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에 부쩍 ‘런칭’ 단어가 자주 눈에 띈다. 또 방송에서도 부쩍 많이 들린다. ‘런칭 쇼’처럼 이 말이 일상적인 낱말로 자리 잡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대충 ‘새로 시작하는 상품이나 상표, 가게 등의 마케팅 이벤트(행사)’를 뜻하는 말로 들린다.

‘오픈’이란 말에 식상(食傷)한 것일까? 기업 판촉(販促) 부서가 영어에서 꾸어온 말이다. 일본 예(例)를 본뜬 것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영어 쓰는 외국인에게 ‘런칭’이라고 말해보라. 100명 중 97명은 점심밥이라고 생각한다. 3명은 한국에 사는 사람일 테고.

점심(點心)은 마음에 점을 찍을 정도의 가벼운 식사, 생활에서 만나는 멋진 비유(比喩)다. 중식(中食)도 있다. ‘거한’ 점심은 오찬(午餐)이라던가. 餐도 그냥 먹을거리의 뜻. 영어에도 ‘좀 있어 보이는’ luncheon[런천]이 있으나 급수(級數)는 런치와 다를 바 없다. 속뜻은 다 그게 그건데, 사람들은 어떤 경우 단어의 선택에 목을 맨다.

런치(lunch)는 점심이다. ‘점심을 먹다’는 동사(動詞)로도 쓰이니 ing를 붙여 lunching이라고 써도 점심식사다. 이 발음은 [런칭]이다. 오해(誤解)는 필연(必然)적인 것이다.

배[선박(船舶)]를 잘 만들어 처음 물에 띄우는 일은 매우 큰일이고, 누구라도 멋진 의미를 부여하고 싶겠다. 거창하게 진수식(進水式)을 하는 이유다. 지어진 배를 처음으로 물에 나아가게 하는 행사다. launching이 바로 그 낱말이다. 동사 launch에 ing를 붙인 형태다.

launching ceremony(세리머니)는 진수식이다. 그 배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의 부인이 배의 이름을 짓고, 명사(名士)들이 모여 작은 손도끼로 테이프를 끊는다. 그래서 이 행사를 명명식(命名式)이라고도 한다. 발음을 자세히 적으면 [로:온칭] 또는 [라:안칭]이다. 누구도 [런칭]이라 읽지 않는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들의 발음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의 주제 ‘런칭 쇼’의 런칭은 바로 이 launching일 터다. 이 단어, 매우 폭 넓게 쓰인다. 개업이나 계획 등을 새로 시작하고, 책을 출판하고, 우주선을 발사하는 등의 뜻이다. 중요한 말이다. 따라서 이제까지 보통 ‘런칭’이라고 하던 것을 ‘론칭’으로 고쳐 쓰는 것이 낫겠다. 당초 ‘론칭’으로 쓰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왜 [로온칭]이라 하지 않느냐고? 규칙이다. 우리 외국어 표기 규칙 상 길게 발음되는 모음을 따로 적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렇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뉴욕’을 ‘뉴우요오크’라고 적었던 때도 있었다. 말글의 표기와 발음은 언어마다, 또 시기에 따라서도 다르다.
 

   
강상헌 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영어 발음에 있어서 일본어는 좀 열악(劣惡)하다고들 한다. ‘아도홈’이란 꽤 유명한 소화제가 있었다. 일본 약을 이름과 함께 들여온 것, 집에 있는 것처럼 편하다는 뜻 at home이 그 아도홈이었다. 일본식으로 소리내면 [아도호무]가 된다. [앳홈]이라고 영어에 가깝게 말하는 이도 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도 본받을 바가 많지는 않을 듯하다. 전자제품처럼.

점심식사도 제공하면서 새로운 상품을 소개하는 모임이라면, 폼 더 나게 ‘런천 론칭 쇼’라고 하는 것이 어떤가? 런치 론치 혼동도 피하면서 더 그럴싸해 보이지 않는가?

새 상품 알림, 새 모임 창설, 새 책 소개 등과 같은 말이 이제는 구식(舊式)인가? 바야흐로 ‘오픈의 시대’도 가고 ‘론칭의 시대’가 열리는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쓰나미인가?  

근데, 우리말은 어디 갔지?
 
<토/막/새/김>
launch[론치]는 영국 시인 G. 초서(1340~1400) 시절 쯤 쓰인 창(槍)던지기의 launchen이나 lanch 등이 어원 즉 말밑이다. lance(창)로도 가지치기를 했지만, launch 같은 다양한 뜻의 말로 컸다. 시작하다, 출시하다, 진수하다, 발사하다, 출판하다, 세상에 나가다, 프로그램을 실행하다, 야구공을 날리다 등 쓸모가 많다. 맥가이버다. 어느 말에도 어원이 있다. ‘이 말이 어디서 왔지?’하는 궁금증은 당신의 말글의 해상도를 높여줄 가장 큰 연모다. 그 궁리가 몸에 배면, 최명희처럼 <혼불>도 쓸 수 있다. 냅다 외우는 것은 대개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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