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투표 전 정권교체를 바라던 60%가 넘는 국민은 실망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51.6%를 득표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48%를 얻은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한국 선거사상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보수와 진보의 아마겟돈(결정적 대결)이 유감스럽게도 보수의 승리로 끝났다. “안철수 현상“으로 2030이 65.8%, 66.5%이라는 기록적인 높은 비율로 투표에 참가했지만 5060이 그들보다 더 많이 투표에 참가한 것이 국민의 정권교체 꿈을 좌절시켰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예상을 뒤집히게 한 원인이 뭔가? 야권 시민단체 언론에 책임이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 중에서도 언론, 이명박 정권이 그 선거 캠프 홍보책임자들을 “낙하산 사장”으로 내려 보내서 장악한 “공영방송”의 편파보도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이 언론계의 중론이다. MBC와 KBS의 편파보도는 한국언론사에 기록될 사건이었다. 조중동 역시 박근혜 후보 편이었다. 텔레비전의 편파보도는 정권과 집권당의 치밀한 감독 하에서 이뤄진 인상이다. 언론학자와 정치학자들이 앞으로 치밀하게  조사 분석해서 역사적인 자료로 남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불공정한 보도의 최대 수혜자가 박극혜 당선인 것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그 점에서 이번 대선은 불공정한 선거였다. 박근혜 후보도 잘 알고 있으리라고 본다. 따라서 그의 앞으로의 언론정책을 주시해야 한다.

방송과 조중동은 박 후보의 당선을 지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당선된 후에도 편파적인 태도를 지속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선거보도 모니터 보고는 조중동이 “당선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은 후보에게 공약을 접으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중동은 선거 다음날인 20일 사설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상황이 어렵다면서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고하고 당선자가 내놓은 복지 공약을 재고하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민언련 모니터 보고를 간단히 소개하면:
 
조선일보는 “박근혜 당선인, 겸허하게 온 국민 껴안는 걸로 시작하라”에서 선거 기간 국민행복시대를 내걸고 출산과 보육에서부터 노후 대비까지 모든 세대의 걱정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하고 총 131조원이 들어가는 201개 공약을 내놓았으나 “박 당선인이 이런 약속을 그대로 실천하기에는 나라 안 경제 사정과 나라 밖 경제 여건이 너무나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당선인은 선거 기간 국민에게 해주겠다”는 말만 했는데 이제부터 “참아 달라”는 말을 함께 해야 한다“며 ”공약 수정“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도 ”여성 대통령 박근혜...“ 사설에서 공약한 각종 민생 프로그램을 집행하려면 5년 간 132조원이 새로 필요한데 무슨 돈으로 할 것이냐고 묻고 공약 변경의 정당성을 시사했다. 동아일보도 이날 사설에서 경제상황이 어렵다면서 ”복지 공약의 우선순위를 따져 접을 것은 접고 지켜야 할 것은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해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며 역시 공약 수정을 요구했다.

KBS도 선거 나흘 후인 23일 저녁 8시에 방송된 일요스페셜 “성공하는 대통령, 당선 67일”에서 선거 운동 기간에는 유권자의 마음을 끌 온갖 공약을 내놓지만 당선되면 공약은 잊어야 한다는 것이 미국 대통령 당선자들의 말이었다며 “당선되면 공약은 잊어라”는 말을 여러 차레 인용됐다.  당선에서 취임까지 67일 간 어떻게 인수위원회를 구성하고 어떻게 국정 계획을 짜느냐 가 다음 5년 집권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역대 당선자 인수위 책임자들의 입을 통해 “당선되면 공약은 잊어라”는 말이 반복돼 나왔다. 마치 선거 공약은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박근헤 후보는 선거 기간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라고 수백 번 강조했는데 “그건 선거 때 하는 말이니 믿을 필요가 없다. 그가 한 약속이 실현되지 않아도 실망하거나 탓하자 말라”는 것을 강하게 시사했다. 공약이 실형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도록 미리 예방주사를 놓자는 것인가? 그러면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고 되풀이  해서 강조한 박근혜의 이미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바로 다음날 24일 신문에는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공약 이행시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며 공약수정 간가능성을 내비쳤다고 신문에 보도됐다. 새누리와 언론이 서로 짜고 치는 것 같았다.

선거 공약을 모두 실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MB처럼 당선되기 위해 "선거 때 무슨 말은 못해?“ 하고 말할 정도로 뻔뻔스러워지면 선거 공약은 왜 내놨어? 선거운동이 거짓말 대회란 말이냐?고 되묻고 싶어진다. 어렵더라도 공약은 꼭 실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을 맺어야지 미국도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면 공약은 잊으라고 한다더라는 말만 되풀이 하면 박근혜 당선자도 그러겠다는 건가?

언론은 사건과 말을 그대로 옮기는 단순 전달자나 확성기가 아니다. 단순 전달은 스스로 언론을 뉴스 소스의 말을 확산해 주는 전파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비판언론이나 시민사회는 이번 대선 기간 낙하산 사장들이 장악한  방송이나 조중동이 새누리당 박 후보에게는 유리한 선전 도구로, 문재인 안철수 후보에게는 “적대적”으로 보도했다고 보고 있다. 50대가 생활에 대한 불안과 함께 안보위기를 많이 느끼게 해서 결속을 강화한 것도 조중동의 색깔론이 주효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민주주의는 미디어를 통해서 운영되는 미디어정치(mediacracy)다. 미디어를 장악한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는다. 그래서 비민주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MB가 낙하산 사장을 통해 방송을 장악한 것 아닌가? 그 덕에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됐지 않았나?

보수정권과 대기업 보수언론이 유착할 때 진보 세력의 집권은 어려워진다. 세계적인현상이다. 따라서 부자들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자본의 지배를 받지 않는 국민의 언론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MBC와 KBS 등 해고 방송인들이 시민단체와 연대해서 추진하고 있는 “대안방송” “국민의 방송” 추진운동은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큰 새로운 민주주의 운동이다. 많은 국민이 동참해서 국민이 만든 “국민의 방송”이 국민의 목소리를 내는 날이 올 때 안철수 현상과 결합해서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봄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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