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간 한국 언론계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해외인물은 아마 요제프 괴벨스(1897~1945)일 것이다. 독일 나치의 국민계몽 선전장관으로 히틀러의 전체주의체제를 정당화하며 국민을 전쟁터로 내보냈던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숱한 언론인 해고와 공영방송의 편파보도, 대통령의 라디오연설, 표현의 자유 위축 사건들이 벌어질 때마다 입에 오르내렸다.

지난해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명박 정부가 검찰권을 남용한 사례를 정리했다. 그 중 언론 자유 침해에 해당하는 주요 사건으로 △미네르바 전기통신기본법위반 혐의 수사(2008) △정연주 전 KBS 사장 배임 혐의 적용 수사(2008)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 관련 명예훼손 혐의 수사(2008)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시국선언 발표에 대한 수사 및 정당가입 추가 수사(2009) △G20 포스터 쥐 그림 수사(2010) 등이 있었다.

참여정부가 임명한 언론사 사장은 사실상 강제로 내쫓았고, 정부정책을 비판한 프로그램은 명예훼손으로 옥죄고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을 그린 사람은 끌려갔다. 2012년 국경 없는 기자회는 국가별 언론자유 수준을 평가하며 한국을 아프리카 보츠와나·가나보다 낮은 44위로 발표했다. 2009년에는 69위까지 내려간 바 있다. 민주주의 척도를 평가하는 미국의 보수성향 단체 프리덤하우스는 2012년 한국을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강등시켰다. 지난 5년 간 정부의 ‘프레스 프렌들리’가 얻어낸 ‘성과’다.

문제는 ‘언론탄압과 여론조작’의 상징과 같은 괴벨스가 박근혜 정부 5년 간 또 다시 회자 될 것 같다는 사실이다. ‘박근혜의 입’인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의 경우 안철수 전 대선후보를 두고 “젖비린내가 난다”고 했고, 조국 교수를 두고는 “지성의 탈을 쓴 더러운 강아지”라고 표현하는 등 논란이 됐다. 이런 인물을 대변인으로 기용하며 박근혜 당선인의 언론관에도 우려가 높다. 더욱이 박 당선인은 군사독재시절 아버지 박정희가 언론을 다뤘던 방식을 기억하고 있다.

   
▲ 괴벨스, 대중선동의 심리학.
 

2013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히틀러의 입’이었던 괴벨스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미 MBC로 대표되는 공영방송과 조중동 종합편성채널은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권력에게 순치된 언론은 국민의 눈과 귀를 닫고 사회문제의 본질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호도할 것이다. 최근 대안방송 논의가 활발한 것도 언론현실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괴벨스의 눈을 통해 향후 있을지 모를 정부의 선전선동을 경계해야 한다. 이미 괴벨스를 다룬 EBS <지식채널e-괴벨스의 입>편도 훌륭한 참고가 되지만 책 <괴벨스, 대중선동의 심리학>(1990,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저, 김태희 옮김, 교양인)이 괴벨스의 자세한 행적을 담고 있다. 

1930년대 독일 나치당 선전국은 언론·방송·영화·연극·선전 5개 분과를 단일한 대규모 조직 내에 통합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괴벨스는 선전을 창조적 과정으로 미화했으며 “언론은 정부의 손 안에 있는 피아노가 되어 정부가 연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괴벨스는 언론을 프랑스 혁명에서 터져 나온 계몽정신의 산물이자 자유주의적 도구로 파악했으며, 신문을 ‘부패의 전령’, ‘몰락의 인도자’로 표현하며 정부의 언론 장악을 정당화했다.

나치주의자들은 조직적으로 언론사에 침투했다. 그 결과 주요 통신사 두 곳과 신문사 하나가 독일통신사로 통합됐다. 이곳은 국가 독점 회사로서 선전부의 업무감독을 받았다. 이른바 보도지침이다. 1930년대 초 선전장관이던 괴벨스는 편집인 법률을 통해 신문과 잡지의 편집인도 국가의 간섭을 받게 했고, 미움을 사면 수용소로 보냈다. 1933년 ‘독일민족수호’ 법령 이후 <전진>과 <적기>를 비롯한 좌파 언론은 폐간 조치됐다.

