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5년간 여권편향보도를 이유로 파업이 일어났던 언론사에는 공교롭게도 고려대 출신 사장이 있다. YTN  구본홍 전 사장, MBC 김재철 사장, 연합뉴스 박정찬 사장, KBS 길환영 사장, SBS 우원길 사장도 모두 고대 출신이다. 방송3사 사장이 모두 고대 출신이란 점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묘한 일치다.

언론의 공정성을 침해해온 무수한 사례 속에선 고대 출신 언론인들이 단연 눈에 띄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고대 출신이어서 그 사례는 권언유착이나 ‘낙하산’ 논란과 연결되곤 했다. 학연을 중심으로 거대한 이익공동체가 형성돼 공정보도를 탄압해왔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은 지난 5년간 수많은 사례가 모인 결과다.

이명박 정부의 첫 번째 언론사 ‘낙하산’은 고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의 YTN 구본홍 사장이었다. 공정보도를 약속할 수 없었던 그는 기자들의 출근저지투쟁에 부딪혔고, 노종면 당시 노조위원장 등 6명의 기자를 해고했다. 이후 배석규씨에게 사장 자리를 내준 구 사장은 지난 7월 기자협회보와 인터뷰에서 뒤늦게 해직사태에 대한 유감을 드러냈다.

MBC는 고대 출신이 가장 두드러진 언론사였다. 엄기영 사장이 물러난 뒤 고대 사학과 출신의 김재철 사장이 등장하며 고대 출신들은 편파보도의 전면에 등장했다.

김재철 사장은 취임 직후 사장퇴진투쟁을 벌이던 이근행 당시 노조위원장을 해고했다. 시사보도프로그램의 비판기능을 끊임없이 위축시켰고, 각종 편파보도의 총책임자로 이름을 올렸다. 김 사장은 올해 170일간 파업에 대해 정영하 노조위원장 등 6명의 추가해고로 답했다.
 

   
사진 왼쪽부터 김재철 MBC 사장, 구본홍 전 YTN사장, 박정찬 연합뉴스 사장, 길환영 KBS 사장.
 

최승호 등 베테랑 PD들을 PD수첩에서 쫓아내고 W, 후 플러스 등 시사교양프로그램을 폐지한 윤길용 전 시사교양국장(현 편성국장)은 고대 영문과 출신이다. “PD수첩에 대한 과도한 정치색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던 김현종 교양제작국장은 고대 교육학과를 나왔다. MBC노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7월 초 시사제작국 부장단 회의에서 ‘노조원들이 복귀해도 방송정상화를 서두르지 마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최근 방송연예대상에서 실언에 가까운 애드리브로 논란을 낳았던 안광한 부사장 역시 고대 신방과 출신이다. 김재철 경영진에서 승승장구한 안택호 미래전략실장(전 편성국장)도 고대 영문과를 나왔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각종 편파뉴스 책임자로 알려진 김장겸 MBC 정치부장도 고대에서 학사·석사를 마쳤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관등성명을 대라’해 논란이 벌어졌던 ‘119발언’의 보도를 누락시키고 한미FTA 반대 시위에서 공권력의 물대포 발사 사실을 누락시킨 것으로 알려진 박용찬 기획취재부장(당시 사회2부장)역시 고대 출신이다.

익명을 요구한 MBC의 한 시사교양 PD는 “김재철 사장이 오고 나서 고대가 제일 큰 파벌과 실세를 형성했다. 어디나 학연이라는 틀이 있기는 하지만 입사 이후 지금까지 이렇게 고대라는 학맥으로 하나의 흐름으로 형성된 경우는 없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흐름은 KBS에서도 발견된다. 현 정권에서 탄탄대로를 걸어온 이화섭 KBS 보도본부장이 고대 신방과 출신이고 이정봉 전 보도본부장(현 KBS비즈니스 사장)도 고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이화섭 보도본부장은 대선후보 초청토론회를 무산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졌으며 이정봉 씨의 경우 과거 보복성 지방발령을 받았던 KBS 김현석 기자의 본사 복귀 약속을 지키지 않아 기자협회로부터 제명을 당한 이력이 있다.

