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김현희 인터뷰'를 긴급하게 편성한 배경에는 방송문화진흥회 여당 이사들의 줄기찬 요구가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송에 '방문진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구심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의혹이 나온 계기는 김철진 시사제작국장의 발언이었다. 김 국장은 MBC노조에 이번 방송 배경을 밝히면서 "방문진의 결의에 따른 후속조치"라고 말했다.

김철진 국장은 15일 통화에서 "방문진 결의는 '어떤 상황에서 이 방송이 나갔는지 알아봐라'는 내용이었다"면서도 "하지만 이번 방송은 방문진 결의에 따른 후속조치는 아니다"라고 번복했다. 하지만 야당 측 이사들은 김씨와 관련해 방문진에서 어떠한 종류의 결의도 없었다는 입장이다.

방문진이 김씨의 문제롤 설왕설래하게 된 것은 공안검사 출신인 고영주 방문진 감사가 지난해 8월 감사로 임명된 직후 2003년  KAL기 폭파사건에 대한 'PD수첩'의 의혹 제기에 불만을 제기하면서다. 고영주 감사는 82년 부산지검 공안검사를 지냈으며, 95~98년 대검찰청 공안기획과에서 근무했다.

당시 여당 측 이사들이 고 감사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섰다고 한다. 지난해 9월 6일 방문진 회의에서도 PD수첩에 대한 여당 측인사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김 국장이 말한 '방문진 결의'도 이날 있었다. 방문진에 확인한 결과, 지난해 9월 6일 방문진 회의에서 여당 측 이사는 방송의 제작 및 방영 경위, 취재 제작진 구성, 김 씨 안가를 공개하게 된 경위 등을 조사해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방문진 관계자는 "회의록에 (조사 및 보고에 대한)'동의와 제청이 있었으므로 설명한 대로 결의를 하겠습니다. 반대 이사 없음'이라고 나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방문진 이사들의 입장이 엇갈린다. 한 야당 측 이사는 "여당측 이사들이 표결로 밀어붙인 것이지 모두가 동의한 사안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 김현희씨가 이진숙 본부장 등과 함께 15일 오후 3시 35분경 서울 여의도 MBC 방송센터 D스튜디오로 들어가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후속조치'가 김현희씨 인터뷰 형식으로 가닥이 잡힌 것은 대선 직후 열린 12월 20일 방문진 회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 야당 측 이사는 "백종문 편성본부장에게 여당 측 이사들이 'MBC가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하며 '사과방송'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날 회의에 참석한 백 본부장은 'PD수첩'에 대해 '틀린 팩트가 없고, 다만 편향적인 사실만 보도했다'는 입장이다. 그는 '사과방송은 어렵고 김현희 대담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해명·반박할 기회를 주겠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했다. 대담에서 MBC보도에 대한 김 씨의 해명 혹은 반박을 들으면서 MBC가 자연스럽게 사과 표명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

이에 대해 김 국장은 "방송은 한참 전부터 준비됐다. 노무현 정부 당시 KAL기 폭파범의 진범이 김현희라는 조사결과가 나왔을 때 진작 해명 방송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지난해가 KAL기 폭파사건의 25주년이기 때문에 준비했다"고 말했다.

다른 야당 이사는 이번 의혹에 대해 "방문진은 방문진법상 MBC경영을 관리감독할 수 있을 뿐 보도 내용에 대해선 간섭하지 못한다"며 "방문진 결의에 의해 프로그램 제작 편성했다고 한다면 이는 방송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MBC노조는 이날 오전 보도자료에서 이번 인터뷰가 방문진의 공식 요구였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면서 "하지만 만약 방문진의 공식 결정이 맞다면 이는 명백한 월권행위이며 불법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방문진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 자체가 방문진법과 방송법을 위반하는 행위"라며 "회사는 방문진의 결의 내용이 무엇이었고 어떻게 전달됐는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MBC는 15일 오후 11시 <100분토론>에서 김 씨와의 특집대담 '마유미의 삶, 김현희의 고백'을 방송한다. 지난 1987년 11월 29일 북한 공작원 출신인 김현희씨는 KAL 858기를 폭파해 115명이 사망했다며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1990년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고영주 감사, "문재인 대통령 되면 대한민국 적화될 것"
 
MBC 'PD수첩-16년간의 의혹, KAL 폭파범 김현희의 진실’편(2003)이 왜곡보도라고 주장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감사는 공안검사 출신으로 과거 여러차례 '대한민국이 적화되면 안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고 감사는 MBC가 '김현희 인터뷰'를 추진토록 만든 장본인으로 꼽히고 있다.

고 감사는 지난 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서 "여러분들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신 이유는 대한민국의 적화를 막기 위한 것이 아마 가장 큰 이유였다는 생각이 든다"며 "대한민국이 적화될 위험에 대해 이것이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제 경험담으로 간단히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고 감사는 1982년 부산지검 공안검사로 '부림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부림사건은 '부산의 학림사건'으로 1981년 부산지역에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교사·회사원 등을 반국가단체로 지목한 용공사건으로 전두환 군사정권이 자신의 통치기반을 넓히기 위해 조작한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당시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민주통합당 전 대선후보였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은 '학림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24명에 대해 31년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고 감사는 "부림사건이 공산주의 사건이라는 것을 저는 아주 확신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문재인 후보나 부림사건이 공산주의 운동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을 사람들"이라며 "저는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고 감사는 검찰을 떠난 후 이뤄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김대중 정부 때 나는 '제거 대상 검사 10걸' 가운데 1명"이었다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홀대를 당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공안검사는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정통성이 있어 그걸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운동권 출신은 그걸 부정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고 감사는 현재 2008년 발족된 현재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단체는 2010년 '친북-반국가행위자 100'명을 발표했다. 이 명단에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최열 전 환경재단 대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조국 서울대 교수, 문정현·문규현 신부, 수경스님,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조정래 작가, 박원순 서울시장,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등이 포함돼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