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의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이 화제다. 방송은 학교폭력의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 ‘패자’라는 관점에서 이들을 이해해보자는 취지로 접근했다. 어느 일방을 치료나 처벌 대상으로 여기는 시각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그동안 학교폭력의 실태를 고발한 신문보도나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대개는 ‘강한 처벌’을 주문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던 것과도 다르다.

13일 저녁 방송된 <학교의 눈물- ‘일진과 빵셔틀’>은 “저는 대구에서 자살한 중학생의 엄마 임지영입니다”라는 인터뷰 첫 마디로 시작됐다. 임씨의 아들 고 권승민 군은 2011년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권 군의 죽음 이후 우울증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가족들의 사연이 전파를 탔다. 
 
카메라 앵글은 이어 창원지방법원 소년법정을 비췄다. “이곳에서 목격한 학교폭력 가해자의 모습은 세상의 편견과는 많이 달랐다”는 내레이션이 흘렀다. 법정에는 ‘가해자’로 낙인찍힌 청소년들이 있었다. 카메라는 차분하게 ‘평범한 학생’이 어떻게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법정에까지 서게 됐는지 조명했다. 
 
   
▲ 13일 방송된 SBS <학교의 눈물>
 
 
방송이 전개되면서 <학교의 눈물>은 초점을 가해자나 피해자 일방이 아닌 ‘모두’로 옮겨갔다. “처음부터 가해자나 피해자로 태어나는 아이는 없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학교폭력을 “교실이라는 사각의 링에서” 벌어지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결국은 승자가 아닌 패자가 되는 게임”으로 규정했다. 
 
이는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작은 균열을 내는 지점이다. 그동안 언론들은 학교폭력을 ‘사회적 문제’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서도 해결책에 있어서는 철저히 주변적인 차원에 머물렀다. 가해자를 더 강하게 처벌하고, 교사에게 더 강력한 통제 권한을 줘야 한다는 식의 처방들이 난무했다.  문제의 뿌리를 파보기도 전에, 일단 뿌리부터 뽑고 보자는 식이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등장하는 단골 소재였다. 학생인권 신장은 손쉽게 ‘교권 추락’과 등치됐고, 이는 학교폭력 문제를 심화시키는 ‘원흉’으로 지목받기도 했다. 보수 신문들의 질타가 쏟아지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 100개 학교를 ‘일진경보학교’로 지정해 일진조직을 ‘관리’하겠다고 부산을 떨었다. 조선일보는 전교조특정 ‘웹툰’을 문제삼기도 했다. 
 
   
▲ 13일 방송된 SBS <학교의 눈물>
 
 
방송은 ‘사회적 관심’을 호소하면서도 그 관심을 피해 학생들의 아픔에 집중하려는 시각과도 거리를 뒀다. 이는 가해자 중 44%가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결과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같은 비중으로 소개됐다. 일방적으로 피해자를 ‘희생양’으로, 가해자를 ‘악마’로 묘사하지도 않았다. 언뜻 봐서는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일부 시청자들의 비판은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방송 직후 시청자게시판에는 15일 오전까지 150여건 넘는 글이 올라왔다. ‘공감하면서 봤다’는 의견보다는 ‘가해자를 미화하지 말라’는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피해자의 아픔에 더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주문도 쏟아졌다. 학교폭력 문제를 ‘가해자’에서부터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학교폭력은 “아이들만의 은밀한 세계”에서 발생한다. 그 세계는 어른들의 그것을 닮았다. 권력과 위계에 따라 촘촘하게 짜인 관계들 속에서, 학생들은 거칠게 자신들의 상처를 드러내면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할을 주고 받는다. 둘을 따로 떼어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크고 작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조금씩 병들어간다”는 표현에는 이런 고민의 흔적이 묻어난다.
 
   
▲ 13일 방송된 SBS <학교의 눈물>
 
 
한재신 PD는 “가해자를 옹호하자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가해 아이들 중에도 피해 경험이 있는 아이가 많았고, 그들이 가해자가 되는 걸 보면서 아이들을 둘러싼 사회 환경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는 설명이다. 한 PD는 “(시청자들의 반응으로)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제작진은 1부 후반부에서 선보인 ‘학교폭력 회복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2부와 3부를 풀어나갈 예정이다. 소개된 ‘소나기 학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어울리는’ 공간이다. 흔한 ‘갈등해소 프로그램’들이 그렇듯, 낭만적 화해나 치유로 얼버무리며 끝날 우려도 있다. 그러나 “행복해지려면 두 아이들에게 모두 변화가 있어야 한다(한 PD)”는 출발 지점은 일단 나쁘지 않아 보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