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이맘 때 홍대앞의 한 제과점의 폐점 소식이 이슈가 되었다. 홍대앞에서 오랜 기간 많은 이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던 리치몬드 제과점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대기업 계열의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들어선 것이다. 이미 홍대앞에 많은 대기업 계열사나 대형 프랜차이즈 상점이 진출해 있지만 이 소식은 그러한 상점이 하나 더 생긴다는 것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홍대앞 문화에 대한 자본의 점령이 완수되었다는 선언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홍대앞’에 간다는 것은 서울대 앞이나 연대앞에 간다는 것과 다른 울림을 준다. ‘홍대앞’은 대학 앞의 공간이지만 단순한 대학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에 간다는 것과도 다르다. ‘홍대앞’은 소비의 공간이지만 향락과 유흥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홍대앞’은 “다양성의 숨결, 하위문화, 반상업주의와 대안적 생산을 꿈꾸는” 공간이었고, 그래서 “홍대앞을 찾는다는 건 이런 불온한 예술과 문화의 공기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홍대앞이 ‘홍대앞’으로 규정되기 시작한 때가 90년대이다. 최근 대중문화에서 계속 소환되고 있는 그 90년대. 90년대에 TV에서는 트렌디 드라마가 제작되었고 케이블 방송이 시작되었다. 90년대에 100만 관객이 본 한국 영화가 나왔고 헐리웃 영화에 대한 한국 영화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90년대에는 대중문화를 다루는 이론서, 스트리트 페이퍼, 문화잡지들의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무엇보다도 90년대에 한국 대중음악은 황금기였다. 주류 대중음악은 팝송을 밀어내고 라디오를 점령하였고, 언더 그라운드에서 인디 음악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홍대앞’은 자리하고 있다.

   
‘응답하라 90’s 홍대앞 展
 

90년대 홍대앞을 호출하는 전시회 ‘응답하라 90’s 홍대앞’(이하 홍대앞 展)이 지난 1월 4일부터 13일까지 홍대앞의 서교예술실험센터 1층에서 열렸다. 전시의 첫 번째 섹션에는 드럭, 스팽글, 씨어터 제로, 아티누스 같은 90년대를 풍미했던 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장소들의 사진과 계간 <리뷰>, <이매진> 같은 90년대 발간되었던 문화잡지들의 실물을 진열했다. 두 번째 섹션에는 90년대의 장소들이 그려진 홍대앞 지도와 홍대앞을 ‘홍대앞’으로 만든 주역인 인디 밴드들의 90년대 앨범 57개가 전시되었다.

   
‘응답하라 90’s 홍대앞 展
 

‘홍대앞’展은 영화로웠던 과거에 대한 단순한 향수나 회고도, 복고 유행에 편승한 얄팍한 기획도 아니다. “90년대 홍대앞을 오늘날에 호출”하는 것은 “대안문화, 카운터 컬처로서 홍대문화의 전형을 확립했던 그 시기를 호출하고, 지금은 쓸쓸히 역사의 무대 뒤로 퇴장해버린 문화공간들을 환기함으로써 2013년 홍대앞이 처한 위기와 문제점을 공유”하기 위함이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 기획의도에 비하면 전시의 외형은 소박하다. 당시에 대한 기록이 체계적으로 남아있지도 않고 그나마도 공유하기 힘들어 전시 자료가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이 그저 변명이 아닌 것은 이 전시회를 기획한, 무가지로 발행되는 홍대앞 동네잡지 <스트리트 H>는 3년 전부터 홍대앞의 다양한 공간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지도로 기록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대앞이 계속 진행형”이듯이 ‘홍대앞’展도 진행형이다.

풍요롭고 매혹적이었던 90년대의 대중문화는 쉽게 찾아 온 것이 아니다. 90년대 대중문화가 융성해진 배경에는 정치·사회적 민주화가 자리하고 있다. 국가나 민족과 같은 거대담론에 눌려 금기시되던 개인의 욕망이 표출될 수 있었고 사전심의와 같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던 제도들이 철폐됨으로써 다원화된 문화, 다채로운 표현이 펼쳐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는 피땀어린 투쟁이 있었고 헌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자본의 침투도 가속화되었다. 작지만 매력적이고 소박하지만 싱싱했던 문화는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외형은 확대되고 외피는 화려해졌지만 개성은 사라지고 전복성은 소멸되어갔다.

   
‘응답하라 90’s 홍대앞 展
 

대중음악에는 ‘19금 딱지’ 붙이기를 자행하고, 풍자 코미디에 제재를 가하려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 대중음악 음원이 아무리 많이 팔려도 돈을 버는 것은 뮤지션이 아닌 유통사이고, 문화를 생산하던 홍대앞의 공간은 오르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고 있다. 그래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심의 대신 방송을 포기하고, 용감하게 발언하고, ‘Stop dumping music’을 외치고, 동네 지도를 그리고 이야기를 써서 남겨놓고 있다. ‘홍대앞’이 ‘홍대앞’이기 위해서 계속해서 싸울 수밖에 없다. 과거로 회귀하려는 국가권력에, 그리고 배부름을 모르고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자본이라는 괴물에 맞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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