괴벨스의 언론장악정책은 크게 △금지 △재정압박 △편집인 정화였다. 이는 법률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뒤로는 돈 줄을 끊고 언론사 사장을 압박하는 형태였다. 괴벨스는 또 제국정부 언론심의회를 만들어 언론을 조종했으며, 언론사 간부들을 상대로 ‘방향 설정’이란 이름의 회의를 진행했다. 1933년에서 1945년 사이 나치가 언론에 지시한 것만 공식적으로 75000건이었다.

이 회의와 함께 제국공보실이 운영하는 <주의 환기>, <금주의 구호>, <우리의 의지와 길>, <비밀 정보들>이 언론조종의 중추를 이루었다. 나치의 언론 트러스트는 독일 출판사의 80% 이상을 합병했다. 나치당 제국언론지도자 롤프 린하트르는 독일신문발행인제국협회 부회장으로서 신문 분야의 권한을 한 손에 쥐고 독일 언론 전반에 인사권까지 행사했다. 자연스럽게 언론은 획일화됐다.

괴벨스는 라디오에 주목했다. 괴벨스는 라디오가 본질적으로 권위주의적이라고 보았고, 전체주의 체제에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복무하게끔하는 선동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로 이용했다. 괴벨스는 길거리와 광장에 제국 스피커를 설치하고 저렴한 수신 장비 생산도 추진했다. 라디오만이 국민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게 했다. 이후 시대가 흘러 라디오의 영향력은 TV로, 인터넷으로 옮겨왔다. 현재 TV에선 화편의 편파적 편집, 인터넷에선 특정후보를 위한 댓글 알바단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괴벨스는 방송국 사장들을 베를린의 방송회관으로 소집해 연단을 내리치며 권력을 과시했다고 전해진다. 괴벨스는 “우리는 방송이 우리의 이념에 복무하도록 할 것이다. 방송에서는 그 어떤 다른 이념에 대해서도 발언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송국에 ‘마르크스주의 잔당’을 제거하는 작전을 지시했으며, 독립성을 잃은 방송국 사장들과 보도국 기자들은 쫓겨나거나 희생됐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노골적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보도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았던 한국의 언론사들이 퍼뜩 떠오르는 대목이다.

   
▲ 독일 나치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
 

언론장악 이후에는 온갖 형태의 정치적 감화와 선전 선동이 이어졌다. 괴벨스는 “국가에 대한 비판은 오로지 수용소로 가는 것을 겁내지 않는 자들에게만 허용된다”고 협박했다. 히틀러 생일 전날 저녁 모든 방송국을 통해 송출된 연설에서는 히틀러를 ‘민족의 구원자’로 찬미했다. 국민들은 단순하고 격정적인 그의 구호에 반응했고, 독일민족의 우수성에 열광했으며, 그렇게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했다.

미디어는 거대한 악을 무감각하게 만들 수 있다. 괴벨스가 참고했다고 전해지는 선전 전략의 고전 격인 <프로파간다>(1928년, 에드워드 버네이스, 강미경 옮김, 공존)에 따르면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권력을 가진 소수는 대중의 생각을 조종함으로써 대중이 보통선거제로 새롭게 얻은 힘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게 됐다. 버네이스가 “선전은 보이지 않는 정부의 실행 부대”라고 평가한 것은 이 때문이다.

버네이스는 “읽고 쓰는 능력의 보편화는 대중에게 사고를 가져다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중을 거수기로 만들어버렸다”고 평가하며 “모두 똑같은 거수기가 된 상황에서 똑같은 자극에 노출되면 똑같은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군주제든, 입헌제든, 민주제든, 공산제든 정부의 성패는 여론의 지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버네이스의 메시지를 가장 충실하게 공부한 괴벨스는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며 20세기 최고의 선전선동가가 되었지만 그 결과는 비극이었다. 

버네이스는 자신의 책에서 “선전이 좋은지 나쁜지는 내세우고자 하는 명분의 가치와 발표되는 정보의 정확성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리의 확산은 조직화된 노력을 통해 이뤄질 수 있으며 사람들은 언론과 연단을 최선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21세기에도 권력가들은 여전히 선전에 주목하고 있다. 국민들은 언론의 편파에 무감각해질수록 점점 말 할 자유를 잃어갈 것이다. 2013년에도 ‘괴벨스의 후예들’은 언론사 논설위원실에서, 청와대에서, 각종 정부부처에서 한국사회를 움켜쥐려 할지 모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