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youtube.com/watch?v=97xlBipnzG8

“빛바랜 풍경 하나가 이 곡에 있다. 봄이었고, 창밖으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무언가, 모든 대화나 시나 철학을 너머, 다른 그 무엇을 통해 울어버리고 싶었다. 언어 이외의 것으로 말이다. 우리는 말없이 담배를 한 대씩 붙여 물었다. 그때 오르간의 저음이 흘러나오고, 마침내 그 카랑카랑한 바이올린의 절규가 쏟아졌다. 그날 우리는 술 한 잔 걸치지 않은 맨정신으로 말 한 마디 없이 울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이 곡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곡’이라는 점을 긍정한 셈이 되었다.” - 조희창, 하이페츠 연주 비탈리 <사콘느> 음반 해설지

비탈리의 <샤콘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으로 꼽힙니다.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의 절제된 연주, 오히려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슬픔을 정교하게 전해 줍니다. 담담한 변주곡으로 진행되다가 후반부에서 절규와 흐느낌으로 이어지고, 격렬한 감정이 극에 이르렀을 때 다시 샤콘느 주제로 돌아와 끝맺습니다. 하이페츠는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가 오르간 반주로 편곡한 것을 연주했습니다.

   
 
 
   
 
 

샤콘느는 17~18세기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에서 유행한 4분의 3박자의 장중한 춤곡으로,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기악 형식으로 발전했습니다. 비탈리의 <샤콘느>는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 2번에 나오는 <샤콘느>와 더불어 이 장르에서 가장 유명한 곡입니다. 바흐의 작품이 ‘영원을 향한 끝없는 비상(飛上)’이라면, 비탈리의 작품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가장 슬픈 음악’으로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1663~1711)는 바로크 볼로냐 악파를 대표하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습니다. 볼로냐 아카데미아 필하모니를 창설했고 모데나 궁정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많은 작품을 썼지만 바이올린 소나타와 실내악곡 몇 곡이 전해질 뿐입니다.

비탈리의 <샤콘느>는 진위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바로크 시대 음악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강렬한 정서 때문에 의문이 제기됐던 것이지요. 게다가, 자필 악보가 없습니다. 사후 150년이 지난 1867년,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드 다비드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편곡해서 발표하면서 “원래 작곡자가 비탈리”라고 밝혔을 뿐, 증거가 없습니다. 비탈리가 남긴 작품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진위를 가릴 자료도 부족합니다. 아무튼, 이게 비탈리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할 근거 또한 없으니, 여전히 비탈리의 <샤콘느>로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슬픈 음악’이므로 슬프고 외로울 때 들으면 위안이 됩니다. 무릇, 비극이 슬픈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고통을 위로하고 마음을 정화(淨化)해 주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사라장의 연주를 들어볼까요? 그녀의 연주는 한국인의 슬픔의 정서를 극적으로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달콤한 슬픔’(Sweet Sorrow), 사라장의 연주는 하이페츠보다 한결 부드럽고 따뜻하게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AloBa9SPM7U
 

   
 
 


◎ 용어
파르티타(partita) : ‘조곡’(suite)와 마찬가지로 ‘모음곡’이란 뜻. 대개 전주곡과 5~6개의 춤곡으로 이뤄져 있다. 바흐는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세 곡의 파르티타를 썼다.
 

<필자 소개>

이채훈은 문화방송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현대사 다큐, <모차르트>, <정트리오> 등 음악 다큐를 다수 연출했고 지금은 ‘진실의 힘 음악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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