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MBC 방송연예대상은 추락한 MBC의 현주소를 드러냈다. 객석에는 관객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수상을 위해 온 연예인들 몇몇만이 눈에 띄었다. 1년 중 6개월을 파업으로 보냈기 때문에 경쟁할만한 프로그램도 눈에 띄지 않았고,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다.

진행자의 대본을 보여주는 프롬프트는 생방송 내내 눈에 띄며 거슬리게 했다. 대상 발표 직전 안광한 부사장의 어이없는 진행은 지난해 연기대상에서 방송사고 수준의 논란을 낳았던 김재철 사장을 떠올리게 했다.

대상은 박명수에게 돌아갔다. 데뷔 20년만의 쾌거였지만 뒷맛이 씁쓸했다. 박명수는 MBC파업이란 위기상황에서 경영진의 요구에 부응해 프로그램을 맡았다. 기존 <무한도전>을 포함해 <코미디에 빠지다> <나는 가수다2> <최강연승퀴즈쇼Q> <매직콘서트-이것이 마술이다>등의 진행을 맡았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선 특집방송 진행까지 맡았다.

   
▲ MBC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박명수.
 

 

   
▲ MBC방송연예대상에서 PD상을 수상한 유재석.
 

이날 대상이 아닌 PD상을 받은 유재석은 대상에 감격하던 박명수와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유재석은 수상소감에서 <놀러와> 폐지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원희씨가 같이 왔으면 좋았겠다. 그동안 너무 수고했고 8년 동안 함께하면서 너무 즐거웠다. <놀러와> 함께했던 길씨 이하늘씨 박명수씨 노홍철씨 수많은 작가 PD님들 감사드립니다.”

<놀러와>는 12월 초 갑작스런 폐지통보를 받았다. 시청률 부진이 이유였다. 유재석은 시청자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했다. 8년간 승승장구했던 프로그램치고 쓸쓸한 퇴장이었다. 시청자와의 신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유재석 입장에선 마지막 녹화 날까지 프로그램 폐지를 모르고 있었던 상황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유재석 만이 아니다. 이날 여자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미선은 “<엄마가 뭐길래>를 열심히 촬영하던 도중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앞으로 MBC에서 시트콤이 사라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지 마시고 우리가 더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MBC예능을 수년간 이끌어온 유재석과 박미선에게 올해는 MBC와의 신뢰가 무너진 해였다.

연말 프로그램의 갑작스런 폐지는 출연진과 제작진에 대한 MBC경영진의 애티튜드(Attitude, 태도)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방송사는 엔터테인먼트가 콘텐츠의 기본이고, 그 중심은 예능과 드라마이며, 방송사의 수준은 섭외력에서 드러난다. ‘선수’들끼리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MBC시청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한다면 유재석과 박미선은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게 된다.

   
▲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여자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미선.
 

이날 시상식에서 남자 최우수상을 수상한 윤종신의 발언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제대로 정상적으로 달리는 MBC예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 MBC에 출연했던 연예인들이 MBC가 비정상적이었다는 걸 공공연히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비정상’은 170일간의 파업일수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경영진의 애티튜드를 가리키고 있다.

파업기간 중이던 지난 6월 MBC 편성PD A씨는 “KBS <개그콘서트>도 오래된 포맷은 내리는데 지금 MBC는 앞을 내다보고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다. 시청률을 체크하고 노후화된 프로그램을 유지·보수해야 하는데 지금은 이게 완전히 멈춘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트랜드를 읽어야 하는 예능의 특성상 업무에 복귀해도 후유증이 이어질 거란 예고였다.

하지만 김재철 사장과 안광한 부사장 등 경영진은 길게 기다려주지 않았다. 안광한 부사장은 이날 시상식에서 “금년에 회사사정으로 시청자들과 충분히 교감을 나누지 못했다”고 언급하며 일련의 프로그램 폐지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폐지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이날 시상식을 두고 한 누리꾼은 트위터에 “MBC연예대상 참 애잔하다. 코미디언들은 온데간데없고, 유재석은 무도 6개월 결방과 놀러와 폐지에 대해 사과하고 있고, 박미선은 시트콤 없애지 말아달라며 부탁하고 있고, 피디는 앞으로는 다른데 신경 안 쓰고 시청자들 웃겨 드리는 데만 전념하고 싶다 하고…”라고 적었다. 이 트윗은 1500건 이상 RT(리트윗)됐다.

 

   
29일 밤 방송된 윤종신(왼쪽)
 

MBC 예능본부 소속 50여명의 예능PD들 가운데 김영희PD와 같은 부장급을 제외한 전원은 올해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파업에 동참했다. 보도국 사정에 눈 감고 시청자를 즐겁게 하는데 집중했다면 예년처럼 성과급도 받고 경영진이 제공하는 ‘천지개벽’ 해외연수도 다녀올 참이었다. 하지만 예능PD들은 공정보도를 회복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은 끝내 MBC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퇴진을 요구한 사람이 사장으로 있는 상황에서 사원들이 즐겁게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열의가 생길 리 없다. 더욱이 조합원 동료들이 신천교육대나 비제작부서로 발령 나며 현장에서 배제되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흥이 날 리도 없다.

이날 방송연예대상은 MBC의 복합적인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행사였다. 대다수가 파업에 동참한 PD들은 유재석에게 상을 주었고, 경영진은 박명수에게 상을 줬다. 예능PD들은 매해 연말 시상식 때마다 포털 상위검색어를 차지하는 경영진과 내년에도 일해야 한다. 김재철 사장이 PD들의 근로조건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촌평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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