철 치하에서 보도나 시사교양에 비해 비교적 선전하며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도전적인 장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식 부위원장은 이를 두고 “경영진의 시청률 지상주의로 새로운 장르를 받아주는 제작문화가 사라지고 성공작품에 안주하는 경향이 높아진 결과”라고 전했다.

원만식 MBC예능본부장도 “안정적으로 가고 있는데 뭐 하러 변화를 시도하느냐는 이유로 지금껏 (예능의) 큰 틀을 바꾸기 어려웠다”고 말하며 “한꺼번에 다 바꿀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새로운 포맷에 도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영진에게는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해 보인다. 경영진은 시트콤 시청률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2013년 편성에서 시트콤을 제외했다. 이로 인해 ‘하이킥’ 김병욱 사단이 SBS로 넘어간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김민식 부위원장은 “뉴스데스크 시간대를 옮기며 편성 틀을 바꿔놓고 두 달을 못 기다려 시트콤을 없애고 있다”며 경영진의 조급함을 지적했다.  

이와 관련 MBC의 한 예능PD는 “작년처럼 외주제작사를 통해 이것저것 해보고 안 되면 바로 내리는 식으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뒤 “새로운 시도가 이어질 때 경영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PD들 사이에선 파업 이후 힘들었던 상황을 극복해보자는 분위기도 있다. MBC의 또 다른 예능PD는 “지난 파업에 대해 상처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파업의 상처만 갖고 살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한 뒤 “파업과 상관없이 예능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제 프로그램만 보고 가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1월 둘째 주 닐슨코리아 기준 전국시청률 TOP 50에 포함된 MBC예능프로그램은 무한도전(6위)과 세바퀴(33위)뿐이다. 이제 ‘예능은 MBC’라는 시절은 갔다. 도전자의 입장에서 기획에 나서야 한다. MBC는 현재 ‘놀러와’ 폐지 이후 ‘토크클럽 배우들’을 신설했다. ‘나는 가수다2’ 후속으로는 ‘아빠! 어디가?’ 전파를 탔다. 하지만 ‘아빠! 어디가?’의 경우 KBS ‘1박2일’과 SBS ‘자기야’를 짬뽕한 것이라는 내부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다.

김민식 MBC노조 부위원장은 예능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조건으로 “PD들이 다시 MBC에 대한 자긍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공정보도를 외친 언론인을 해고하며 총선과 대선보도에서 ‘불공정’이란 꼬리표가 붙어버린 방송사에서 틀어주는 예능을 보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김재철 사장 주연으로 MBC에서 벌어진 ‘파란만장한’ 블랙코미디의 결말에 따라 MBC예능도 다시 힘을 받을 것 같다.

“2% 시청률 때 끔찍… 그러나, 희망은 있다”
[인터뷰] 원만식 MBC 예능본부장

   
원만식 MBC 예능본부장
 
“2% 시청률도 나왔다. 그 때 생각하면 끔찍하다.” 14일 오후 일산MBC에서 만난 원만식 예능본부장은 지난해 힘들었던 MBC예능을 떠올리며 말했다. “1997년 IMF때도 MBC는 큰 타격을 안 받았다. 작년에는 어휴…. 금융위기 여파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파업과 맞물려 더 힘들었다.”

원만식 본부장은 “그나마 작년은 드라마가 좋아서 다행이었지만 예능은 장수프로가 많다보니 힘들었다. 사장님도 ‘바닥을 쳤다’고 했다”고 말한 뒤 “바닥을 쳤다고 반드시 올라가리란 보장도 없는 현실”이라고 전했다.

장기 파업으로 예능본부는 장기 전략을 세우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프로그램은 어느 날 뚝딱 안 만들어진다. 장수 프로그램이 많다보니 새로운 시도를 많이 못했다. 6개월 파업 동안 간부들이 간신히 현상유지만 했다. 근본적인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놀러와’ 폐지는 수술의 한 방편이었다. 원만식 본부장은 “‘놀러와’는 오래전부터 폐지 얘기가 있었다. PD는 시청률을 먹고 산다. 시청자가 외면하면 끝”이라고 말하며 “출연진이 아무리 잘나도 근사한 옷을 입어야 돋보인다. PD들은 자기성찰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MBC의 차별화된 예능전략은 무엇일까. 그는 톱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겠다고 밝혔다. 원 본부장은 “(3사 모두) 강호동·유재석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아빠! 어디가?’의 경우처럼 스타 의존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며 “안전한 타성보다는 모험적 새로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MBC에 현재 구세주 같은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KBS ‘불후의 명곡’, SBS ‘런닝맨’ 모두 처음엔 쉽지 않았다. 외적인 조건도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파업 이후 예능본부 분위기에 대해 자신하기도 했다.

“중간 간부가 많이 새로워졌다. 허리가 젊어지면서 평PD들에게 전파되는 느낌이다. PD들은 파업 중에도 선배들이 대신 프로그램을 끌어가준 것에 대해 고마움이 있었다. 선배들까지 손을 놓았다면 재기불능이었다. 기사회생 할 수 있게 유지를 해 놓는 것이 선배들의 몫이었다. 다른 제작 부서에 비해 분위기가 좋다. 피부로 느낀다.”

그는 올해 새로운 포맷을 개발하며 ‘일밤’을 살리고 코미디를 부흥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는 “일밤의 최근 5년은 재작년 ‘나가수’의 6개월 빼고는 장기침체였다. PD들이 오만한 것은 아니었다. 일요일 버라이어티가 너무 오래 안 되니까 PD들이 ‘일밤’을 기피했다. 시간대 운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우리 탓이다”라고 말한 뒤 “최근 희망이 다시 보이고 있다. 평균 시청률 두 자리가 목표”라고 전했다.

코미디의 경우도 ‘코미디에 빠지다’를 중심으로 코미디언 공채를 통해 새로운 피를 수혈할 계획이다. 그는 “코미디언이 물리적인 숫자가 적다. 재미없어도 기다려줘야 한다. 편성 입장에선 반갑지 않을 수 있지만 지금이라도 일정기간 앞을 내다보며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작년에 ‘웃고 또 웃고’를 살리지 못해 너무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파업 전후로 여전히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대해선 신뢰를 나타냈다. 그는 ‘무한도전’에 대해 “너무 훌륭하게 잘하고 있다. PD가 자기혁신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관리자 입장에서 쉽게 바꾸거나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한 뒤 “일일이 관여하거나 지시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그는 다만 “사회풍자의 경우 PD의 상식을 믿겠지만 게이트키핑 과정은 있을 것”이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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