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남달랐다. 영화 <매트릭스>로 현대기계문명의 암울한 미래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전 세계 2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영화감독 라나 워쇼스키와 앤디 워쇼스키(남매)가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다. 이날 방송은 동시통역을 통해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워쇼스키 남매의 소신발언이 많은 시사점을 남긴 점에서 의미있었다.

생애 첫 토크쇼 출연이라고 밝힌 워쇼스키 남매는 강호동을 두고 “무릎팍 도사는 힘도 세고 목소리도 크다. 김치처럼 독한 MC”며 첫인상을 표현했다. 이들은 동양권 문화에 대한 호감도 드러냈다. 이들 남매는 미국에서도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는 시카고에서 일본 애니메이션과 중국의 고전을 읽으며 자랐다고 했다.

라나 워쇼스키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등을 인상 깊게 봤다”며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라나는 “서양은 이야기가 단순하지만 동양은 구조보다 도덕적 교훈에 중심을 둔다”고 평하기도 했다.

워쇼스키 남매는 방송 내내 강호동의 질문을 위트있게 받아 넘기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라나는 성전환 수술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적 정체성을 커밍아웃하게 된 사연과 한반도 통일에 대한 바람을 가감없이 드러내 인상적이었다.

   
▲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워쇼스키 남매. 붉은머리가 라나 워쇼스키. ⓒMBC
 

라나 워쇼스키는 1991년 남북단일탁구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코리아>와 1950년 한반도 분단의 배경이 된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관심 있게 봤다고 전하며 “전쟁 때문에 항상 한국에 관심을 가졌다. 한국은 유일한 분단국가다. 남북이 통일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나의 이 한마디는 최근 수년간 지상파에서 듣기 어려웠던 이야기였다.

‘강남스타일’로 한류열풍이 불고 싸이가 가장 유명한 한국이 되고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도 외국인의 시선에서 한국은 여전히 ‘분단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이다. 라나는 방송 말미에도 “통일된 한국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 밝혔다.

라나 워쇼스키의 ‘소신발언’은 이어졌다. 그는 오는 9일 개봉하는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소개를 위해 가진 한국기자회견을 회상하며 “인터뷰하며 실시간으로 글을 적는 건 처음 봤다. 기자들이 절대 우리를 보지 않더라. 통신망은 최고인 나라인데 소통의 단절을 느꼈다”고 말했다. 속보경쟁으로 취재시간이 부족한 한국 기자들의 실상을 꼬집은 것이다. 이를 두고 유세윤은 “능력 있는 기자들은 얼굴을 보며 타자를 친다”고 받아치기도 했다.

라나는 성적 소수자로서의 아픔도 털어놓았다. 라나는 이날 방송에서 “어렸을 적 내 성적인 정체성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많이 괴로워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해봤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가 (남성에서) 여성이 된다면 성 소수자가 되기 때문에 영화감독의 꿈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며 자살을 시도했던 불우한 과거를 밝혔다.

이를 두고 동생인 앤디 워쇼스키는 “누나는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람이다. 더 이상 내면과 외모의 갈등이 없어져서 전보다 (삶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현실과 미래를 날카롭게 풍자한 세계관은 이처럼 고정된 가치와 편견에 구애받지 않는 이들의 삶과 도전이 있어 가능했다.

이들은 “예술가는 예술 활동을 통해 배운다”는 생각에 대학을 자퇴한 뒤 5년간 목수 일을 하며 부모님 집을 지었던 과거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들은 또 “우리에게 중요한 건 유명세를 타는 것보다 세상을 마음껏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워쇼스키 남매가 연출하고 배두나가 주연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신작 <클라우드 아틀라스> 예고편에선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등장한다. “우리 삶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타인들과 묶여있고, 과거를 지나 현재를 살며 우리가 저지른 악행과 우리가 베푸는 선행이 미래를 탄생시킨다.” 워쇼스키 남매가 전하는 메세지는 이번에도 묵직할 것 같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 톰 행크스, 할리베리, 배두나 등이 출연했다. 1월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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