지난 11월 KBS 사장에 임명된 길환영씨도  고대 신방과를 나왔다. 김 사장은 내부 반발에도 불구, ‘MB 주례연설 100회 특집’을 강행했다. 그는 지난해 콘텐츠본부장 시절에도 삼성 이병철 탄생 100주년 기념 <열린음악회> 방송 논란, 김미화 씨 ‘블랙리스트’ 논란, <추적 60분> 보도본부 이관 등을 주도했다.

KBS 기자 출신으로 현재 방통심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혁부 씨도 고대 신방과를 나왔다. 그는 <무한도전>의 풍자를 두고 지속적으로 품위를 두고 비판을 해왔으며, 지속적으로 논란이 된 공정성 심의에 나서며 시사프로그램을 정치적으로 압박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2년 불공정보도로 인해 최초의 100일 파업을 겪은 연합뉴스의 경우도 박정찬 사장은 고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다. 박 사장과 함께 3년 간 내부에서 불공정보도를 주도했다고 평가받는 김성수 전 연합뉴스 편집담당 상무(현 한국언론진흥재단 상임이사)도 고대 법학과를 나왔다.

최근 기자들에게 탄핵 된 이명조 연합뉴스 정치부장도 고대 불어불문학과를 나왔다. 이명조 부장은 ‘타임’지의 ‘The Strongman’s Daughter’ 기사를 번역한 연합뉴스 기사에서 타임지 기사제목을 ‘독재자의 딸’이 아닌 ‘실력자의 딸’로 번역하며 편향성 논란을 빚었고, 급기야 연합뉴스 기자들은 지난 18일 이명조 부장을 불신임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와 언론사를 연결하는 위치인 대통령실장을 맡고 있는 하금열씨의 이력은 상징적이다. 그는 고대 독어독문학과를 나와 KBS,MBC,SBS를 모두 거친 인물이다. 하지만 고대 출신 언론인 모두가 불공정보도를 주도한 것은 아니었다. 노종면 YTN 전 노조위원장, 최상재 전 언론노조위원장, 송일준 MBC PD 등 고대 출신 언론인들은 해고와 구속을 불사하며 법정투쟁과 거리투쟁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편파보도를 주도한 ‘낙하산’ 고대 인사들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경진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장은 “언론사는 인사에서 공정성과 전문성을 따져야 하는데 이 같은 학연 중심의 인사는 부끄러운 일이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진 학생회장은 “고대생들이 다른 학교에 비해 (학연과 관련한)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데 아무리 보수적인 학생들이라도 지금 같은 사안에 대해선 다들 비판할 것”이라 덧붙였다.

이희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도 “고대 출신 인사들이 지난 5년간 벌인 언론탄압의 실상을 보면 굉장히 가혹했다”고 지적하며 “지금 같은 결과를 봤을 때 학연·지연으로 인선이 이뤄졌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정치권력을 잡은 자가 학연을 통해 후배를 사장으로 앉히고 사장은 또 자기 학교 출신을 요직에 심는 상황은 곧 ‘이 사람은 무조건 내게 충성할 것’이란 발상을 전제하는 것으로, 언론인 입장에선 비판의식과 탐사보도의지를 갉아먹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연은 권력을 떠받히는 사람 간의 공동체 의식으로서 그들만의 기득권을 서로 생산해내 이익을 공유한다, 이 때문에 객관성을 지켜야 하는 기자가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해 학연으로 줄을 대는 것은 이미 언론인이길 포기한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최 교수는 “정치권력은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학연을 활용할 것”이며 “폐해를 없애려면 우선 박근혜 당선인의 의지와 함께 언론사 내부의 견제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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